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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만에 누명 벗은 윤성여 "나 같은 사람 다시는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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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윤성여 무죄.”
17일 오후 수원지법 501호 법정에서 형사12부(부장 박정제) 심리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경찰의 폭행과 가혹행위에 못 이겨 허위 자백해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에게 31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선고를 마치면서 “사법부 일원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법정에 앉아 있던 윤씨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윤씨 변호를 맡아온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이주희 변호사, 그리고 박준영 변호사도 박수를 치며 함께 기뻐했다.
이날 무죄 선고는 일찌감치 예고됐다. 재수사를 한 경찰도, 재심을 청구한 검찰도 모두 윤씨의 무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재판부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50쪽에 이르는 판결문을 통해 윤씨의 과거 행적과 이춘재의 자백, 경찰의 가혹행위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방사성 동위원소 감정결과의 오류 및 모순점, 검찰과 재판부의 잘못된 판단까지 조목조목 따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범인으로 특정한 근거이자 재심대상 판결의 유력한 증거가 됐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방사성 동위원소 감정서는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허위로 작성돼 믿을 수 없다”며 “당시 수사기관은 피고인에게 임의동행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임의동행 후 3일간 피고인으로 하여금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가혹행위를 해서 자백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이뤄진 자백은 불법 체포·감금에 의해 얻은 것이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 작성 진술서는 경찰에 의해 강요됐으며, 피고인에 대한 제1회 경찰 진술조서는 허위로 작성됐고, 경찰 피의자 신문조서 역시 허위로 작성됐다”며 “경찰 검증조서도 영장 없이 이뤄진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욱이 피고인의 자백 내용은 당시 범행현장이나 피해자 부검결과 등 객관적 증거들과 일치하지 않아 신빙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이춘재에게 범행을 저질렀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이춘재 스스로 범행을 자백한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춘재의 자백은 피해자에 대한 부검감정서 및 피해자 사체의 상태, 검증조서 등 객관적 증거와 일치하고, 범행 당시의 사고과정, 추론 등이 담겨 있다”며 “감각정보에 대한 세부묘사가 풍부하고 자신이 하지 않은 범행을 허위로 자백할 아무런 동기가 없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매우 높다”며 판단했다.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과거 수사기관의 부실 행위로 잘못된 판결이 나왔다”며 “오랜 기간 옥고를 거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선고가 피고인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윤성여씨는 선고 후 “기대하지 않았지만 막상 30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아 감회가 벅차다”며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안 나오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직장도 다녀야 하고 평소와 다르게 살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은 일단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밝혔다.
변호를 맡은 김칠준 변호사는 “검찰도 무죄 구형 때 사과했는데 재판부도 최후 보루 역할을 못해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말을 했다.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경찰관의 불법수사 및 인권침해와 이를 관리감독 하는 검사, 증거상 문제가 있는데도 발견하지 못한 법원 등 정작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하나하나 밝히지 않았다”며 “윤성여씨는 과오를 범한 담당자를 개인적으로 용서했지만 법적으로 하나하나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판결 내용을 토대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준영 변호사도 “이춘재의 극적인 자백이 있었지만 윤성여씨가 살아 있었기에 이번 재심이 가능했던 것”이라며 “윤성여씨가 살아나올 수 있게 도움을 준 교도관과 보호해준 사람들도 많이 기억해 주고, 아름다운 사람의 얘기가 길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 양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이후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2심과 3심 재판부도 윤씨의 무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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