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난 수백만 개의 별을 봤어요!”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은 사막을 다녀오신 게 분명하다. 별 보기에 사막만큼 좋은 곳이 없다. 인공적인 빛과 습기가 극히 적은 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조건이 좋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기껏해야 2,000개 정도다. 시인이 아니라면 “와! 난 1,000여개의 별을 봤어요!”라고 하자.
높은 산의 천문대에 가봤자 망원경으로 별을 볼 수 있는 확률은 3분의 1 정도인 것 같다. 우리나라 날씨가 천문애호가 친화적이지가 않다. 또 망원경으로 본다고 별이 더 크게 보이는 건 아니다. 많이 보이기는 한다. 천문대 해설사 선생님은 별자리를 옮겨가면서 별자리 신화를 미끼로 천체물리를 알려주신다. 듣는 이에게는 천체물리보다는 별자리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어떻게 그 많은 별자리를 다 아세요?”라고 물었더니 겨우 88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것은 그 가운데 60개다. 그리고 어느 특정한 순간에 볼 수 있는 별자리는 고작 20여개 정도다.
스무 개 정도라면 외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구구단도 외었고 스무 가지 아미노산 구조도 암기했는데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 별자리도 있다. 사각형 안에 허리띠 모양의 별 세 개가 들어 있는 오리온자리, 시간에 따라 방향이 바뀌는 W자 모양의 카시오페이아자리, 그리고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앗! 그런데 북두칠성은 별자리가 아니란다. 그런 별자리는 88개 안에 없다.
아니, 온 지구인들이 다 아는 북두칠성이 그깟 별자리 지위 하나 얻지 못했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북두칠성은 큰곰자리의 일부일 뿐이다. 뭐 어떤가, 그래도 우리가 밤하늘에서 방향을 알려면 북극성(폴라리스)을 찾아야 하고, 북극성을 찾으려면 북두칠성을 찾아야 하니까 말이다.
“아닙니다. 2등성입니다.” 마치 북두칠성이 자기 자신인 것처럼 자아를 투영하던 나는 금세 그 대상을 북극성으로 바꿨다. 얄팍하다. 그런데 또 놀랄 일이 있다. 북반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 태평양과 대서양 그리고 인도양을 건너던 모험가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였던 북극성은 당연히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어야 하지만 1등성이 아니라 2등성이란다. 실망의 연속이다.
별의 밝기는 0등급, 1등급, 2등급, 3등급처럼 등급을 매긴다. 숫자가 작을수록 밝은 별이고 각 등급 사이의 밝기 차이는 약 2.5배다. 그러니까 0등성과 5등성은 밝기 차이가 대략 100배가 난다. 0등성과 1등성은 합해서 21개뿐이다. 내가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북극성이 속한 2등성은 50개 정도다. 3등성도 150개뿐이다. 그러니 0~3등성은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 가운데 밝기가 상위 10%에 해당하는 것이다. 북극성이 2등성이라는 사실에 만족하자.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0등성이니 5등성이니 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밝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무리 밝은 별이라도 멀리 있으면 어둡게 보이고 아무리 어두운 별이라도 가까이 있으면 밝게 보이는 것이다. 오리온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리겔과 네 번째 밝은 별인 민타카는 모두 흰색 별이다. 표면 온도가 같은 별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리겔은 0등성, 민타카는 2등성이다. 이유는 거리 때문이다. 민타카는 리겔보다 3배나 멀리 있다.
가까운 게 밝게 보인다. 당장 밤하늘을 보시라. 가장 밝은 천체는 달이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금성과 화성 같은 행성이 훨씬 밝게 보인다. 아무리 밝은 별도 멀리 있으면 흐리게 보인다. 별도 아닌, 행성도 아닌 달도 가까이 있어서 밝게 보인다.
혹시 삶의 지표가 되는 북극성 같은 인물이 있는가? 사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저 나와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시대가 바뀌면 북극을 가리키는 북극성도 바뀐다. 플라톤 시절에는 코카브가 북극성이었고 2,000년 후에는 투반이 북극성이 된다. 우리는 별자리로 방향을 찾아야 하는 양치기나 항해자가 아니다.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오늘 내 북극성은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