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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총 한 자루 바꿔도 500억… 뛰는 기재부 위에 나는 국방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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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항공모함끼리 크게 맞붙은 전쟁으로 유명합니다. 1941년 12월 7일, 항모를 총동원해 전투기를 출격시킨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 미 해군기지를 공습했습니다. 미국은 이를 ‘국치일’로 여길만큼 피해가 막대했고, 6개월 뒤 서태평양 미국령 섬 미드웨이에서 설욕전을 준비합니다. 일본 함대가 미드웨이 점령을 위해 몰려온다는 첩보를 입수, 항모를 대기시켰다가 전투기로 기습 공격하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성공했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패한 일본은 이후 패망의 길을 걷습니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함대와 함포 중심의 해전 양상이 항모전으로 바뀌면서 영국과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강대국들은 항모 증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반도 국가의 특성상 대양해군을 꿈꾸는 우리 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8월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에서 ‘경항모 2033년 전력화’를 선언했습니다. 전투기 70여대 탑재가 가능한 항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항모(20대 수준)를 도입해 작전 능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입니다.
그러나 경항모 착수 예산 100억원은 최근 52조원 규모의 내년도 국방예산을 심의한 국회에서 퇴짜를 맞습니다. 지난달 11일 열린 국방위 예결소위에서 ‘한반도 안보 지형에 과연 경항모가 필요한가’라는 지적이 나온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더구나 경항모는 그 도입의 적정성을 따지는 ‘사업타당성 조사’(사타)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본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죠.
사실 이날 올라온 국방예산 가운데 '사타' 미완료 사업은 경항모 외에도 14건이 더 있었습니다. 검증 미비를 이유로 기획재정부가 올 9월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에서 빠진 사업들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자격 미달로 기재부 검토 단계에서 탈락한 이 사업들은 어떻게 다시 국회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걸까요. 그것도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슈퍼 갑’ 기재부를 패싱한 채 말입니다.
정부 각 부처들은 매년 6월을 전후해 내년도 예산안을 짜서 기재부에 제출합니다. 그러면 기재부는 송곳 검증을 거쳐, 필요한 예산은 남기고 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과도한 예산은 삭감합니다. 부처들이 가장 긴장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기재부 검증을 통과한 예산만이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되기 때문입니다. 이후 ‘국회 상임위 예비심사→예결위 전체회의→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예결위 소소위→국회 본회의’ 과정을 거쳐야 본예산으로 확정됩니다.
물론 정부안에서 빠졌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안에 없던’ 예산을 끼워 넣는 우회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원들이 해당 부처를 대신해 순증액 요청을 해주면 됩니다. 지역구를 챙긴다며 여야 실세 의원들이 막판에 집어넣는 ‘쪽지예산’처럼 말이지요. '사타'를 마치지 않은 국방예산 상당수도 그동안 이 샛길을 자주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를 꼼수나 편법으로 매도할 수만은 없습니다. 국방예산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국방예산은 일반 부처 예산에 적용되는 예비타당성조사(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가 면제되는 대신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사타(500억원 이상)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들이 500억원을 초과해 조사가 밀려 있고, 결과도 신속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낸 왕정홍 방위사업청장은 최근 “지자체에서 체육관을 짓거나 도로를 만드는 500억원 이상 사업은 대규모라 몇 년 전부터 충분히 준비하는데 방사청에 와 보니 그런 사업이 한두 개가 아니다”라며 “소총을 한 자루 만들더라도 500억 이상 들어간다. 방사청에서 1년에 200개 사업을 하는데 사타에 해당하지 않는 사업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방위력개선비는 아니지만 국방부가 이번에 신설한 ‘병사 이발비 월 1만원’ 예산만해도 연간 421억원이 투입됩니다. 단일 사업의 규모가 일반 예산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얘기죠.
때문에 기재부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매년 5, 6월 기준으로 미완인 '사타'가 예산 심사가 한창인 연말에 완료되거나 혹은 중간 결과에서 ‘타당성 있음’ 결론이 나오면 국회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무기체계 도입이 수개월 차이로 1년 넘게 지체되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올해 예산안 심사에서는 군 당국의 이런 관행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21대 국회에서 처음 국방위에 합류한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여당 소속인 김 의원이 “한두 푼도 아닌데, 사타가 통과될 것을 확신하고 예산에 반영했다가 나중에 통과가 안 되면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며 “국방 예산은 한 번 출발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 세금을 쓸 때는 주어진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며 “본인 돈이면 이렇게 편하게 예산편성 하겠느냐. 전부 부동의하겠다”고 못박았습니다. 윤 의원 역시 “군은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만 강조하고, 동의를 안 해 주면 마치 국방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된다”며 “정말 중요한 사업이라면 더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국회 심의 일정이 매년 바뀌는 것도 아닌데, 절차를 사전에 마치기 위한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이라고 군 당국을 질책한 것입니다. 실제로 국회는 군 당국이 이 같은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안이해졌다고 지적합니다. 국방위 관계자는 “군 당국자들은 기존에 편성된 사업들이 삭감되는 걸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더라”며 “어차피 미리 준비해 놓은 진짜 증액 예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총액을 유지해야 하는 예산 심사는 ‘선(先) 삭감, 후(後) 증액’의 순서로 이뤄지는데, 추가로 집어 넣으려는 예산만큼 기존의 예산이 먼저 삭감돼야 합니다. 이에 대비해 군 당국은 덜 중요한 예산을 임시로 배정해 총액을 확보해 놓는다는 것이죠.
국회에서 뜻밖의 제동이 걸리면서 군 당국은 ‘멘붕’에 빠졌습니다. 쪽지 예산을 넣으려고 기존 예산 삭감에 동의했는데, 증액마저 불발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지요. 방사청은 부랴부랴 “이제 막 사타 결과가 나와서 보고서가 인쇄 중”이라거나 “다음 주면 최종 결과가 나온다”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국방위 소속 일부 의원들이 "국방비가 너무 줄어도 대외적으로 안 좋은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조만간 사타 중간 결과가 나오는 사업에 한 해 증액을 받아들이겠다"는 절충안을 마련했고, 군 당국은 그제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국방예산의 특수성 때문일까요. 국방부 차관이나 방사청장에 기재부 고위관료를 앉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재정 논리를 앞세우는 예산 당국과 안보 논리로 맞서는 군 당국간 간극을 줄이고 국방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목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명박(MB) 정부 시절인 2009년 재정경제부(현 기재부) 출신의 장수만 국방부 차관이 이상희 장관 몰래 ‘군 당국이 11.5% 증액으로 편성한 방위력개선비를 5.5%가량 줄이는 안’을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던 하극상이 대표적입니다. 이에 격노한 이 장관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국방예산 증가율은 경제논리와 재정회계 논리를 초월하는 의미가 있다”는 공개 서한을 보내며 장 차관과의 갈등을 표면화했습니다.
'국방예산=무소불위 예산'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군 당국의 자정 노력과 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할 것입니다. 국방예산의 특수성을 이유로 언제까지 절차 미이행을 당연하게 여기며 샛길로 다닐 수만은 없습니다. 앞으로 군 당국은 예산 심사 때 '사타' 일정을 얼마나 맞추려고 노력했는지, 국회에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겁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현재 500억원 이상인 사타 기준을 1,0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군 당국이 과연 내년에는 당당하게 예산 심사를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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