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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것마저 잊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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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에 다니는 A와 정말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그동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힘겹게 보내고 있는 그에게 안부를 묻는 것조차 미안해 연락을 피해왔다. 역시나 그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몇 달을 휴직하다 최근 다시 사무실에 나와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영국 미국 등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돼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가도, 심각해진 국내 상황을 보면 다시 또 암울해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고 했다.
코로나19로 피해가 크지 않은 곳 없지만 여행사의 경우 수익의 급감 정도가 아닌 ‘매출 제로’의 치명적 타격을 입고 있다. 그는 할 수 있는 거라곤 버티는 것밖에 없는데 그게 참 힘들다고 했다. 많은 직원들이 유급휴직, 무급휴직을 거치며 일에서 멀어졌다. 언제 정상화될지 기약도 없다. 지난달엔 정부 고용지원금마저 끊겨 이제 휴직자는 아예 급여를 받을 수 없다. 이미 많은 여행사들이 문을 닫은 상황, 이제껏 정부 지원으로 근근이 버티던 대형 여행사들도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조만간 폐업 아니면 대량 해고가 불가피해 보인다.
그는 지난 외환위기, 사스, 메르스 등 경험을 보면 견디고 살아남는 자가 결국 승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들 이를 알고 있기에 포기 못 하고 버티고 있다고.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고 바로 여행이 살아날 것 같지 않다. 팬데믹 이후 가장 먼저 닫혔던 여행은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사회가 안정된 뒤 가장 늦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사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여행사들의 어려움은 커져 있었고, 팬데믹으로 좀 더 빨리 존폐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행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다.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 보다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개별 자유여행 흐름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국내의 여행 시장을 익스피디아, 아고다, 씨트립 등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OTAㆍOnline Travel Agency)에 다 내줘야 할지 모른다. 한국 여행사들이 겨우 버티다 무너진 자리에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지닌 OTA가 치고 들어올 것이다. 그 큰 흐름이 뻔히 보이지만 대처할 힘이 없다. 지금은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몇몇 여행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좋은여행은 최근 ‘희망을 예약하세요’라며 해외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내년 봄, 여름에 출발하는 상품을 기획한 것. 당장 떠날 수 없고 또 확실히 출발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만 여행에 굶주렸던 예약자들이 몰렸다.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는 등 큰 반향이 일었다. 하나투어도 9개월만에 해외여행 상품을 출시하며 기지개를 켰다. 5월 출발 예정 상품인 ‘미리 준비하는 해외여행’은 2021년엔 부디 정상화하길 바라는 의미에서 예약금 2,021원을 받기로 했다.
A는 이를 ‘몸부림’이라고 봤다. 그동안은 코로나19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끝난 뒤 다시 시작할 거라고. 하지만 마냥 기다리다가는 다 죽게 생겼다. 실낱의 희망이지만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 이리저리 부딪혀보겠다는 것이다. 꿈꾸는 것마저 잊어버릴까 두려워 나선 것이라고.
“부디 살아남아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는 마지막 인사가 무거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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