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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권 23억' 허물어지는 동네, 방배동 모자의 삶은 외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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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여기 들어와 살려고요? 살기 쉽지 않을 텐데요."(방배동 A부동산)
발달장애 아들을 돌보다가 숨진 김모(60)씨의 거주지였던 서울 서초구 방배동 OOO-OO번지. 부동산을 찾아가 거주 의사를 내비쳤더니, 깜짝 놀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관련기사: 사망 5개월 만에 발견된 엄마, 노숙자가 된 아들… 방배동 모자의 비극)
지하철역에서 내려 경사길을 따라 걷다가 도착한 김씨 모자의 보금자리 주변엔 붉은색 벽돌로 쌓아 올린 허름한 주택들이 빽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외벽 사이 시멘트 줄눈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고, 대낮인데도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외벽에 '붕괴위험 주차금지'라고 적힌 집들이 처분을 기다리는 모습에서 이곳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서초구는 강남·송파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 부촌으로 꼽히지만, 주민들은 이곳을 '방천동'이라고 했다. 원래 서민들이 살던 동네라서, 서초구의 봉천동이란 뜻에서 방천동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이 지역에선 다세대 주택에 살던 주민 김씨가 숨진 지 5개월 만에 발견됐다. 숨진 김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 최모(36)씨와 10년 넘게 이 집에서 거주했다. 어머니가 숨을 거둔 뒤 어쩔 줄 몰라 집에서 나온 아들 최씨는 이수역 근처에서 노숙을 했고,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 길을 찾았다.
김씨 모자가 살았던 집 인근엔 관리가 잘 된 큰 집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소방도로도 없을 정도로 좁은 길을 따라 김씨 집에 가까워질수록 페인트가 빗물에 씻겨 들뜬 채 방치돼 있는 집들이 많아졌다. 1970~80년대 강남 개발이 시작될 무렵 지어진 40년이 넘은 집들이다. 방배동 부동산중개업자들은 "김씨 모자가 살던 집은 특히 낙후됐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가 살던 동네에 재건축으로 들어설 아파트 분양권의 호가는 23억원(112㎡) 수준을 넘어섰다. 프리미엄만 11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매매가가 치솟는 동안 전·월세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재건축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동네엔 형편이 어려운 세입자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싼 값으로 세를 주고 이사를 간 집주인들이 늘었던 탓이다.
이곳뿐만 아니다. 재건축·재개발을 앞둔 서울의 동네 풍경은 대동소이하다. 국내 아파트 중 실거래가 기준으로 가장 비싼 용산구 '한남더힐'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한남동 재개발 지역도 깎아지는 경사로에 갇힌 취약계층의 성이 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의 배경이 된 마포구 아현동 또한 '마용성'의 명성을 불러온 고가 신축 아파들 사이에서 초라한 1970년대 주택촌이 덩그러니 앉아 있다. 한남동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강모(57)씨는 "살기가 힘든 집이지만 매매할 땐 최하 10억원부터 시작한다"며 "어떤 집주인이 실거주를 위해 집을 사겠냐"고 반문했다.
부동산시장에서 벌어지는 전(錢)의 전쟁엔 관심이 크지만, 재건축·재개발 지역 세입자들의 주거환경이 나빠지는 상황에 대해선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집주인 입장에선 재개발이 조만간 시작될 수 있어, 적은 임차료를 내는 세입자를 위해 굳이 집을 개·보수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전기가 나가고 물이 새도 집주인들은 관심 밖이다. 분양권을 더 받기 위한 지분 쪼개기도 임대인 책임을 묻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숨진 김씨가 세들어 있던 다세대주택은 총 6가구로, 지분을 두 사람씩 공동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세입자들간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현동에서 부동산을 하는 박모(60)씨는 "올 여름 기록적인 장마 때 세입자들이 다투는 걸 여러 차례 목격했다"며 "집주인이 집을 들여다 보지 않으니, 건물에서 물이 새도 세입자들끼리만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실이 늘면서 이웃간 소통은 단절됐다. 매매가는 물론 전ㆍ월세 가격까지 치솟는 현실에서 새 보금자리를 찾아 동분서주해야 하는 세입자들에겐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하다. 숨진 김씨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김씨 집 우편함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보낸 안내문이 쌓여 있었다. 재건축 진척에 따라 곧 이주해야 하니, LH에서 운영하는 기존주택 전세임대주택 대출 서비스를 받아 떠날 채비를 하라는 의미였다.
김씨 집 근처에서 30년째 살고 있는 김모(62)씨는 "예전보다 동네가 삭막해진 건 사실"이라며 "재건축한다면서 가난한 세입자들이 동네에 많아졌는데, 언제까지 발 붙이고 산다는 보장이 없어 소통을 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소통 부재는 비극을 낳았다. 김씨 집 근처에는 김씨 사망소식이 알려지기 전에도 연일 주민센터 직원들이 순찰을 돌았다. 이웃주민 누군가가 김씨 모자의 처지를 알았거나, 김씨 집 주변을 오갔던 주민센터 직원들이 아들 최씨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모자의 비극을 막았을 수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이 밀집해있는 재개발·재건축 거주지에선 지역사회의 관리망이 더욱 촘촘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최재성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건축·재개발 지역은 토박이 주민들이 사라지고 왕래가 줄어드는 특성이 있다"면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매뉴얼에 따라 취약계층 발굴에 나선다고 해도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으니 더욱 세심한 행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행정절차가 간소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김씨 모자처럼 빈곤층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 못하는 건 까다롭고 엄격한 복지 심사 과정을 학습했기 때문"이라며 "시민들이 쉽게, 자신의 권리로서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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