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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예수의 진짜 얼굴은?

입력
2020.11.26 14:30
수정
2020.11.30 11:31
25면


예수도 비켜 가지 못했던 외모 지상주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1495~1498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1495~1498년


위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에 그린 너무도 유명한 벽화, '최후의 만찬'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수의 이미지는 그림에서처럼 어깨까지 흘러내리는 긴 머리와 녹갈색, 혹은 파란 눈을 가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백인이다.

몇 년 전, 영국 BBC 다큐멘터리 '신의 아들(The Son of God)'이 공개한 전혀 예상치 못한 예수의 얼굴은 사람들에게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귀티나게 잘생긴 얼굴이 아닌 농민이나 노동자 계층의 서민적인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영국의 법인류학자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재현한 예수는 키 153㎝, 몸무게 50㎏의 검고 짧은 머리카락과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진 거칠고 투박한 생김새의 남성이었다. 신약성서 기록을 참고하고 1세기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의 셈족(유대인) 유골과 고대 시리아 프레스코화를 컴퓨터 이미지로 합성, 분석한 결과라고 한다.


현대 법인류학적 분석과 컴퓨터 합성에 의해 재현된 예수의 얼굴(출처 Wikipedia)

현대 법인류학적 분석과 컴퓨터 합성에 의해 재현된 예수의 얼굴(출처 Wikipedia)


이 이미지를 따른다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예수의 외모는 완전한 허구다. 사실 2,000년 전 중동지역 유대인은 어두운 올리브색 피부, 갈색 눈, 검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고, 당시 유대사회에서 남자의 긴 머리는 수치로 여겨졌다. 예수 역시 짧은 헤어스타일에 그 시대의 보통 유대인 외모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직업이 목수였으므로 육체 노동자의 다부진 체격을 가졌을 가능성도 많다. 귀족같이 기품 있고 부드러운 모습은 오랫동안 그림과 조각을 통해, 최근에는 상업영화들을 통해 심어진 이미지일 뿐이다. 물론 재현된 예수의 얼굴이 진짜 그의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동안 수많은 미술가들이 그리고 조각해온 미술작품 속 예수보다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예수의 이미지는 어디에서 왔을까? 왜 이렇게 오랫동안 왜곡된 모습이 받아들여졌던 것일까?


2세기경 로마시대 모각 벨베데레 아폴로(출처Wikipedia)와 3세기 로마 산 칼리스토의 카타콤베 벽화의 예수(오른쪽)

2세기경 로마시대 모각 벨베데레 아폴로(출처Wikipedia)와 3세기 로마 산 칼리스토의 카타콤베 벽화의 예수(오른쪽)


초기 기독교 교회는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지했다. 예수의 형상 대신 그를 뜻하는 물고기나 십자가, 빵과 포도주 등의 상징물을 사용했다. 그러나 3세기경에는 지하 공동묘지 카타콤베 벽화에서 양을 어깨에 매고 있는 '선한 목자'로 표현된 예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기서 예수는 수염이 없는 젊은이로 나타나는데, 이는 그리스 로마 미술의 아폴로 형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인물이 몸무게를 한쪽 다리에 싣고 다른 쪽 다리는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자세)라든가 로마의 토가를 연상시키는 옷 주름에서도 고대 조각상의 영향이 엿보인다.


2세기경 로마 시대 제우스상(출처 British Museum)과 6세기 이집트 시나이 산의 성 가타리나 수도원의 벽화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오른쪽)

2세기경 로마 시대 제우스상(출처 British Museum)과 6세기 이집트 시나이 산의 성 가타리나 수도원의 벽화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오른쪽)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경부터 조각상을 통해 신을 숭배하는 고대 그리스 로마 전통이 점차 비잔틴제국의 동방교회에서 뿌리를 내렸다. 비잔틴 예술가들은 예수를 묘사하기 위해 로마 판테온 신전의 주피터나 넵튠같이 더 강력하고 성숙하며 권위 있는 신들의 모습을 차용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위엄있는 제왕, 혹은 우주의 지배자로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젊은 아폴로의 모습에 긴 머리와 턱수염을 가진 좀 더 나이 든 신들의 이미지가 덧붙여졌다. 6세기경에는 어깨 길이의 장발과 수염이 있는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Christ Pantokrator)’가 등장했고, 이후 비잔틴제국과 서유럽의 중세미술에서 관습적인 예수의 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는 ‘전능한 그리스도’라는 뜻으로 오른손으로는 하늘과 땅을 축복하고 왼손에는 복음서를 들고 있는 이콘(Icon: 도상)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공식적인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의 딱딱한 도상에서 벗어나 인간적이고 개성 있는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간적 가치를 중시한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배경으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남성미가 넘치는 근육질 예수,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의 우아하고 이상적 아름다움을 지닌 예수가 등장한 것이다. 여전히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예술적 영감의 근원도 고대 그리스 로마였다. 예외도 있었지만, 예수 역시 고대신화 속 올림포스 신들의 조각상을 본뜬 수려한 남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여기에다 당대 유럽인 자신들의 외모가 일부 투영된 것은 물론이다. 서구에서 르네상스 문화예술은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에, 르네상스 미술작품 속 예수의 이미지 역시 이후 미술사에서 면면히 이어졌다.


워너 샐먼의 ‘그리스도의 머리’(왼쪽)와 영화 ‘나사렛 예수’의 이미지(출처 Wikipedia)

워너 샐먼의 ‘그리스도의 머리’(왼쪽)와 영화 ‘나사렛 예수’의 이미지(출처 Wikipedia)


20세기 미국의 상업 미술가 워너 샐먼이 그린 흰 피부, 긴 머리, 푸른 눈을 가진 예수의 초상도 이런 미술사의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샐먼의 그림은 개신교, 가톨릭교회와의 파트너십 속에서 카드, 스테인드글라스, 달력, 유화작품 등의 매개체를 통해 상업적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친근하고 달콤한 예수의 이미지가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심지어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나사렛 예수',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등 영화에서는 늘씬한 훈남 예수들이 등장하면서, 패션쇼 런웨이에 나타날 듯한 팔등신 꽃미남으로 변신했다.

BBC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예수의 외모는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합리적으로 추론해 볼 때 역사적 개연성이 높다. 성서의 이사야 53장에도 그의 용모에 대해, ‘아름다운 모습이나 위엄있는 풍채가 없어서 흠모할만한 것이 없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가 멋진 외모를 가졌든 작은 키에 볼품이 없었든 간에, 그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성인이자 스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떠올리는 예수의 전형적인 모습은 우리가 원하고 보고 싶은 형상이며, 이것이 미술에 반영되어 왜곡된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신의 아들 예수도 집요한 외모 지상주의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욕망은 물욕, 권력욕, 명예욕과 함께 인간이 가장 버리기 힘든 우상숭배의 한 유형인지도 모른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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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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