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미술관이 들어왔다...별 볼 일 없던 마을이 별빛처럼 반짝거린다

입력
2020.12.16 04:30
20면
구독


<89>영천 화산면 별별미술마을

밝은 빛에 익숙한 눈동자가 어둠에 적응하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1, 2… 5분 정도 지났을까. 새까만 하늘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지되고, 이윽고 ‘별을 따는 소년’ 뒤로 하나 둘씩 보이던 별들이 밤하늘에 총총히 박혔다.

영천 화산면 가래실 별별미술마을의 설치작품 '나만의 별'(김용민 작) 뒤로 초저녁 하늘에 별이 총총 쏟아진다. 무수한 꿈과 추억이 반짝인다. 니콘 D750 카메라로 감도 800, 조리개값 8로 30초간 촬영.

영천 화산면 가래실 별별미술마을의 설치작품 '나만의 별'(김용민 작) 뒤로 초저녁 하늘에 별이 총총 쏟아진다. 무수한 꿈과 추억이 반짝인다. 니콘 D750 카메라로 감도 800, 조리개값 8로 30초간 촬영.

“우주에는 은하가 대략 1,000억개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저마다 평균 1,000억개의 별이 있다. 게다가 각 은하에는 적어도 별의 수만큼의 행성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이 명저 ‘코스모스’에서 추정한 별의 개수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수의 별들 중에서 생명이 사는 행성이 태양계의 지구 하나밖에 없다고 가정하기보다 우주가 생명으로 그득그득하다고 여기는 편이 훨씬 그럴듯하다고 설파한다. 그 때문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 외계 고등 생명을 찾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지만, 우주의 광대함에 비하면 지금껏 인류가 거둔 성과는 미미하다. 바닷가의 수많은 모래알 중에서 몇 개의 정체를 희미하게 파악한 수준이라고 할까.

우주의 실체를 밝히려고 끝없이 노력하는 과학자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대중에게는 아직까지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 꿈과 추억과 희망이 반짝인다. 영천 화산면에 이와 비슷한 마을이 있다.

시골 마을의 별별 미술...마을이 밝아졌다

‘별별미술마을’이라 해서 찾아간 영천 화산면 가상리는 여느 농촌마을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은 텅 비어 있고, 볕 좋은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엔 지나다니는 차량이 뜸했다.

다른 게 있다면 마을 어귀에 그럴싸한 미술관이 하나 있다는 점이다. 1999년 폐교한 화동초등학교 가산분교를 개조한 ‘시안미술관’이다. 교사(校舍)를 다시 지은 수준이어서 넓은 운동장을 빼면 옛날 시골학교의 분위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 된 지붕 위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그래서 밝은 파란색을 의미하는 ‘시안(cyan)’을 변형한 이름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변숙희 관장은 특별한 뜻이 없다고 했다. 단지 중국 시안의 병마용을 보고 난 충격이 컸노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볼 시(視)에 눈 안(眼), 혹은 편안할 안(安)으로 해석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누구나 편안하게 찾아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곳이면 충분하다는 의미다.

시안미술관 앞마당에 설치된 '소통의 꽃'(김승영 작). 종이컵 전화기를 응용한 놀이기구형 작품이다.

시안미술관 앞마당에 설치된 '소통의 꽃'(김승영 작). 종이컵 전화기를 응용한 놀이기구형 작품이다.


변숙희 시안미술관 관장. 그는 시골 미술관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처음부터 중견 작가와 유망 작가의 실험적 작품을 전시했다고 말했다.

변숙희 시안미술관 관장. 그는 시골 미술관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처음부터 중견 작가와 유망 작가의 실험적 작품을 전시했다고 말했다.

시골 미술관이라고 해서 전시 작품까지 ‘촌스러운’ 건 아니다. 변 관장은 2004년 개관 때부터 전문가가 주목하는 중량감 있는 전시를 할 마음이었다고 했다. 국내외 중진 작가를 비롯해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유망한 작가의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전시해 인근 대구와 부산의 미술학도들이 필수적으로 찾는 지역의 문화거점으로 성장했다. KBS 대구방송총국 아나운서로 재직하던 시절, 퇴직 후를 생각하며 남편과 함께 모은 1,000여점의 작품은 아직까지 전시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

시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동서양 간 문화 교류가 활발한 곳이었다.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하지만 세계로 열린 도시였다. 시안미술관의 지향점도 비슷하다. 미술관을 개관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 담장을 없애는 거였다. ‘그들만의 리그’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의 이해와 협조가 필수였다. 그래서 지역 주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시작한 사업이 ‘별별미술마을’ 구상이다.

가래실 마을의 100년 된 정미소 외벽은 나이테가 드러나는 통나무 단면으로 장식했다. 작품명은 '연륜'이다.

가래실 마을의 100년 된 정미소 외벽은 나이테가 드러나는 통나무 단면으로 장식했다. 작품명은 '연륜'이다.


안테나를 세운 낡은 기와집 담장이 도자기 타일 작품으로 화사하게 변신했다.

안테나를 세운 낡은 기와집 담장이 도자기 타일 작품으로 화사하게 변신했다.


폐가와 담장에 이야기를 입히고 마을의 역사를 재해석한 조각과 설치작품을 전시했더니 관람객도 미술관을 벗어나 마을 구석구석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한적하던 시골에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지니 주민들의 차림새부터 달라졌다. 들에 갈 때 아무렇게나 걸치던 작업복에도 신경을 쓰고, 마을회관에 갈 때도 말쑥하게 단장하는 등 외형적 변화가 감지됐다. 골목에서 마주친 어린이와 청년 관람객이 ‘안녕하세요?’ 하며 먼저 인사를 건네니 주민들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별별미술마을’로 알려지기 전 가상리의 자연부락 명칭은 가래실마을이다. 옛날 가래나무가 많은 곳이었다고도 하고, 뒷산에서 흘러내린 골짜기가 농기구인 가래처럼 갈라져 있다고도 한다. 100여호가 흩어져 사는 가래실마을에는 현재 50여점의 공공미술작품이 설치돼 있다.

가래실마을 초입의 ‘MESSENGER-신몽유도원도’. 복숭아 농사를 많이 하는 마을의 특성을 반영한 작품이다.

가래실마을 초입의 ‘MESSENGER-신몽유도원도’. 복숭아 농사를 많이 하는 마을의 특성을 반영한 작품이다.


페가를 활용한 '새장의 새'. 관람객이 새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꾸민 작품이다.

페가를 활용한 '새장의 새'. 관람객이 새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꾸민 작품이다.


낡은 벽면 일부를 테라코타로 장식한 '꽃잎'. 주름 고운 노인이 곱게 꽃단장을 한 것 같다. 마을 포토존이기도 하다.

낡은 벽면 일부를 테라코타로 장식한 '꽃잎'. 주름 고운 노인이 곱게 꽃단장을 한 것 같다. 마을 포토존이기도 하다.


시작은 마을 어귀의 ‘MESSENGER-신몽유도원도’(조성묵 작)다. 스테인리스스틸에 과일이 무르익는 모습을 표현했다. 전통에 대한 긍지,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담았다. 마을 골목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집에 미학적 의미를 입힌 작품과 만난다. 낡은 정미소 외벽은 나이테로 장식됐다. 100년 역사를 상징하는 ‘연륜’(영천팀A)이다. 허물어질 듯한 흙 담장은 화사한 테라코타 ‘꽃잎’(김지희)으로 변신했다. 안주인의 순수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안테나가 유난히 돋보이는 낡은 기와집 담장은 한국 전통문양과 십이지상이 표현된 도자기 벽돌로 장식됐다. ‘마을의 수호와 안녕을 위한…’(신병기) 작품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담장 벽화를 따라가면 스러질 듯한 폐가 앞에 커다란 새 둥지가 놓였다. 관람객과 오브제의 입장을 바꿔 체험하는 ‘새장의 새’(손몽주)다. 마을 앞 우물 터에는 붉은 벽돌 전탑이 세워졌다. 가상리 들판의 변화를 감상하는 장소인데 폐쇄된 우물 앞에 거북 모양 바위가 있어 작품명이 ‘구지몽’(손한샘)이다. 풍요와 장수를 기원하는 동시에 이 우물의 끝이 동해와 연결돼 있으리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졌다.

마을 앞 옛 우물터에 설치한 전탑은 '구지몽'이다. 이 우물이 동해와 연결돼 있으리라는 작가의 상상력을 담고 있다.

마을 앞 옛 우물터에 설치한 전탑은 '구지몽'이다. 이 우물이 동해와 연결돼 있으리라는 작가의 상상력을 담고 있다.


풍선에 매달린 버스정류소의 작품명은 '풍선을 타고 떠나는 환상여행'이다.

풍선에 매달린 버스정류소의 작품명은 '풍선을 타고 떠나는 환상여행'이다.


모산재 뒤 저수지 수면에 떠 있는 '별의 별'. 위에서 보면 별 모양이다.

모산재 뒤 저수지 수면에 떠 있는 '별의 별'. 위에서 보면 별 모양이다.


마을 앞 하천 가에 설치된 '수달 관측소'. 실제 하천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작품으로, 외형은 물고기 대가기 모양이다.

마을 앞 하천 가에 설치된 '수달 관측소'. 실제 하천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작품으로, 외형은 물고기 대가기 모양이다.


버스정류소 뒤 공터에 세운 '나만의 별'은 별별미술마을의 상징적 작품이다. 흔히 보는 '어린왕자'가 아니라 순수함이 남아 있는 옛 시골 아이 형상이라 더욱 정이 간다. 니콘 D750 카메라로 감도 800, 조리개값 8 상태로 30초간 촬영.

버스정류소 뒤 공터에 세운 '나만의 별'은 별별미술마을의 상징적 작품이다. 흔히 보는 '어린왕자'가 아니라 순수함이 남아 있는 옛 시골 아이 형상이라 더욱 정이 간다. 니콘 D750 카메라로 감도 800, 조리개값 8 상태로 30초간 촬영.


마을 앞 버스정류소는 스테인리스 풍선 다발에 매달려 있다. ‘풍선을 타고 떠나는 환상여행’(권순자)이다. 바로 뒤 공터에는 어린 아이가 계단을 올라 별을 따는 형상의 ‘나만의 별’(김용민)이 세워졌다. 외국에서 온 ‘어린왕자’가 아니라 수수한 차림의 동네 꼬마여서 더 정감이 간다. 깨끗한 영천의 밤하늘을 표현한 작품인데, 별별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른에게는 추억을, 아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별이다. 안동 권씨 사당인 모선재 뒤편 저수지에도 스테인리스 별이 빠져(?) 있다. 바람과 물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별의 별’(박용석)이다. 가상교 근처의 ‘수달 관측소’(장준호), 보현산 벌레들이 놀러 온 모습을 표현한 ‘나들이’(백성근) 역시 동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된 마을 역사 재해석

가래실 마을의 ‘지붕 없는 미술관’은 걷는길, 귀호마을길, 바람길, 도화원길, 스무골길 등 관람 코스를 다섯 갈래로 구분해 놓았지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모두 볼 수 있어 굳이 코스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다섯은 외지인이 아니라 사실 가래실 주민들에게 의미 있는 숫자다. 이곳은 안동 권씨, 영천 이씨, 창녕 조씨, 청주 양씨, 평산 신씨 집성촌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이들 가문의 사당과 정자 역시 별별미술마을을 구성하는 자산이다.

가래실 별별미술마을의 풍양정. 풍양정은 정자이면서 안동 권씨 후손 권응도의 호이자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가래실 별별미술마을의 풍양정. 풍양정은 정자이면서 안동 권씨 후손 권응도의 호이자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전국 최초의 마을 박물관인 가래실 '우리 동네 박물관'에 주민들의 표정을 담은 사진이 벽면 하나를 가득 장식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마을 박물관인 가래실 '우리 동네 박물관'에 주민들의 표정을 담은 사진이 벽면 하나를 가득 장식하고 있다.


다섯 가문 중에서도 안동 권씨 유적이 비교적 많다. 마을 안쪽 풍영정은 입향조 권열의 후손인 권응도(1616~1673)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풍영정은 건물인 동시에 그의 호이고, 정미소 앞 오래된 느티나무도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마을 회관 옆에는 ‘임진왜란신녕의병창의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신녕(현 영천시 신녕면) 의병을 이끈 의병대장 권응수(1546∼1608) 역시 이 마을 출신이다. 마을 서쪽의 ‘꽃이 피네’(이운구ㆍ김경희)는 400여년 전 이 골짜기에서 스러져간 의병들을 추모하는 작품이다.

마을 중앙의 ‘우리 동네 박물관’은 전국 최초의 마을 박물관이다. 창고를 개조한 전시실로 들어가면 1966년 찍은 화산동부국민학교 제15회 졸업사진을 시작으로 마을 주민과 반려 동물 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매일 오후 노인회관에 모여 민화투를 즐기는 할머니들, 툭하면 버스를 놓치는 뒷마을 아주머니, 두 평 남짓한 상회를 지키는 담배 가게 주인, 청년회장님 댁 강아지 진풍이와 정미소 앞집의 누렁소, 한가로이 오후의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과 이름 모를 들꽃까지 모두 가래실 마을의 주인공이다.

귀호마을의 귀애정. 조선 후기 문신 조극승을 기리는 시설이다.

귀호마을의 귀애정. 조선 후기 문신 조극승을 기리는 시설이다.


귀애정에 설치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주민들로부터 들은 마을 이야기를 병풍 모양 작품에 옮겨 놓았다.

귀애정에 설치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주민들로부터 들은 마을 이야기를 병풍 모양 작품에 옮겨 놓았다.


가래실에서 귀호마을로 가는 도로변 옹벽을 장식한 '신몽유도원도'. 시간이 흐르면서 색이 많이 바랬다.

가래실에서 귀호마을로 가는 도로변 옹벽을 장식한 '신몽유도원도'. 시간이 흐르면서 색이 많이 바랬다.

별별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약 3.5㎞ 떨어진 화남면 귀호마을까지 이어진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귀애 조극승(1803∼1877)을 기리기 위해 그의 동생이 지은 귀애정과 연못 주변으로 ‘고추잠자리의 여정’(박만철), ‘휴식과 기다림’(박성철), ‘저 하늘 별을 찾아’(김용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리금홍) 4개 작품이 설치돼 있다. ‘마을 입구 저 앞에 들오는 데 보면 바위가 커다란 게 두 개 있어요. 앞의 것은 모양이 꼭 거북같이 생겼어요. 그 주변에 크지 않지만 호수가 여남은 개 넘게 있었어요.’ 마지막 작품은 귀호리(龜湖里)에 누대째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새겨 바람이 통하는 병풍 형식으로 세워 마을의 유래를 전하고 있다.

이 밖에 가래실에서 귀호리로 가는 길목에는 ‘가상리에서 바라보다’ ‘신 몽유도원도-바람 부는 날’ ‘신 강산무진도’ 등 대형 벽화작품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나며 윤곽이 희미해지고 있다. 노인들만 남은 농촌마을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쓸쓸하다. 별 볼 일 없던 마을에 별처럼 반짝이는 희망을 보여 준 별난 프로젝트가 다시 한번 실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

영천=글?사진 최흥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