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몹시 차갑습니다. 수목원 산책길에 만나는 나무들도 대부분 낙엽을 떨구었습니다. 불과 한두 달 전 만 해도 쨍쨍한 하늘빛 아래로 형형색색으로 피워냈던 가을꽃들이 그 길목에 가득하여 참으로 풍성했던 시간들이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이른 아침, 마른 나뭇가지마다 하얀 서릿발을 얹고 있는 모습을 보며 겨울 속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합니다.
낙엽이 만드는 상상 그림을 만난 것은 뉴스를 가득 채우는 확산 추세의 바이러스 소식은 일상을 정지하게 만들고, 이런저런 세상의 갈등 소식으로 마음이 더욱 움츠러들 즈음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나무와 그리는 상상그림'이라는 수목원의 문화 프로그램의 하나인데 가족들이 수목원을 산책하며 떨어진 낙엽이며 열매들을 만나고 그들이 품은 모습과 무늬를 관찰하며 상상력을 더하여 그림 작업을 하는 과정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두리번거리며 계절을 다 보내고 난 나무들을 만나고, 다시 머리를 맞대어 행복한 상상을 하며 만들어 낸 상상그림 작품에는 자귀나무와 계수나무 잎이 변신한 '걸으며 춤추는 곰'도 있고, 측백나무 잎은 사슴의 뿔이 되었더라고요.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낙엽은 나무에 있어서 열심히 살고 떨구어 낸, 한 해의 마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계절 동안 잎은 곧 생존이며 성장의 상징이었습니다. 잎에 분포한 엽록체에서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이 합성되어 만들어 낸 산물로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겨울이 되어 식물내 수분이 얼게 되면 세포를 파괴하게 되므로 나무들은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상록수의 경우처럼 잎이 얼지 않게 이온 또는 당의 농도를 높여 얼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택하기도 하지만 낙엽수는 모든 잎을 떨구어 버립니다. 잎과 줄기를 연결하던 부위에는 여러 개의 세포층으로 이루어진 떨켜가 만들어져 있고, 옥신이라는 식물호르몬이 높은 농도를 유지하며 붙어 있었지만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등 여건이 달라지면서 옥신은 감소하고 에틸렌이라는 식물호르몬의 작용으로 세포들의 결합력이 떨어져 낙엽이 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땅에 떨어진 낙엽은 토양미생물의 작용으로 분해되어 점차 형체를 바꾸며 이산화탄소 기체로 대기 중에 사라지고 일부는 결국은 보이지 않은 흙의 일부가 되어 그 땅을 부드럽고 비옥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흙은 새봄이 되어 새잎을 피워 낼, 새로운 씨앗을 움트게 할 자양분이 되어 순환합니다.
그러고 보면 낙엽은 마지막이 된 잎새인 줄 알았는데, 행복을 주는 상상의 그림으로, 미래의 생명을 잉태할 비옥한 토양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한 해의 마지막 한 장의 달력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겨울이 오도록 가지에 매달린 잎새처럼 욕심이나 미련 때문에 붙잡고 있는 일은 없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연말, 낙엽으로 하는 상상그림 강추입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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