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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발걸음 끊기니 "날 버렸어" 그리움이 원망으로

입력
2020.12.07 04:30
수정
2020.12.07 08: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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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벼랑 끝 노인들] <상> 요양원의 노인들

편집자주

그러잖아도 위태로웠던 노인들의 삶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뜻하지 않은 죽음과 죽음보다 더한 고독입니다. 코로나19 시대 삶의 존엄을 잃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경기 안산시 상록수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이 무료한 듯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안산=홍인기 기자

경기 안산시 상록수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이 무료한 듯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안산=홍인기 기자


"코로나 탓에 못 오는 거라 말씀 드려도..."

"애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아요. 날 버렸나 봐. 어쩌죠.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애들 좀 보게 해줄래요?"

김모(83) 할아버지 입술은 더 말할 것이 있는 듯, 조금 더 들썩이다 말았다. 대신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떻게 지내시냐"는 질문은, 그렇게 뼈에 사무치는 얘기인 듯했다.

3년 전부터 경기 안산시 상록수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김 할아버지는 올해부터 완전히 격리 상태에 들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모든 면회가 중단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던 자식들 발걸음이 뚝 끊기자 할아버지 마음은 새까맣게 타버렸다. 면회 대신 영상 통화라도 한다지만, 중증 치매 환자인 김 할아버지에겐 큰 의미가 없다. 얼굴 보고 어루만져야 할 것을 화면 보는 걸로 대신하자니, 대화는 길어야 1~2분 안부인사 정도면 끝이고 그나마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복지사들이 "자식들이 할아버지를 버린 게 아니고, 코로나19 때문에 못 오는 거예요" 반복해서 말해줘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내려갔던 지난 10월, 유리벽 너머이긴 하지만 자식들이 면회를 왔다. 그 때 이미 김 할아버지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 같았다. 가족들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김 할아버지는 시무룩하니 듣는 둥 마는 둥했다. 가족들이 다 돌아간 뒤 김 할어버지는 요양원장에게 속내를 드러냈다. "난 이제 원장님밖에 없어요. 내 가족들은 날 버렸어요."

7년 전 강원도의 한 요양원에 들어온 이모(90) 할머니 사정도 마찬가지다. 정신은 또렷하다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지쳐가고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야 바깥바람도 쐬고 그랬어요. 집이 가까워서 명절이나 생일엔 집에도 종종 갔는데, 이젠 아무것도 안되니 그저 갑갑해요." 한 달에 몇 번씩 요양원을 찾던 봉사자들 발길도 뚝 끊겼다. "전에는 학생들이 노래도 불러주고, 청소도 해주고 그랬는데, 이제는 요양원에서 아예 바깥 사람을 볼 수가 없어요." 요양원 내 복지사들 외엔 마주치는 사람이 없다. 요즘 이 할머니 입에선 "너무 지루해 힘들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경기 안산시 상록수요양원에서 한 어르신이 책상에 앉아 색칠공부를 하고 있다. 안산=홍인기 기자

경기 안산시 상록수요양원에서 한 어르신이 책상에 앉아 색칠공부를 하고 있다. 안산=홍인기 기자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몰라" 보호자들도 답답

코로나19로 일상을 빼앗긴 건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취약계층인 노인들, 그것도 시설에 고립된 노인들은 더 그렇다. 가족 등 친밀한 이들을 보지 못한 그리움은 마음의 멍이 됐고, 그로 인해 병세가 악화된 이들도 늘고 있다.

강원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씨는 "자주 보던 사람을 못보고, 집단치료도 못하다 보니 노인들의 인지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며 "심지어는 한국전쟁 때를 떠올리는 분들도 계시다"고 전했다. 외부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고립상태가 이어지다 보니, 전쟁 경험이 있는 노인들은 지금을 전쟁으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그 때처럼 생각한다는 얘기다. 주변 환경과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 이뤄지지 않으니 병세 악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보호자들 마음도 편치 않다. 여든 넘은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고 있는 정모(42)씨는 "예전에는 아버지가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직접 봤는데, 지금은 무엇을 어떻게 제대로 하고 계시는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갑작스러운 이별도 걱정거리다. "하필 이 때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버려진 느낌이 드실까 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80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50대 이모씨도 "예전처럼 같이 산책할 수도 없으니 하루하루 죄스러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부족한 일손에 항의와 민원 속출

환자와 가족 양측의 이런 불안은 고스란히 요양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면회가 금지되고 불안만 커지니 "제대로 관리해주는 것 맞냐"는 항의와 민원이 속출한다. 영상통화를 하던 보호자가 '우리 엄마 머리가 엉망이다. 빗질도 안해주냐'고 항의하거나 '우리 아버지 왜 더 병세가 짙어졌느냐, 관리 안해주는 거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면회가 안 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일부러 가족을 못 만나게 한다"며 요양원을 경찰에다 노인학대로 신고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오영우 상록수요양원장은 "외부 봉사자들이 끊기면서 이 모든 부담이 복지사들에게 주어지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을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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