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는 왜 '최고·최대·최초'에 집착할까

입력
2020.12.05 04:30
11면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부르즈칼리파 앞 인공호수에서 펼쳐지는 세계 3대 분수쇼. 한국일보 자료사진

부르즈칼리파 앞 인공호수에서 펼쳐지는 세계 3대 분수쇼. 한국일보 자료사진

<13>아랍에미리트가 '중동의 섬'으로 불리는 이유

국가명보다 도시명으로 더 잘 알려진 나라가 있다. 바로 아랍에미리트다. 일반적으로 해외 출장을 가거나 관광을 갈 때면, 행선지를 영국, 미국 등 국가 명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로 출장이나 관광을 갈 경우에는 나라명 대신 두바이, 아부다비와 같은 도시명으로 행선지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만큼 아랍에미리트에서 두바이와 아부다비와 같은 도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랍에미리트를 도시 중심으로 인식하게 된 배경은 아랍에미리트가 처한 경제적 상황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정확한 명칭은 아랍에미리트연합국이다.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아랍에미리트는 7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연방국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 지역은 여러 부족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이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해적 때문이다. 17~19세기 사이 ‘해적 해안’으로 불릴 정도로 해적들의 소굴이었다. 영국이 이 지역을 지배한 이유 역시 초기에는 해적 소탕을 위해서였다.

이후 이들 지역은 영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고, 1853년에는 영국이 이 지역 부족장들과 영구적인 해상평화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지역 부족들은 1892년 영국의 허락없이 어떠한 나라와도 외교관계를 체결하지 않는다는 조약까지 서명할 정도로 대외적인 면에서는 철저히 영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들 지역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영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결국 부족 간의 잦은 갈등과 분쟁으로 좀처럼 발전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영국 입장에서는 어업과 진주 채취를 주업으로 삼고 있는 가난한 지역에 굳이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

이처럼 이들 지역 내부 문제에 대해 방관적 입장을 취하던 영국의 태도는 20세기 초 아랍에미리트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부터 달라진다. 영국은 이들 지역 내 원유채굴권을 확보하기 위해 부족 간 영토 분쟁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당시 이들 지역을 대표하는 9개 부족들은 영토 경계 문제를 영국에 일임했지만, 원만한 해결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9개 부족 중 바레인과 카타르로 분리된 부족들을 제외한 나머지 7개 부족인 두바이(Dobai)를 비롯 아부다비(Abu Dhabi), 샤르자(Sharjah), 아즈만(Ajman), 푸자이라(Fujairah), 라스알카이마(Ras Al Khaimah), 움알콰인(Umm Al Quwain) 연합하여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한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정치제도는 아부다비의 국왕이 대통령의 지위를 두바이의 국왕이 부통령 겸 총리 역할을 수행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석유매장량을 보유한 국가인 아랍에미리트는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부유한 중동국가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실제 두바이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슈퍼카를 흔히 목격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친숙한 만수르 역시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부족 왕자 출신이다. 일부 왕족만이 부자가 아니라 아랍에미리트 국민 모두에게 오일머니로 벌어들인 돈으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주고 있다. 교육과 의료를 무상으로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국민들 중 해외 유학을 원할 경우 무상으로 유학비용을 제공해 주며, 의료 부분 역시 아랍에미리트 내의 의료서비스로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일 경우에는 해외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아랍에미리트는 실은 중동의 여러 국가 중 가장 큰 고민을 안고 있다. 바로 석유가 가장 먼저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석유 가채연수는 30년에 불과해 2050년이면 고갈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아랍에미리트는 그 어느 중동국가보다는 석유 고갈 이후의 상황을 대비해 왔던 것이다. 1986년 석유발견 당시 두바이의 지도자였던 세이크 라시드(HH Sheikh Rashid)는 석유자원의 고갈을 대비하여 자유무역지대 조성과 학교, 병원, 도로 등 각종 인프라 건설 등의 노력을 경주해왔다. 두바이와 아부다비가 중동의 여타 도시와 달리 국제적인 도시의 입지를 갖게 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석유가 고갈된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두바이로 몰려들어 다양한 경제활동이 전개되길 희망했다. 하지만 모래 바람만 불어대는 열사의 중동도시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아랍에미리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 안 남은 석유를 판매한 자금으로 아랍에미리트의 대표 도시를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전략이었다.

가장 열악한 환경의 도시이자, 뒤늦게 시작한 후발주자라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는 세계 최고(最高), 세계 최대,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두바이는 부르즈 칼리파라는 세계 최고층 빌딩,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두바이몰, 중동 최초의 실내 스키장,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인 부르즈 알 아랍 호텔, 세계 최대의 인공섬 등 다양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사회에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두바이에 이어 뒤늦게 경제발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아부다비의 경우에도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루브르박물관과 구겐하임 박물관을 유치하는가 하면, 페라리월드 등을 유치하는 등 두바이의 성공 전략을 뒤따르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을 아랍에미리트로 몰려들게 만들려면 단순히 인프라 조성만으로는 어렵다. 이에 아랍에미리트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제도적인 환경도 파격적인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아랍에미리트는 연방 차원의 법인세와 소득세가 없다. 반드시 아랍에미리트를 기반으로 활동해야 하는 석유 가스 분야의 회사들(50% 이상)과 이들 회사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다국적 금융회사들에게만(20%) 고율의 법인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 중동에 사무실을 개설하기를 주저하는 이유 중에는 문화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이슬람의 종교적 율법은 여느 중동국가와 달리 두바이에서는 달리 적용된다.

아랍에미리트는 여느 중동국가와 달리 외국인의 경우에는 이슬람 율법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아랍에미리트는 중동국가 중 유일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국가이다. 두바이에서는 외국인들에 한하여 호텔 등 일부 공간에서 주류를 판매한다. 또한 외국인 여성들 역시 복장이 자율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아랍에미리트는 석유 고갈이 얼마 안남은 상황에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그 어느 중동국가보다도 높은 개방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해 왔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두바이 등 아랍에미리트에 위치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아랍에미리트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지리적인 요충지이라는 점에 주목한 바 크다. 이 밖에 아랍에미리트가 국가 발전을 위해 중점 사업으로 육성했던 분야 역시 관광, MICE 등의 산업들이다. 모두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대변 환경 속에서 성장해야만 하는 산업들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 19는 아랍에미리트가 그간 그려왔던 국가 경영의 큰 그림을 수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코로나 19라는 새로운 위기를 또다시 어떠한 창의력과 개방성으로 극복하여 포스트 석유 시대를 열어갈지 우리 모두 지켜보자.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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