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수업 힘든 ADHD 아이들... 학업 저하에 증상 악화까지 우려

입력
2020.12.17 17:00
수정
2020.12.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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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장애 인정 못 받아 교육 지원 안돼
자녀 증상 악화에 양육자 우울감도 심화
전문가들 "ADHD 아동 위한 대책 마련돼야"

전유정씨의 아들 구모(12)군이 침대에 누워 비대면 수업을 듣고 있다. 전씨 제공

전유정씨의 아들 구모(12)군이 침대에 누워 비대면 수업을 듣고 있다. 전씨 제공

"아이가 등교할 때는 진도의 60~70%는 따라 갔는데, 온라인 수업에선 10~20%도 소화하지 못하네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청소년인 서울 강동구의 중학교 2학년 이모(14)군은 요즘 등교를 하지 못해 집에서 비대면(온라인) 수업을 한다. 그래서 이군의 교육은 오롯이 어머니 신모(47)씨 몫이다.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던 이군은, 집에서는 학교 수업에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해 사실상 공부에서 손을 놓은 상태다. 선생님이 객관식 문제로 숙제를 내 주면 그냥 찍어서 풀어 버리고, 자료 조사가 필요한 과제는 상관도 없는 사진을 캡처해 제출하곤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 지속에 따라 학교의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면서, '나홀로 학습'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ADHD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큰 애를 먹고 있다. 학교에서 체계적 교육을 받을 때는 정도가 덜했는데, 갑자기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예전 학습 태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비대면 수업이 더 장기화되면 ADHD 증상 자체를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학부모들의 고민이 더욱 크다.

45분은 억겁의 시간... 수업 대신 게임으로 시간 채워

ADHD 학생들은 대개 충동성, 과잉 행동, 주의 산만 등의 증상을 보인다. 때문에 40~50분의 수업은 집중력이 부족한 ADHD학생들에게 견디기 힘든 억겁의 시간이다. 선생님이 현장에서 바로잡아주지 못하는 비대면 수업은 더 그렇다.

ADHD는 한국에서는 공식 장애로 인정받지 못해, 특수교육 지원도 받지 못한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ADHD 학생 학부모 전유정(38)씨는 "특수교육 대상 아동은 교육부에서 1대1 가정방문 교육을 지원하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그런 대안도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가 살림이나 생업 때문에 아이를 챙기지 못하는 동안, ADHD 학생들은 게임에 빠져 지내는 경우가 많다. 신씨 아들 이군의 경우 비대면 수업을 끝내고 나면, 하루 6~8시간을 그대로 게임하는 데 쏟는다. 신씨는 “학교 다닐 때보다 게임을 두 배를 하는데도 더 하겠다고 해서 말리느라 난리”라며 “이러다 진짜 가정이 파탄 날 것 같은 두려움까지 든다”고 말했다. 게임에만 몰두하려는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 지 전혀 방법을 찾지 못한 신씨는 “ADHD 아이들이 집에서 게임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아이들도, 학부모도 증상 악화... ADHD 학습 지원 절실

공부에 집중을 못하는 아동. 게티이미지뱅크

공부에 집중을 못하는 아동. 게티이미지뱅크

일부 학부모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회성이 떨어진 ADHD 자녀들의 증상이 더 나빠질까봐 걱정한다. 치료 센터 등의 운영이 제한되고,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붕년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가 2월부터 6월까지 서울대어린이병원 ADHD클리닉과 내원 환자 136명을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환자 65%에서 호전도가 현저히 악화됐다. 서울 용산구에서 중학교 2학년 ADHD 자녀를 키우는 정모(45)씨는 “올해 1학기부터 학교에서 아이들과 사회생활을 하는 연습을 새롭게 해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를 통째로 날렸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외부 도움 없이 ADHD 자녀를 혼자 돌봐야 하는 학부모들의 우울감이 더 커지는 점도 문제다. 이성직 한국ADHD협회장은 “ADHD 아동이 밖에 나가지 못해 쌓인 에너지를 문제 행동으로 분출할 우려가 있다”며 “이런 갈등 때문에 부모의 우울과 불안까지 심해지는 경향이 감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쉽게 종식되지 않는 상황인 만큼,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약물치료와 함께 ADHD 학생을 위한 학습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붕년 교수는 “필요한 학습을 제 시기에 받지 못하면 학업 수행능력이 처져, 후에는 지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이성직 회장도 “성인도 비대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의 집중이 더 어려운 ADHD 아동을 위한 교육 환경과 관리 시스템을 고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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