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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로 바뀌면 ‘당나라 군대’로 전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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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이회창 박원순 이낙연’
자식을 군에 보내지 않아 곤욕을 치른 정치인입니다. 1997년과 2002년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두 아들이 체중을 고의로 감량해 병역이 면제됐다는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어 결국 세 번의 대권 도전에 모두 실패했습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장남은 훈련소에 입소했다가 허벅지 통증으로 귀가한 뒤, 공익근무 판정을 받아 논란이 됐죠. 2012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공개적으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MRI(자기공명영상) 바꿔치기’ 진실공방이 법정까지 갔고, 박 전 시장 사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장남이 습관성 어깨 탈구로 병역이 면제되자 병무청에 ‘공익근무라도 시켜달라’는 탄원서까지 냈습니다. 그럼에도 2017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야당은 이를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비꼬았고, 이 대표는 해명을 거듭해야 했습니다.
‘추미애 우병우 김병기’
자식이 병역 의무를 다했는데도 논란이 된 인사들입니다. 보좌관을 통해 아들 휴가에 관여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애초에 이를 인정하고 자세를 낮췄으면 될 일을, 오히려 끝까지 부인하면서 사안을 키웠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은 서울경찰청 차장 운전병으로 발탁돼 ‘꽃보직’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2016년 국감에서 “코너링이 좋아서 뽑았다”는 실무자의 답변은 두고두고 회자가 됐지요. 김병기 민주당 의원은 최근 공군에 복무하는 아들이 장염을 앓을 당시, 군 간부에게 ‘죽 대접’을 받아 특혜 공방이 일었습니다.
과거에는 유력 정치인의 자제가 군 복무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논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군 복무를 해도 특혜를 받았는지까지 따지는 시대가 됐습니다. 병영 문화가 개선될수록 특혜를 가르는 기준이 애매해지면서 군 당국도 골머리를 앓는다고 합니다. 고위층 자제의 군 복무가 특혜 시비에 휩싸이지 않으면서, 역차별도 안 받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처지가 된 겁니다. 군 내부에서조차 전력 증강에 쏟아도 모자랄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푸념이 나옵니다.
인구절벽 시대에도 징병제를 유지하는 우리 군이 감당해야 할 현실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100% 모병제가 낫지 않을까.
프랑스혁명 당시 총동원령이 시초인 징병제가 우리나라에 정착한 건 병역법이 제정된 1949년입니다. 병역법 3조에 ‘대한민국 남성은 헌법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72만명이던 상비군 병력은 2018년 60만명(현역병은 65%인 39만1,000명)으로 떨어졌고, 10년 후에는 필수 인원도 못 채운다고 합니다. 모종화 병무청장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2032년부터는 연간 필요한 현역이 20만명인데, 실제론 18만명 이하로 떨어져 병역제도를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모병제를 거론했습니다. 모병제 전환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 병무청 수장 입에서 '모병제'가 나온 겁니다. 징병제 수명이 다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징병제의 사회경제적 효용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병역 자원 감소로 특별 관리가 필요한 관심병사(현 도움배려병사)도 상당수 입대하면서 지휘관들이 개별 병사들의 전투 능력과 무관한 일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겁니다. 2014년 강원도의 한 전방부대에서 발생한 ‘GOP(일반전초) 총기 난사’ 같은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사병 부모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부대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지, 소통하는 게 지휘관들의 주된 업무가 됐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충성심을 내세운 값싼 ‘애국페이’로 징병제를 유지하던 시대도 지났습니다. 국방부가 합리적 보상 차원에서 40만원대인 병장 월급을 2025년까지 하사 1호봉의 절반 수준(96만3,000원)까지 올리기로 한 겁니다.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복무 기간을 단축하면서(육군 기준 18개월) 병사들에게 전투장비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환경도 아닙니다. 전투 장비를 충분히 숙달할 즈음에 전역을 하게 된 겁니다.
이는 비단 우리 군만의 고민은 아닙니다. 영국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선진국도 냉전 종식 이후 모병제로 전환했습니다. 전면적 위협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징병제 유지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한몫 했습니다. 병역에 민감한 우리 여론도 최근 모병제 전환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가 지난 9월 22~24일 1,0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1.5%가 모병제 도입에 찬성한 겁니다. 주된 이유는 ‘전문성을 높여 국방력을 강화하기 때문’(32.9%)이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관심병사나 황제병사 뒤치다꺼리(?)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군 지휘관들이 정작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를 선호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우려는 모병제가 초래할 병력의 질적 하락에 있습니다. ‘억지로 가는’ 징병제와 달리 자원한 모병제가 우수 병력 확보에 유리할 것 이라는 세간의 예상이 빗나간 겁니다.
실제로 우리 군은 주한미군이 ‘엘리트 병사 집단’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수준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명문대 출신 고학력자들도 모두 입대하기에 통역병, 정보통신병 등 전문성을 요하는 보직에 차출됩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원 차 인천국제공항에 대거 파견된 병력도 대부분 현역병입니다.
하지만 모병제로 바뀌면 고학력자들이 월 200만원(9급 공무원 수준) 수준의 현역병에 지원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소위 돈 없고 빽 없는 이들이 '생계형'으로 군에 입대하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무기 체계 고도화로 군은 고학력자를 더 필요로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모병제가 불법체류자의 국적 취득 통로가 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돈을 주고 병력을 사는 용병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오합지졸의 대명사인 ‘당나라 군대’가 될 수 있는 거지요.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릴 정도로 막강했던 당나라는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고 이민족 용병에게 병역을 떠넘기며 급격히 쇠퇴했다고 전해집니다.
실제 1973년 모병제로 전환한 미군은 아이비리그(미국 북동부에 있는 8개 명문 사립대) 출신 고학력자 대신 빈곤층과 소수인종, 이민자로 충원되고 있습니다. 이라크전에서 고전했던 2006년에는 사면을 대가로 1만7,000명의 전과자를 입대 시켜 논란이 됐습니다. 입대하는 외국인에게 초고속 시민권을 부여했던 ‘매브니(MAVNI)’ 프로그램은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등 불순세력의 침투 가능성이 우려돼 최근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일본은 자위대 간부 가운데 고졸자가 절반이 넘고, 중졸 학력자도 3%나 돼 질적 하락이 현실화됐다고 합니다. 병역 자원이 넘쳐나 모병제를 병행하는 중국에선 저학력자의 입대를 원천봉쇄하는 학력 제한 조치까지 둘 정도입니다.
모병제의 또 다른 부작용은 병역제도가 더 이상 주류의 관심사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상류층 자제들이 군 복무할 일이 없기에 국방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것이죠. 징병제 부활을 꾸준히 주장해온 찰스 랭글 미국 민주당 의원은 2006년 “징병제로 정부 관료와 정치인 자식이 군대에 있었다면 정부가 빈약한 정보로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습니다.
128만명의 북한 지상군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로선 모병제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8년 1월 우여곡절 끝에 모병제로 전환한 대만에선 최근 중국의 무력 위협이 거세지자 징병제 부활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 역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으로 징병제 부활을 선언했습니다.
‘기로에 선 징병제’의 가장 현실적 대안은 징병제와 모병제를 섞은 ‘징모혼합제’ 보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군 복무 후 6~18개월 전문 하사로 근무하는 ‘유급 지원병 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현재 유급지원병의 정원 대비 충원율은 40% 안팎으로 매우 낮다고 합니다. 병사 집단을 복무 기간이 짧은 그룹과 긴 그룹으로 나누고, 숙련도가 요구되는 직군은 전문병사를 채용해 병 복무 때부터 하사 수준의 월급을 주자는 의견도 나옵니다. 여기에 여군 비중 확대 등 여성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빠져선 안 될 겁니다. 징병제의 대안도 결국은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드는 것이 핵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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