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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가 던진 메시지...인구변화발 피할 수 없는 가족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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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 단위로 토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13>가족 구성에 정상·비정상 구분은 없다
최근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꽤 파격적인 선택이라 응원만큼 염려도 많다. 문제는 앞으로다. 비혼 출산처럼 전통유형·고정상식에서 벗어난 가족 구성이 잦아질 개연성이 높다. 인구구조가 양적·질적으로 많이 변한 까닭이다.
생각이 달라진 인구가 시나브로 사회 곳곳에 등장했다. 관혼상제부터 생애 모델까지 선배방식을 거부하며 달라진 길을 용감히 고르고 묵묵히 걷는다. 가족 구성의 변화실험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표준궤도에서 벗어난 달라진 가족 구성이 적잖다. 정상 가족이라 불리며 뇌리에 박힌 부모·자녀의 4인 가족 모델은 설 땅을 잃었다.
대신 다양한 가족 유형이 빈틈을 채운다. 이들은 핏줄이 아니라도 가족임을 증명해낸다. 건강한 가족은 외형이 아닌 실체에 있어서다. 친밀함·응집성으로 가족 기능이 발휘되면 어떤 식이든 가족이다. 급격해진 인구변화를 보건대 새로운 가족의 달라진 도전은 머잖아 공민권을 받을 전망이다.
이쯤에서 좀 과격한 상상이다. 과연 미래에도 가족제도는 존재할까. 이런 상상은 5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근대화와 맞물린 인구변화발 핵가족화의 가속화 시기다. 당시는 가족 분화의 지속 여부와 분화 수준이 관심사였다. 1990년대엔 성 역할이 화두로 뜬다. 가부장·남성 중심성에서 평등·개인주의적 가치관으로의 이동에 동의했다. 이젠 가족 형태의 다양화가 초점이다.
다양화를 둘러싼 긍정론·부정론은 논쟁거리다. 가족 변화를 사회 적응론으로 보거나 해체·붕괴란 점에서 가족 위기론으로도 본다. 대체적인 공감대는 ‘위기론→적응론’이다. 사회가 변하면 가족도 변한다고 봐서다. 따라서 미래도 해당 사회에 적응하려는 가족구조의 변화는 자연스럽다.
정상가족은 이제 가공모델이다. 30%를 웃도는 1인가구 증가세 속에 희귀해진 ‘부모·자녀’ 유형은 1순위를 내놨다. 정상가족의 원형이던 4인가구는 10%대 중반까지 축소됐다. 표준일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가족 변화에 주목, ‘정상가족→싱글가구’로 정책수정에 들어갔다. 지향은 1인화 맞춤 대책이다.
가족변용의 기초토대는 개인 행복을 위한 자구노력이다. 가족 기능을 버린 평생 비혼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든 함께든 가족 기능을 대체해줄 관계설정에 나선다. 1인 가구라면 달라진 가족 구성이고, 기혼가족이면 새로운 역할부여에 가깝다. 전통가족의 개념해체라는 건 공통적이나, 실현방식은 신구성과 재구성으로 나뉜다.
눈여겨볼 건 기존가족의 재구성이다. 결혼포기·출산파업의 청춘형 가족단절과 셰어하우스 등 가치동맹적인 가족변용은 꽤 알려졌으나, 기존가족의 새로운 재구조화 실험은 가려진 측면이 적잖다. 의의로 기존의 혈연가족발 역할·기대조정을 통한 관계 정립도 활발하다.
청년발 신가족을 향한 구성실험에만 주목하면 한쪽밖에 못 본다. 1인 가구가 폭증한다지만, 아직은 30%대다. 한 세대(±30년)가 흘러야 절반 수준에 달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70%는 여전히 혈연기반의 기존 가족 이미지를 갖는다.
역시 다양화돼 일반적이진 않지만, 대개는 ‘함께 사는 피붙이’가 가족단위의 기본체계다. 이들도 지금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거주공간을 달리하는 헤쳐 모여식의 가족단위 자체 변화도 있으나, 대부분은 결성된 기존가족 내부의 역할수정·가치변화에 집중한다.
정상가족이 지녔던 공고했던 전통적 역할·가치에서 벗어나 시대변화에 최적화된 대안 구조로의 변용 실험이다. 대전제는 ‘각자도생=전체행복’에의 동의다. 가족멤버 각자가 1인분의 삶을 잘 완수하면 궁극적으로 가족 전체의 행복도 극대화된다는 논리다. 화목한 가족의 달라진 운영방식이다. 이들은 가족 역할을 재검토하는 룰의 합의변경을 통해 새로운 가치변화를 꾀한다.
가족은 원래 각자 역할이 부여됐다. ‘○○다움’은 이렇듯 만들어졌다. 아빠는 아빠답게, 엄마는 엄마답게, 자녀는 자녀답게 역할을 하면 행복해질 것으로 여겨졌다. 남성전업·여성가사의 표준가족 출현 배경이다. 아빠는 일하고 엄마는 밥하는 고정적인 성 역할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예전엔 맞았다. 정합성을 자랑하며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표준경로에서 벗어난 변칙사례는 비정상·열등적인 패배 인생의 낙인이 찍혔다.
실제 전통적인 역할부여는 꽤 기능해왔다. 복지 수요를 가족 내부에 맡기는 공동체주의의 원류 공간답게 남편 외벌이만으로 가족 소비가 커버됐다. 자녀양육·부모봉양에 본인노후도 완수됐다. 사회도 안정됐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안정·확산은 가족복지와 세대교체 등 통제기제로 작용하며 규범·제도로 연결됐다. 탄탄한 가족애정은 견고한 경제성장과도 연결됐다. 세대 간 계층이동이 실현돼 결혼·출산의 가족 구성도 무난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저성장·재정난·인구변화의 동시 공격은 가족 경제학의 수정을 강제한다. 정상가족은 기능부전에 빠졌고, 가족 역할은 폐기대상에 올랐다. ‘아빠다움’이 실현한 가족 경제학의 시한은 끝난 듯하다. 남성 전업 외벌이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것이다. 살림하던 엄마조차 노동 현장에 소환되는 시대다. 맞벌이가 아니면 가계 유지는 힘들다.
역할·가치의 변화·수정만이 살길이다. 당장 성 역할은 재검토된다. 극단사례지만, ‘일하는 엄마 vs. 밥하는 아빠’는 수용된다. 남아선호·남존여비는 없다. 입신양명을 위한 부모 희생적인 자녀 올인도 재구성된다.
현실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제도는 버리는 게 상책이다. 바꾸고 변해야 피로 사회의 불치병인 가족 불행을 넘어설 수 있다. 배려는 해도 희생은 없다. 황혼 부모의 독립생활을 뜻하는 통크(Two only no kids)카드도 이기성의 발로가 아닌 이타적 행위에 가깝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봉양형벌을 내릴 수 없어서다.
질서보다 중한 건 생존이다. 행복은 그다음이다. 필요한 건 탄력·유기화 된 기능적 가족구조다. 테트리스처럼 최적조합형 변신 가족이 그렇다. 낡은 프레임은 버리는 게 좋다. 이상한 정상 가족일지언정 각자의 행복 추구에 맞는다면 괜찮다. 가족 형태의 다양화는 대세다. 전통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족 숫자·기능분화가 발생했고 이를 당연시했듯 지금의 가족 변화도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가족 변화는 사회 적응의 결과다. 적응과 변화는 인류 진화의 반복 역사다. 아빠도 엄마도 자녀도 고정역할은 없다. 서로가 행복해지는 기능변화는 낯설되 맞서기 힘든 현실이다. 가족은 규정될 수도, 통제될 수도 없다.
가족은 변한다. 가족구조도 마찬가지다. 필요기능과 제공 여력에 맞춰 가족역할은 합종연횡의 재구성이 맞다. 진화와 퇴화는 무의미하다. 정상가족은 필요·세뇌로 만들어진 이미지일 따름이다. 특정유형이 이데올로기로 치장돼선 곤란하다. 벌써 비정상혐의가 주어진 동거가족·부부가족·입양가족·조손가족 등 새로운 가족 모델은 늘었다. 기러기·주말가족은 물론 동성커플·비혼출산마저 생겨난다.
가족 연구자인 엘리자베스 벡 게른스하임은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느냐 물으면 바로 다양한 가족이라 답할 것”이라며 “이들은 의존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협력하는 존재”라고 했다. 인구변화발 가족분화·역할변화는 옳고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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