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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막힌 도시... 휠체어를 위한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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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바퀴에게 서울의 길은 포악하다. 울퉁불퉁한 돌길부터 심하게 비틀려 있으나마나 한 경사로, 좁고 비탈진 보도, 그 한가운데 떡 하니 서 있는 불법 주차 차량들까지. 지하철 역사에 들어서면 어떤가. “출퇴근길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요. ‘휠체어에 양보하라’는 안내문이 버젓이 붙어있는데도요.” 두 다리 튼튼한 비장애인들이 점령한 엘리베이터는 휠체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다. ‘턱’ 없는 음식점은 아직도 턱없이 적다. “80년대에는 침수 때문에 단을 만들었죠. 최근엔 단이나 턱을 설치하는 인테리어가 유행이었어요. 보기에 예쁘다고.” 장애인의 생존권은 다수의 편의나 취향 앞에서 번번이 희생돼 왔다. 장애인에게 집 밖을 나서는 일은 이제 모험을 넘어서 ‘서바이벌 게임’이 됐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지난 2일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문화진(33)씨와 동행하며 ‘바퀴를 위협하는 것’들을 살펴봤다.
“그냥 보기엔 편평해 보이지만 휠체어를 타면 달라요. 굴곡지고, 울퉁불퉁하고, 기울어져 있고… 휠체어가 위아래, 옆으로 심하게 흔들려서 전복될 위험도 크죠." 문씨처럼 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인에게 속도 방지턱 대신 깔아 놓은 ‘자갈길’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문씨는 "경사가 심한 경우리 차도로 우회하는 게 안전하죠”라고 했지만, 휠체어는 수동·전동 상관없이 도로교통법상 ‘보행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차도로 내려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과실 비율이 더 높다.
인도 한가운데 불법 주차 된 차량들은 가장 골치 아픈 장애물이다. 비장애인들은 주차된 차들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갈 수 있지만, 앞뒤 폭 1.5m, 너비 0.7m에 달하는 덩치 큰 전동휠체어는 통행 자체가 가로막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씨는 외출할 때마다 수 십번씩 ‘시뮬레이션’을 한다. “목적지 주변의 ‘로드뷰’를 샅샅이 뒤져보는데, 차가 들어가기 힘든 골목길은 한참 예전 자료라 한계가 있어요.”
장애인들에겐 ‘정보 접근성’이 이동의 자유와 직결된다. 그런데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처럼 국내 포털 사이트 지도 정보는 반려견 출입 가능 여부부터, 주차장과 와이파이 유무, 남녀 화장실 분리 여부까지 제공하면서도, 정작 ‘휠체어 진입 가능 여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구글맵이 2018년 ‘휠체어 이동 가능 경로’ 서비스를 시작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장애인들에게 맛집의 정의는 곧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장애인 친구들을 만날 때 약속장소는 언제나 정해져 있어요. 타임스퀘어나 스타필드 같은 ‘쇼핑몰’이죠.” 비장애인들도 쇼핑 카트를 끌고 다니기 때문에, 쇼핑몰은 도시에서 몇 안되는 ‘바퀴 친화적’ 공간이다.
개인 식당이나 카페 등을 방문할 땐 먼저 전화를 걸어 휠체어 진입 가능 여부를 확인한다. “턱이 있는데도 ‘그냥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비장애인이 보기엔 ‘이걸 못 넘겠어?’하는 건데, 그렇게 작은 턱도 전동휠체어가 넘지 못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막상 가서 당황해하고 있으면 ‘들어서 옮겨주겠다’고 하시죠.” 하지만 전동휠체어의 무게가 120㎏, 사람 무게까지 합하면 170㎏를 거뜬히 넘기다 보니, 성인 남성 4명이 한꺼번에 매달려도 들어 옮기기는 쉽지 않다.
“몇 달 전 다른 장애인 친구와 함께 카페에 방문했는데 점원이 ‘휠체어가 들어오면 다른 손님 앉을 곳이 부족하니, 밖에 두고 내려서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휠체어가 신체의 일부와 같은 장애인에게는 ‘몸에서 다리를 분리하라’는 소리와 다름없는 모욕적인 말이었다. “’접을 수 있는 것 아니었냐’는 이야기도 정말 자주 들어요.” 까마득한 무지에 상처를 입다 보면 점점 더 안으로 숨게 된다. “이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심리적 타격을 입고 한동안 바깥으로 안 나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악순환이죠.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크게 늘어난 무인주문기(키오스크)는 장애인에게 새로운 복병이다. 휠체어에 앉아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닫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엔 가게에 무인주문기만 있는 경우도 많아서 난감하죠. 장애인뿐 아니라 어린이들 손도 안 닿아요.” 계산대도 성인 남녀의 평균 키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어, 휠체어에 탄 채로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곳들이 많다. 주문이라도 하려면 크게 소리쳐 점원을 불러야만 한다.
“외출하면 물도, 커피도 잘 안 마시게 돼요. 제대로 된 장애인 화장실을 갖춘 곳이 드무니까요.” 2년 전부터 ‘무장애 지도’를 만들고 있는 문씨가 현장 답사 때마다 중점적으로 살피는 건 화장실이다. 문이 잘 잠기는지, 안에서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충분하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휠체어는 들어갔는데, 문이 닫히질 않아서 문을 연 채로 용변을 봐야 했던 적도 있었어요. 안에 사람이 없는 게 분명한데 계속 ‘사용중’이라고 표시된 경우도 많아요. 노숙자 무단 사용을 막으려고 일부러 잠가둔 거죠.”
대중교통의 사정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나아졌다. 서울시는 지난해 ‘2023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모든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도시 서울’에 국한된 얘기다.
“제가 살고 있는 경기도는 상황이 아직도 많이 열악해요. 버스 기사들의 경우, 휠체어 승객을 어떻게 태워야 하는지, 좌석은 어떻게 접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죠.”
특히 마을버스의 경우엔 저상버스가 턱없이 부족하다. “자신이 사는 동네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건 시내버스보단 마을버스거든요. 마을버스를 탈 수 없으니, 3~4km 정도 되는 애매한 거리는 그냥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돼요. 골목길은 인도가 분리되어 있는 큰길보다 더 위험하지만 달리 도리가 없죠.”
문씨는 2018년부터 사회적 기업 ‘모아스토리’에서 무장애 지도를 만들고 있다. ‘無장애’, 말 그대로 ‘장애의 경계가 사라진’ 장소를 찾아 지도에 기록하는 작업이다. 문씨와 같은 장애인 리포터와 비장애인이 팀을 이뤄 현장답사를 하고, 지도를 만든다.
이날 취재에 동행한 강민기(43) 모아스토리 대표는 “구로, 충무로, 연남, 망원에 이어 최근엔 전남 익산의 무장애 지도를 제작했다”며 “앞으로는 전국적으로 무장애 지도 서비스를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행 답사를 마치며 문씨는 ‘무장애 여행 선진국’에 다녀온 경험을 들려줬다. “외국인 관광객 입장이었지만 어딜 가든 국내보다 다니기 쉬웠어요. 특히, 대만에선 비장애인들이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절대 이용하지 않더라고요.”
문씨는 더 많은 장애인들이 길에서 보이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모두가 외출을 삼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가까운 미래엔 장애인들의 활동 영역이 더 넓어졌으면 해요. 버스와 지하철을 자유롭게 타고 내리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더 이상 ‘신기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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