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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너는 누구냐

입력
2020.11.19 19: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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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메시지만 남고 당 안 따르는 현실
지향점도 상관 않는 묻지마식 후보 찾기
정체성 위기 못 넘으면 정당 존립 어려워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모임에 강연자로 참석해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이날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다. 배우한 기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모임에 강연자로 참석해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이날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다. 배우한 기자

‘당적 무관. 모든 경력 포용. 이념 지향 불문.’ 지금 국민의힘 후보로 거론되는 면면을 보면 이런 광고 문구가 들리는 듯하다. 현직 검찰총장이 가장 우세한 야권의 대선주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이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공식 후보가 아니라 치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끊임없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러브콜을 받더니,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강연에서 서울시장 출마 뜻을 밝혔다. 다른 당 대표든, 얼마 전까지 여당 의원이었든 상관없고, 합당이든 단일화든 방법도 문제가 안 된다. 가능성이 조금만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후보로 찜하는 형국이다. 이 비정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는 현실이 더 두렵다.

17일 국민의힘이 의원총회에서 추인한 4·7 보궐선거 경선 룰 역시 큰 논란이 되지 않아 더 의외다. 예비 경선에서 100% 일반 국민 의사를 반영하고, 본 경선에선 일반 국민 80%, 책임당원 20%를 반영한다. 후보 결정에 일반 시민이 참여하면 대중의 주목을 끌고 본선 경쟁력 갖춘 후보를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100% 국민경선은 위험성이 있다.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 일부러 경쟁력 낮은 후보를 고르는 역선택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당원이 배제되고 정당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후보가 배출될 수 있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처음 도입된 국민경선제도(국민 50%, 당원 50%)는 당내 비주류 노무현 후보를 뽑아 결국 대통령 당선에 이르는 이변을 가능케 했지만 나중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분당되는 씨앗을 남겼다.

국민의힘은 당원의 권리를 어쩌다 이렇게 쉽게 포기하게 됐을까. 어차피 당내에 인물도 없고, 본선에서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는 후보를 찾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또는 국민의힘이 민심과 너무 괴리돼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 후보를 정할 자신을 잃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렇게 정해진 후보가 정당의 가치를 구현하는, ‘국민의힘 후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후보로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가능한가.

국민의힘은 지금 정체성 와해의 위기다. 비대위 체제가 추구해 온 변화와 혁신에 더 이상 진전이 없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처음에 혐오와 막말의 악습을 차단하고, 광주를 방문해 5·18 망언을 사과했다. 당 지지율이 회복됐다. 그러나 공정경제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정책적 변화를 추진하면서부터는 뒤따르는 움직임이 없다. 김 위원장이 “산재에 정파가 어디 있느냐”고 메시지를 내면 정책위가 법안 작업에 착수하고 당론을 모으는 수순이 이어져야 하건만 번번이 메시지로만 끝난다. ‘약자와의 동행’은 김 위원장 혼자만의 비전이 됐고, 당의 변화는 체감되지 않는다. 당 구성원들이 지향점과 가치, 정책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이러다간 국민의힘이 정당이 아닌 공직 획득의 목표를 위해 뭉친 출마집단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의 균형이 민주주의를 날아오르게 할 것으로 믿는 나로서는 김종인 비대위가 국민의힘을 합리적 보수 정당으로 새로 탄생시키기를 바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을 흔드는 당내 균열의 목소리, 정부 여당에 왜 더 강하게 싸우지 않느냐는 당 밖의 요구가 차츰 커지는 것을 들으며 국민의힘이 새누리당으로 돌아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극우 보수로 회귀하는 것으로서 지금 정체성 혼돈을 벗어던지는 게 아닌지 말이다. 그럴 경우 이 정당의 운명은 그들만 빼고 모두 알고 있다. 쪼그라들고 잊혀 사멸하는 길이다. 자민련이라고, 선례도 있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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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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