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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이 넘치는 사회

입력
2020.12.04 15:00
수정
2020.12.04 15:49
22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로 인해 소비 지형이 배달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사회 문제도 발생 중이다. 배달과 밀접한 이커머스 앱 기획자로서 직접 배달원 입장이 되어 보고 싶어 최근 배달의 민족과 쿠팡이츠 도보 배달을 시작했다. 배달 수요가 폭증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일반인 도보 배달까지 오픈된 것인데 젊은 여자들이 운동 겸 많이 참여한다고 한다. 이런 유휴 인력을 사용하다니 물류 혁신이 아닐 수 없다.

배달원 등록은 간단했다. 특히 쿠팡이츠는 등록 후 바로 시작 가능했다. 첫 주문이 들어왔다. 집 근처에서 치킨을 픽업해서 5분 정도 거리의 고객 집에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완료하면 3,1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식당 가기, 픽업하기, 고객 집 찾기, 배달하기. 앱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보상이 명확해서 게임 퀘스트 깨는 느낌이었다. 지도가 직선거리만 표시하고 최적 길 찾기를 제시해주지 않는 점은 불편했지만 전반적으로 잘 만든 앱이었다.

배달을 완료하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고객 집이 음식점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가까운데 이게 귀찮아서 돈 내고 배달을 시키고 나는 이걸 가져다주고 돈을 벌며 플랫폼은 수수료를 가져가는구나. 어찌 되었건 돈이 도니까 긍정적인 일인가.

직접 배달을 시작하니 보이는 것이 있었다. 도로 위에는 생각보다도 더 많은 라이더들이 있었다. 문제는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라이더는 시간이 아까운지 연신 닫힘 버튼을 눌러댔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문이 제대로 열리기도 전에 음식을 픽업하러 뛰어갔다. 그러다 부딪힐 뻔한 백발이 성성한 경비원 할아버지는 ‘정말 문제다, 문제..’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서울 강남구 인도를 달리고 있는 배달 오토바이. 이한호 기자

서울 강남구 인도를 달리고 있는 배달 오토바이. 이한호 기자


치킨 배달하는 길, 인도인데 오토바이가 다녔다. 이러다 누구 한 명 칠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되었다. 차들은 모두 멈춰 섰으나 배달 오토바이 한 대는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했고 나는 거의 치일 뻔했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화가 났다.

교통 법규를 지키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본인의 생명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분명히 근절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저렇게 무리하게 운행을 해야 배달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배달 외에 더 나은 선택지가 없다.

배달 앱 기본 화면에는 오늘 번 돈이 크게 표시된다. 저녁 내 했는데 도보로는 오늘 저녁값 정도를 겨우 벌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재미로 해본 것이라 얼마를 벌건 상관없었으나 이게 생업이라면 그렇게 여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배달 건수와 소득이 정비례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운행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안전을 이야기해봐야 소득 안정 없이는 소용이 없다.

동네를 걸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폐업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오던 가게들도 문을 닫았다. 한 건물은 1층 전체가 비어 있었다. ‘권리금 없음’. 이렇게 떠난 사장님과 직원들은 무슨 일을 할까? 배달?

실물경제가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이들에게 배달이 노동의 보루가 되고 있다. 도로의 안전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배달원 처우와 플랫폼의 역할에 대해 적극 논의해야 할 때다.



곽나래 이커머스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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