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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라고..." 올리브와 우린 그냥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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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절대 드라마로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무래도 드라마에 등장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인물이 있다. 나에게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와 소설의 주인공 올리브가 그렇다. 올리브는 어떤 사람일까. 소설 속 표현을 통해 추측해보자면 올리브는 ‘짐승 같은’ 사람이다. 까다롭고, 괴팍하고,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고, 지나치게 솔직한 중년의 여성.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을 개의치 않고 날카롭게 자기 의견을 말하며, 감정 변화가 격렬한, 어디로 보아도 도저히 호감을 느끼기 어려운 이런 여성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이와 비슷한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프란시스 맥도먼드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쓰리 빌보드’다. 영화로부터 3년 전, 2014년 HBO의 4부작 미니시리즈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문제의 올리브를 연기했다. 소설을 읽은 뒤 직접 판권을 산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올리브를 연기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작가와 감독을 고용해서 프로듀서로 작품을 제작했다. 물론 작가와 감독 모두 여성이다.
소설은 키터리지 부부를 중심으로 마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확장되는 연작 형식에, 사건보다는 인물과 관계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문학적인 문장으로 묘사한 작품이기 때문에 원작을 영상으로 옮기는 일이 수월하지는 않았을 듯 하다. 하지만 원작의 정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야기를 잘 배치한 각색과, 넘치지 않는 클래식한 연출, 거기에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까지 더해지면서 ‘올리브 키터리지’는 원작을 보며 상상하고 떠올린 세계 그 너머까지 그리는 드라마로 완성됐다.
한국에서는 ‘왓챠’에 독점 공개되어 있는 이 작품은 첫 장면에서부터 권총 자살을 시도하는 올리브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 노년 여인의 삶이 순탄치 않았을 것임을 보여준 후, 과거로 돌아간다. 중심 인물이 다른 여러 이야기들 중 키터리지 부부가 중심이 되는 내용을 골라 연대기 순으로 배치한 네 편의 에피소드는 중년 이후의 삶에 닥치는 위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올리브의 삶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어떤 드라마에서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될 외도의 감정은 속으로 삭여지고, 사고와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납치범의 인질이 되는 경험 후에 부부의 관계는 변화하지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바뀐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서 아마도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일 작가 사라 페인을 통해, 소설가로서 자신의 일을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다. “픽션 작가로서 자신의 일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는 것,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의 일은 무엇일까. ‘올리브 키터리지’는 이 진지한 질문에 드라마도 답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보는 듯 하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인생, 그렇게 표현되는 삶 속에서 개인이 겪는 파도와 감정은 어떻게 영상으로 옮겨질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바뀐 인간을, 어떻게 보여줄까. 어떤 면에서는 한 배우가 자신이 제일 잘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을 소설 속에서 발견하고, 직접 제작해 사람들에게 선보인 일이 ‘올리브 키터리지’ 속 이야기보다 더 극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지만, 이 작품은 드라마로서, 소설과 똑같이 좋은 이야기가 하는 일을 해낸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헨리의 곁에 올리브가 눕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이 드라마가 살아있는 사람 올리브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남편 헨리는 자신에게 처한 비극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며 식물과 비슷한 상태로 누워있다. 올리브는 아마도 거의 처음으로 드라마의 주인공같은 심정이 되어 그에게 “이제 떠나도 돼”라고 말한다. 마지막 허락으로 회한의 작별인사를 건넨 밤이 지나고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 올리브는 부스스한 머리로 깨어난다. 남편도 자신도 여전히 그대로이며,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세상에, 내가 누구라고”라고 중얼거리며 올리브도, 이 부부를 보고있는 우리도 깨닫는다.
삶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다. ‘내가 당신 곁에 있으니 이제 떠나도 괜찮아’라고 말한다고 정말 그 순간 숨을 거두게 되는, 모든 타이밍이 정해진 기적처럼 찾아오는 그런 인생은 실은 아주 드물다. 평범한 우리들에게 인생은 그저 지리멸렬한 날들의 연속일 뿐이며, 삶이 내놓는 문제는 절대로 호락호락하게 풀리지 않는다. 평범한 우리는 문제를, 고통을, 상처를 끌어안고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채로 그저 매일을 살 뿐이라는 생의 진실을 이 드라마가 보여줄 때, 올리브는 소설 속에서 걸어나와서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 된다. 세상에, 내가 누구라고. 나는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냥 오늘을 사는 사람인 것을.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또 드라마를 볼 때 나는 계속 살고 싶다고 느낀다. 세상이 아무리 나빠진다고 해도 거기서 좋은 것을 기필코 발견하고 싶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을, 빛이 모든 그림자와 만날 때 생겨나는 무늬를, 알고 있는 맛이어도 여전히 맛있는 음식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 우리가 이 세상을 보게하는 렌즈로서의 좋은 이야기, 그 모든 것들을 계속해서 느끼고 보고 경험하고 싶다.
동시에 높은 확률로 나빠질 세계 역시 보고 싶다. 그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지를 보고싶고,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고, 뭐 그런 게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속으로 올리브처럼 말할 것이다.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지.’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인생에도 당연히 파도가 있다는 것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채로 지금을 산다. 그리고 삶은 오직 그런 방식으로만 계속된다.
어떤 이야기는 인간은 내일을 알지 못한 채로 그저 매일을 살아간다는 단순한 진실을, 기승전결 같은 건 없는 인생을 담아낸다. 삶과 인간의 복잡함을, 와중에도 아름다운 세계를, 순간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게 바로 ‘올리브 키터리지’가 소설로서 뿐만 아니라 드라마로서도,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해낸 일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원작 없이도 완전하고, 원작과 만날 때 더욱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나는 특별하고도 희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상한 남편 헨리를 연기한 리처드 젠킨스, 보호본능을 일으키며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데니스를 연기한 조 카잔, 그리고 헨리가 죽은 뒤 올리브가 만나게 되는 노인 잭을 연기한 빌 머레이까지, 좋은 배우들의 정확한 연기는 이 드라마를 한 번 더 도약하게 만든다.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그리는 올리브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인 여성의 평균 키 정도일 그는, 키와 덩치가 크고 뼈대가 굵다고 묘사되는 올리브의 외양까지도 연기로 소화해 낸다. 이런 연기는 마법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올리브를 미워할 수 없는 여성이 아니라 살아있는 여성으로 보여준다.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들고 누군가를 공감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고단한 삶을 살아온 한 인간으로 그는 거기에 있다.
이 작품에서의 연기로 에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이런 수상소감을 남겼다. “우리 모두는 잘 보여준 이야기의 힘 때문에 여기에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주어진 분량이 있어 길게 썼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 소감 외에 더할 말이 없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좋은 이야기를 잘 보여준 드라마이고,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올리브의 노년을 담은 ‘다시, 올리브’가 출간된 만큼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다시, 올리브를 연기해준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는 작은 소망 정도만 더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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