진보 진영 분열 움직임 심상치 않아
이념 아닌 민생문제 실력 부족에 실망
비판 경청하고 잘못 겸허히 인정해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가 확연한 가운데 주목할 대목이 있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는 ‘호사화(호남ㆍ40ㆍ화이트칼라)’의 이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지지율 하락이 아닌 일부 진보층의 지지 철회는 권력 누수 현상을 뜻하는 레임덕의 시작을 의미하기에 여권의 긴장감은 더욱 크다.
문제는 여권의 잘못된 인식이다. 지지층의 이탈을 개혁 법안 처리 등 국정 주도를 못하는데 대한 실망감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을 밀어줬는데 왜 야당에 끌려가느냐”는 게 진보 진영의 요구라는 것이다. 여당이 연말 재고 떨이하듯 쟁점 법안을 무더기 처리한 것도 이런 연유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미온적 대처에 지지층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는 분석도 민주당 내 지배적인 기류다.
여당의 유난스러운 ‘집토끼’ 챙기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안 좋은 기억이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핵심 지지층인 진보 진영은 아프칸 파병과 한미 FTA 문제를 계기로 참여정부에 등을 돌렸다. 가뜩이나 보수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던 참여정부는 진보 진영의 외면으로 휘청거렸고 결국 레임덕을 맞았다. 당시의 상황을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좌우 양쪽의 공격으로 마치 고립된 섬 같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쟁점 법안을 통과시키고 윤석열을 손보면 진보 진영이 돌아올 거라는 기대는 착각에 가깝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로 떨어진 뒤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고 민주당 지지율도 답보 상태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이념’이 아니다. 진보 진영이 민주주의와 진보의 전통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상당수는 폐쇄적 진영 논리에 동조하지 않는다. 공수처법이나 공정경제 3법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목적 못지않게 과정과 절차를 중요하게 여긴다. 밀어붙이기식 강행 처리가 집권 여당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윤 총장 문제도 그렇다. 윤 총장의 과잉 수사와 측근 감싸기 등으로 검찰 개혁에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진보 진영에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법과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그를 쫓아낼 필요가 있는지 회의적인 이들이 적지 않다. 오히려 섣불리 건드리는 바람에 윤석열을 거물로 키운 ‘무(無)전략’에 혀를 차고 있다.
현 정부 지지층이 이탈하는 진짜 이유는 집권 세력의 ‘무능’에 대한 실망감이다. 문재인 정부는 “진보 정부도 먹고사는 문제에 능력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며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웠지만 성과는 참담할 정도다. 주52시간, 비정규직 등의 정책은 구호만 요란했지 저소득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영업자의 실상을 몰랐고, 노동의 형태와 구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도 더 넓고 좋은 집에 살고 싶어하는 원천적인 욕망을 인정하지 않은 데서 예견된 것이다. 불평등과 차별 구조를 없앤다는 당위만 있었지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실력은 갖추지 못했던 탓이다.
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한 더 큰 요인은 독선적 태도다. 민주화의 기틀을 다졌다는 자부심에 취해 남의 비판을 경청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상을 선과 악 이분법으로 재단해 타협을 배격하는 행태는 같은 편도 질리게 만든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김정남 전 청와대 수석은 한 인터뷰에서 뼈 있는 말을 했다. “민주화만 향해서 마구 달려왔는데 막상 국정에 참여해 보니 우리가 너무 무식했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도 고뇌해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국정 하나하나에 경건해야 하는 거구나 깨달았다.” 그의 말을 빌리면 실력이 못 미치면 겸손이라도 해야 한다. 실망과 탄식 속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지지자들의 심정을 헤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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