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서울~부산 20분만에… 머스크의 상상이 10년후 현실로

입력
2020.12.19 04:30
13면
구독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그린 하이퍼루프 여객 운송 캡슐 개념 디자인 스케치. 일론 머스크 트위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그린 하이퍼루프 여객 운송 캡슐 개념 디자인 스케치. 일론 머스크 트위터

2012년 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 ‘토탈리콜’에선 주인공들이 초대형 진공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구 중심부를 통과해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7분만에 호주에서 영국으로 이동한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3년 일론 머스크 테슬라 모터스 최고경영자(CEO)는 영화에 나왔던 초대형 진공 엘리베이터와 유사한 형태의 초고속 진공튜브 캡슐열차 ‘하이퍼루프’(Hyperloop) 디자인 스케치를 공개했다. 머스크 CEO는 “저압 상태의 튜브 안에 들어 있는 열차는 가압과 공기역학적 양력이 작용하는 공기쿠션으로 움직이게 된다”고 개념을 설명했다. 이어 머스크 CEO는 하이퍼루프가 비행기와 기차, 자동차, 배에 이어 제5의 주요한 교통수단이 될 것으로 자신했다.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머스크의 아이디어를 공상과학으로 치부하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고, 많은 업체들이 음속(1,224㎞/h)에 근접한 시속 1,200㎞의 하이퍼루프 개발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2016년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인근 네바다 사막 한 가운데 설치된 1㎞ 구간을 달리는 추진체 공개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했고, 지난달엔 미국의 버진하이퍼루프원(VHO)이 최초로 유인 시험주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물론 아직 테스트 단계라 터널의 거리는 500m에 불과했고, 속도는 음속의 15% 수준인 172㎞/h에 머물렀지만, 사람을 태우고 진공 튜브를 달리는 이동수단이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란 사실은 증명된 셈이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뛰어넘을 차세대 교통수단으로 ‘하이퍼루프’를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철도기술연구원, 실물 축소 시험서 시속 1,019㎞ 달성

하이퍼루프는 ‘극초음속(hypersonic speed)’과 ‘루프(loop)’의 합성어로, 진공 상태의 튜브 속을 음속에 버금가는 시속 1,200㎞로 이동하는 초고속 캡슐차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퍼루프의 각 부분별 명칭은 레일은 ‘트랙’(Track), 터널은 ‘튜브’(Tube), 차량은 ‘포드’(Pod)라고 불린다.

하이퍼루프는 어떤 원리로 진공 튜브를 속을 빠르게 이동하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 먼저, 하이퍼루프가 음속의 속도를 내는 과학적 원리를 살펴봐야 한다.

비행기가 기차보다 빠른 이유는 비행기가 제트엔진을 탑재했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기차는 지상에서, 비행기는 높은 하늘에서 이동한다는 교통 환경의 차이도 크다.

보통 비행기는 10㎞ 상공에서 순항하는데, 이때 기압은 지표면의 30~40%에 불과하다. 기압이 낮아지고 공기의 밀도가 줄어들면 기체에 닿은 공기저항이 줄어들기 때문에 적은 에너지로도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보잉787기가 지표면 대비 30~40% 공기압에서 900㎞/h 넘는 속도를 낼 수 있다면, 공기압이 1,000분의 1기압, 즉 0.1% 이하인 진공 상태인 하이퍼루프 안에서는 이론적으로 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하르트 하이퍼루프(Hardt Hyperloop)사가 그린 하이퍼루프 여객 운송 캡슐 개념 디자인. 하르트 하이퍼루프 제공

네덜란드의 하르트 하이퍼루프(Hardt Hyperloop)사가 그린 하이퍼루프 여객 운송 캡슐 개념 디자인. 하르트 하이퍼루프 제공


하이퍼루프의 구조를 쉽게 이해하려면 ‘자기부상열차’를 떠올리면 된다. 열차 바닥과 레일에 자석이 달려있어, 서로 같은 극은 밀고, 다른 극은 당기며 앞으로 나가는 자기부상열차가 진공상태의 터널에서 미사일처럼 발사돼 빠르게 이동하는 게 하이퍼루프의 구동 원리다.

하이퍼루프 기술은 미국과 유럽 뿐만 아니라 중국, 캐나다, 아랍에미리트공화국(UAE), 인도 등에서도 정부 주도로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한국형 ‘하이퍼튜브’(HTX)와 초고속 캡슐 트레인 개발을 하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실물 크기의 17분의1 로 축소 제작한 시험에서 최고 속도 1,019㎞/h를 기록해 비행기 속도를 추월했다. 이미 세계적 수준의 하이퍼루프 기술력을 보유한 철도연은 향후 10년내 30인승 초고속 열차 상용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시속 1,200㎞의 하이퍼루프가 상용화되면, 570㎞의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구간을 30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다. 872㎞인 호주 시드니와 멜버른 구간은 50분이 소요되는데, 이 정도 거리면 기차로 11시간, 승용차로 9~10시간, 비행기로 1시간30분이 걸린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는 2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독자 개발한 축소형 튜브 공력시험장치에서 하이퍼루프(튜브) 속도시험을 해 시속 1,019㎞의 속도를 달성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제공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독자 개발한 축소형 튜브 공력시험장치에서 하이퍼루프(튜브) 속도시험을 해 시속 1,019㎞의 속도를 달성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제공



빠르고 친환경에 비용도 저렴... 안전성 확보 해결해야

하이퍼루프의 장점은 빠른 속도뿐만이 아니다. 진공 튜브 안에서 이동하기 때문에 소음이 없고, 안개나 태풍 같은 날씨에 대한 제약도 없다. 동력을 태양열에너지를 사용하다보니 당연히 이산화탄소(CO₂) 발생도 없다. 또 1명이 1㎞이동하는 데 소비되는 에너지는 항공 대비 8%, 고속철도 대비 35% 수준이다. 인프라 구축 비용도 KTX에 비해 저렴하다. 동일 노선, 동일 수송량 기준으로 HTX는 KTX 건설비의 53%, 운영비의 47%가 들 것으로 철도연은 보고 있다.

하지만 하이퍼루프의 상용화를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우선 하이퍼루프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점이다. 어떻게 하면 수백㎞가 넘는 튜브를 진공에 가까운 상태로 계속 유지하고,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의 안정성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또 하이퍼루프의 트랙을 구성하는 튜브는 자체의 하중을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 열차인 포드의 하중과 고속 주행에 따른 충격 및 열팽창을 견뎌야 한다. 이런 환경을 이기지 못해 자칫 튜브가 변형되거나 균열이라도 발생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차량 부양기술, 가속기술, 정지기술, 에너지 효율화 기술, 승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기술 등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상상을 한번 해보자. 내부가 진공상태인 튜브 속을 음속의 속도로 달리는 열차를 타고 20분만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모습을. 머스크 CEO의 무모해 보였던 상상이 이르면 10년 후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버진하이퍼루프원(VHO)이 만든 실물 형태의 하이퍼루프. 버진하이퍼루프원 홈페이지

버진하이퍼루프원(VHO)이 만든 실물 형태의 하이퍼루프. 버진하이퍼루프원 홈페이지


김기중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