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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타밀 반군에 '헬기 사격'... 30년 묵은 英 용병 전쟁범죄 수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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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4일 유엔은 영국 민간군사기업(PMC) ‘살라딘 시큐리티’의 운영자 데이비드 와커에게 질의서 성격의 공문 하나를 보냈다. 비슷한 질의서가 영국 외교부로도 전송됐다. 발송 명의는 ‘용병활용으로 인한 인권침해 및 자치 추구 기본권 방해 행위에 대한 조사 실무그룹(유엔실무그룹)’이었다.
유엔실무그룹은 2005년 7월 유엔인권이사회(UNHRC) 결의안 ‘2005/2’가 통과된 후 UNHCR 산하 조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용병이나 용병 유사 단체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용병 모집 및 이용, 재정 지원과 훈련 등 전 과정에 국제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게 이들의 임무다.
눈길을 끄는 건 질의에 참여한 실무그룹 구성원이다. ‘인권과 다국적 기업 실무그룹’ ‘강제실종 실무그룹’ 외에도 ‘법외 사형 특별보고관’ ‘고문 및 기타 비인간적 처벌에 관한 특별보고관’ ‘진실, 정의, 보상 및 재발방지 촉구 특별 보고관’ 등 인권침해를 다루는 여러 전문가들과 유엔 조직들이 질의서 명의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해당 이슈가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의미다. 유엔은 스리랑카 정부와 살라딘 시큐리티에도 관련 질의를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수신자들 사이에 어떤 공통분모가 있길래 복합적 실무그룹이 공동 명의로 질의서를 보낸 걸까.
질의서에는 무려 30여년 전 사건들이 등장한다. 1987년 스리랑카 동부 코코디촐리 지역에서 발생한 스리랑카 특전사(STF)의 새우양식장 공격으로 소수민족 타밀족 민간인 85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보다 2년 전인 1985년 훗날 스리랑카 반군 ‘타밀타이거’ 통치 영토의 수도 역할을 했던 북부 도시 킬리노치에서는 STF의 피라만따나루마을 공격으로 민간인 16명이 숨졌다. 두 사건 모두 헬기까지 동원돼 ‘기총 사격’을 가한 학살극이나 다름 없었다.
이들 사건에서 가해자인 STF는 스리랑카 내전이 발발한 1983년 대테러ㆍ대반군 작전이라는 특수 임무를 부여 받고 경찰 내 특수 유닛으로 결성됐다. 스리랑카 내전 기간(1983~2009) 빈번하게 일어났던 납치, 강제 실종, 비밀 공작사건의 유력한 배후다. 예컨대 기자가 2009년 3월 수도 콜롬보에서 만났던 락슈만(가명)은 그 해 2월, STF와 친(親)정부 타밀 민병대로 구성된 무리에게 납치됐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타밀인들이 ‘홈랜드’라 여기는 최북단 자프나에서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보고 2008년 4월 콜롬보로 이주했던 그는 이듬해 2월 말 저녁식사 차 집을 나서자마자 바로 번호판 없는 차량으로 납치됐다. 이후 다수민족 싱할라족 도시에 타밀족은 발을 들이지 말라는 의미로 “콜롬보를 떠나라”는 협박을 받으면서 여기저기 끌려 다녔다. 이전부터 비슷한 협박편지에 시달려 왔던 터라 그는 “수도를 떠나겠다”고 맹세한 뒤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락슈만의 납치 경험은 내전과 함께 탄생한 STF가 어떻게 공포의 대명사가 됐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바로 STF를 훈련시키며 교관 노릇을 했던 이들은 ‘키니미니서비스(KMS)’라는 영국 용병조직이다. 유엔실무그룹이 주된 조사 표적으로 삼는 대상이기도 하다.
KMS는 앞서 유엔 질의서 수신자 중 하나였던 와커가 1975년 만든 민간군사기업이다. 그는 영국공수특전단(SAS)에서 복무했는데, KMS 용병들도 다수가 전ㆍ현직 SAS 출신으로 전해진다. 스리랑카 내전 초기인 1984년부터 80년대 말까지 활동한 KMS의 본래 임무는 ‘STF 훈련’이었지만 교관 역할만 한 게 아니었다. 1985년 3월 즈음부터 군사작전, 군 정보국 활동 관련 자문을 했고, 심지어 스리랑카 군 명령 체계에까지 관여한 것으로 유엔 질의서에 적시돼 있다. 여기에 정보수집과 저격수 훈련도 도맡으면서 KMS는 사실상 스리랑카 내전에 적극 개입했다.
KMS의 활동 가운데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헬기 사격이다. 영국 용병들은 1985년 후반부터 헬기 조종에 가담했다. 특히 1986년 6월 7일 발생한 사건은 국제인도주의법과 인권법 위반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날 KMS 파일럿이 조종한 헬기에서 기관총 사수들은 타밀 반군과 민간인들이 타고 있던 버스를 공격했다. 이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버스에서 도망치는 모든 이들에게 총탄을 퍼부었다. 그 결과, 사망ㆍ부상자가 각각 2명씩 나왔다.
KMS 파일럿이 타밀반군들에게 1,000개의 총알을 어떻게 발사할지 가르쳐 준 사례도 있었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사격으로 타밀 반군 12명이 숨졌다. 이들은 헬기 사격 당시 탄환만 아니라 수류탄이 담긴 와인잔도 투하했다. “‘와인잔 전술’을 알고 있었다. 하루는 트링코 말리(스리랑카 동부 항구도시)에서 점심을 먹는데 그 많던 와인잔이 남아있질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스리랑카 주재 영국 대사관의 국방무관이었던 은퇴 중령 리차드 홀워시가 다큐멘터리 ‘키니미니서비스’를 통해 탐사보도기자 필 밀러에게 준 답변이다. 밀러 기자는 영국 용병 KMS의 흑역사를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다. 그는 영국 독립탐사매체 디클래시파이드 UK의 탐사보도기자로 7년여간 추적 끝에 KMS의 실체를 까발렸다. 밀러의 추적물은 올해 초 단행본으로 나왔고 다큐도 만들어졌다. 그는 3월 한 북 토크 행사에서 “1980년대 영국에 난민으로 이주한 한 타밀족 친구에게서 키니미니서비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달 런던 광역경찰청 ‘전쟁범죄팀’은 KMS의 범죄 혐의에 대해 수사 범위를 조정하고 있다며 수사 착수 사실을 공표했다. 영국 정부로서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영국 외교부는 일단 8월 2일자로 유엔에 보낸 회신에서 “KMS와 스리랑카 정부간 계약에 영국 정부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또 “1986년 6월 런던 주재 스리랑카 대사관으로부터 KMS 직원들을 군사작전에 개입하지 않게 하겠다는 확답을 받았고, KMS에게서도 오로지 훈련만 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과연 영국 정부가 KMS와 스리랑카 정부의 계약에 간섭하지 않았는지 여부에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밀러 기자는 저서 ‘키니미니-전쟁범죄 도주자 영국의 용병들’에서 “KMS와 같은 영국 용병회사들은 냉전시대 ‘극우’ 기류 속에서 급부상했다”고 설명했다. 냉전과 체제 대결이 한창이던 시대 상황에서 영국은 그들이 추구하는 외교적 가치를 용병 활용을 통해 반영했을 수 있다. 그리고 내전에 돌입한 과거 식민지 스리랑카에서 협조 요청이 들어오자 실제 적용을 한 것이다.
밀러 기자는 한 타밀 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거릿 대처 정부가 (용병카드를 쓴 건) 영국이 스리랑카 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했기 때문인 듯하다. 인도는 당시 영국의 최대 무기수출국 중 하나였는데, 여기에도 타밀 인구가 적지 않았다. 영국이 타밀족을 탄압하는 인상을 주면 안됐다.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민간군사기업을 이용하자는 게 대처 내각의 방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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