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성역 무너지고 금기 깨졌다... 태국, 혁명 전야로 가나

입력
2020.12.05 04:50
19면

태국의 ‘세 손가락 항쟁’ 열기
청년세대 주도, 다양한 계층 참여?
군주제 개혁 요구하며 체제에 도전

2일 태국 수도 방콕에서 거리를 가득 채운 '세 손가락 항쟁' 시위대가 독재에 대한 저항을 뜻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2일 태국 수도 방콕에서 거리를 가득 채운 '세 손가락 항쟁' 시위대가 독재에 대한 저항을 뜻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태국에서는 수백 명의 고등학생들이 자율 복장으로 등교길에 나섰다. 초ㆍ중ㆍ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까지 교복을 입는 나라에서 교육개혁을 주창해온 조직 ‘나쁜 학생들’이 ‘교복입지 않을 권리’ 캠페인을 시작하자 일부 학생들이 호응한 것이다. 편안한 사복 차림으로 교육부 앞에서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높이 든 모습은 4개월 남짓 전개 중인 ‘반정부-왕실개혁 세 손가락 시위대’와 이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음을 재차 확인시켜줬다. 모두 ‘세 손가락 항쟁’의 주역인 태국의 청년세대다.

이들은 단지 교복만 거부하는 게 아니다. 제도권 교육과 기성세대가 암송해온 “소인은 임금님 발 아래 먼지로소이다” 주문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예컨대, 10월 26일 반정부 시위대가 독일 대사관으로 행진한 후 대사관에 전달한 성명서 하단에는 “먼지가 아닌 동료 인간으로부터”라고 적혀 있었다. ‘임금이나 나나 독일 대사나 대사관 직원이나 모두가 똑같이 동등한 인간’이라는 평등의식의 발현이었다.

세 손가락 항쟁은 시간이 지날 수록 그 타깃을 왕실로 좁혀가고 있는 형국이다. 67세 와치랄롱꼰 국왕이 20대 청년들로부터 비판과 도전을 받는 현실 이면에는 국왕 자체가 입헌군주제를 가장 위협하는 인물이라는 역설이 있다. 국왕을 준 신격화하고 왕실 가족에 대한 언급조차 터부시해온 태국은 기형적 입헌군주제의 모습을 보여왔다. 2016년 10월 전 국왕 푸미폰 사망 직후 왕위를 계승한 와치랄롱꼰 시대에 그 모습은 더욱더 악화됐다. 국왕의 ‘절대군주 도박’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다음과 같은 4가지 영역에서 자행된 그의 ‘도박’이 작금의 사태를 야기한 측면도 없지 않다.

첫째, 그는 2016년 8월 형식적이나마 국민투표로 통과된 군정기 헌법조차 한 마디 명령으로 바꿔버렸다. 국왕 자신이 태국에 섭정을 임명하지 않더라도 해외 출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인데 이미 10여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독일에서 보내고 있는 국왕 자신이 ‘태국에 부재하더라도 원격조정으로 권력 행사를 하겠노라’는 선포나 다름없다.

둘째, 와치랄롱꼰 국왕은 ‘왕실자산관리국(CPB)에 대한 법’ 역시 개정을 명령하고 이에 의회는 거수기 노릇을 함으로써 CPB자산을 단독 사유화 해버렸다. CPB 자산규모는 400억달러(약 45조7,000억원)에 달한다. 면세 특권까지 누리는 그다.

셋째, 군사권력도 부분 장악했다. 지난 해 10월 1일 국왕은 두 엘리트 부대인 ‘보병 1연대’와 ‘보병 11연대’를 국왕근위대 직속으로 편입하라고 명령했다. 개혁적 성향의 퓨처포워드당(FFP)은 이 조치에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헌법학자 출신인 피아부트르 생카노쿤 FFP 사무총장은 이를 “반헌법적”이라고 꼬집었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이듬해 2월 FFP는 헌법재판소 판결로 해산됐고 주요 지도부는 정치활동을 금지 당했다.

넷째, 입헌군주혁명의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가 반복됐다. 2017년 4월 16일 밤사이 감쪽같이 실종된 시암 혁명 명판이 대표적 경우다. 이어 12월 27일, 이번에는 '헌법 수호 기념물’이 철거됐다. 이 기념물은 시암 혁명 이듬해인 1933년 보워라뎃 왕자주도로 벌어졌던 왕당파들의 절대왕정 복귀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이를 기념한 기념물이다. 사라진 건 혁명과 역사적 기념물만이 아니다. 2016년 와치랄롱꼰 국왕 시대가 본격화된 이래 최소 9명의 태국 출신 정치망명객들이 납치 후 강제 실종됐고 이중 2명은 메콩강의 시체로 떠올랐다. 그 배후에 국왕이 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는다. 6월 4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괴한에 납치 된 후 사라진 완찰럼 삿삭싯 사례는 코로나로 잠시 주춤했던 반정부 시위를 재점화시킨 기폭제가 된 사건이다.

태국 민주화 시위대가 지난 11월 17일 수도 방콕 국회의사당 앞에서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과 물대포를 맞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태국 민주화 시위대가 지난 11월 17일 수도 방콕 국회의사당 앞에서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과 물대포를 맞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태국은 지금 항쟁과 혁명의 중간지대를 오가는 중이다. 7월 18일 재개된 시위는 ‘시민 항쟁’이 됐고 국가, 종교(불교), 왕실을 3대 기둥으로 떠받들던 태국사회 지배 질서엔 금이 가고 있다. 단순히 ‘정권교체’가 필요한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세 손가락 항쟁은 구체제를 도마에 올려 놓은 ‘혁명적’ 성격을 조금씩 더해가고 있다. 지난 20년간 ‘레드 대 옐로우’로 나타났던 태국 정치분쟁은 ‘왕당파(귀족정치) 대 탁신 정치세력(1인1표 민주주의)’이라는 신구 엘리트 세력이 충돌하는 ‘횡(橫)’의 모순을 한 축으로 하고, 계층과 계급 갈등이라는 ‘종(縱)’의 모순을 또 다른 축으로 하여 십자모양으로 얽히며 역동적으로 분출됐다. 가장 폭발적으로 발현된 시점은 10년전 비무장 시민들이 ‘민주주의’ 네 글자를 붙들다 방콕 한복판에서 학살당했던 2010년 4, 5월 레드셔츠 학살이다.

10년이 지난 오늘 다시 거리로 쏟아진 세 손가락 항쟁은 기존의 ‘십자 모순’에 세대 갈등이 더해졌다. 이때 흥미로운 건 탁신계 정치세력의 내분과 ‘성군 신화’ 이미지를 도저히 유지하기 어려운 현 국왕의 기이한 생활 방식 탓에 신ㆍ구 엘리트들 모두 이전보다 지리멸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계급, 계층 갈등에 ‘세대 갈등‘까지 녹아난 수직적 갈등은 보다 더 현저해졌고 기득권 질서는 총체적으로 도전 받고 있다. 그 질서의 최고점에 위치한 왕실이 시위대의 주 타깃이다.

중요한 건 공개적 왕실 비판이 불현듯 출현한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태국 사회 금기를 깬 시민들의 왕실 공개 비판은 최소 세 번의 역사적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우선 8월 3일 방콕 민주탑 인근 시위에서 마지막 연사로 나섰던 인권변호사 아논 남파를 기억해야 한다. 그는 “이 시대 태국 정치에 있어서 왕실의 역할을 언급하는 건 불가피하다”며 왕실이 해명해야 할 이슈들을 조목조목 이어갔다. 이날의 용기는 8월 10일 탐마삿대학 학생들에게 이어졌다. 탐마삿 시위 연합전선(UFTD)은 왕실을 집중 겨냥한 10대 요구사항을 발표하며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놨다. 그 10대 요구사항 8번째는 “왕실을 일방적이고 과도하게 찬양하는 교육과 홍보행위를 중단하라”였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금기를 깼던 과거도 있다. 바로 2010년 9월 19일 레드셔츠 낙서 사건이다. 2006년 쿠테타 4주년이자 그해 5월 19일 벌어진 레드셔츠 학살 4개월이 지난 이날 레드셔츠는 은유와 직설을 오고 가며 낙서, 그림, 구호로 당시만 해도 ‘살아있는 부처’인 전 푸미폰 국왕부부를 집중적으로 겨냥했다. 국왕이 레드셔츠 학살을 명령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구호도 서슴없이 나왔다.

2010 레드셔츠 운동이 왕실 측이 민주화 운동 유혈진압의 배후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였다면, 2020 세 손가락 항쟁은 이제 그 왕실을 겨냥한 ‘집단행동’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전환점이 됐다. 두 역사적 사건 사이에 군이 감행하고 왕실이 승인했던 2014년 5월 22일 쿠테타는 반군정-반기득권저항운동의 주체를 특정 정치 세력과 전략적으로 연대하던 레드셔츠 운동에서 어떤 정치적 연계도 없이 완전히 독립적인 새 세대인 세 손가락 세대로 옮겨놓았다.

이제 왕실 언급이 터부시되고 토론이 불가능한 시대는 과거가 됐다. 왕실 모독법은 왕정체제 유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였으나 그 법으로 강요 받던 침묵도 깨졌다. 법은 살아 있으나 시민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성역은 무너졌고 금기는 깨졌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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