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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검사장 이름까지 알아야 하나

입력
2020.12.18 16:10
수정
2020.12.18 18:26
22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김주영 기자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김주영 기자


나는 검사를 본 적이 없다. 살면서 딱히 큰 죄를 짓지 않았고, 다행히 억울한 형사에 휘말린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에 무관심했던 건 물론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차장검사가 검찰청에서 검사장 다음으로 높은 직급이 아니라 부장검사 아래 존재인 줄 알았다. 어쩌면 살면서 한 번도 안 만날지도 모를 직업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검사란 그런 존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만큼 국민이 검찰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나라도 드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검찰 개혁을 소재로 대화를 나눈다. 검사장 이름 한둘쯤 아는 건 예사다. 이는 매일 같이 쏟아지는 검찰 뉴스의 홍수 속에서 자연스레 체득된 상식이다.

지난해 말 조국 사태로 시작된 여권과 검찰의 갈등은 새해 벽두 추미애 장관이 임명되고 이른바 ‘검언유착’ 보도가 나오며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징계에 회부하고 직무배제 명령을 내리면서 폭발했다. 총장 권한대행이 장관에게 재고를 요청했고 법무부 차관과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사표를 던졌다. 고검장들을 비롯한 전국의 검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거기에 더해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징계위원회 구성까지, 뉴스는 수많은 검찰 관계자의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모든 뉴스의 근원은 결국 검찰 개혁이었다. 도대체 검찰 개혁이 뭐길래? 권력기관이 독점해 온 특권을 해체하고 사정기관의 무리한 수사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게 검찰 개혁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사실 우리가 검찰 개혁을 염원했던 건 이러한 이유에서다. 검찰의 권력이 남용돼 일상을 침범하는 순간, 우리의 삶이 파괴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의 안위를 위한 검찰 개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정쟁의 도구가 된 개혁은 가십을 양산할 뿐이다. 우리가 왜 검사장 이름까지 알아야 하나. 그런 뉴스까지 보기엔 우리의 일상이 너무 고되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왕태석 선임기자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왕태석 선임기자


여권이 윤석열 총장 찍어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국회에서 민생은 실종되었다. 불행한 모자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고 거듭되는 택배기사들의 과로사를 멈추지 못했다. 자영업자들은 일 년 내내 방역에 협조만 하다가 길거리로 나앉고 있다. 그런데도 여의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검찰 개혁뿐이다. 마치 검찰 개혁을 완수하면 민생이 회복된다고 믿는 것처럼, 혹은 민생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정치권은 모든 자원을 검찰 개혁에 쏟아붓고 있다.

우리가 정치권에 바라는 건 무엇인가. 검찰총장에게 왜 인터넷에 혼재한 판사의 정보를 긁어모아 정리했냐고 책임을 추궁하는 것? 아니다. 검찰이 정권의 ‘민주적’ 통제에 성실히 따르도록 하는 것? 아니다. 소위 ‘윤석열대선출마금지법’으로 그의 출마를 저지하는 것? 아니다. 단지 우리의 일상이 무탈하게 돌아가도록, 정치권이 국민들 먹고 사는 일에 힘써 주는 것뿐이다. 연일 끊이지 않는 산업재해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는 일, 그리고 약육강식·승자독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경제를 공정한 생태계로 개선해 나가는 일들 말이다. 이 사안들로 지금만큼 논쟁하는 국회를 볼 순 없을까.

정치면이 검찰 관련 뉴스들로 가득 채워졌던 올해가 저물어간다. 국민이 검사장 이름까지 알아야 하는 나라는 너무 피곤하다. 내년엔 제발, 민생 현안을 놓고 싸우는 국회를 보고 싶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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