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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비혼 출산' 가능하다는데…법과 제도는 '가시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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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미혼 여성들이 ‘정자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 전화를 해요. 그럴 때마다 법에 의해서 안 된다고, 시술했다가 고발당하면 의사만 감옥 간다고 답할 수밖에 없어요. 사유리씨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이런 문의가 늘어날 거고,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연구원들만 진이 빠질 겁니다.”
박남철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은 19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방송인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 사례의 파급에 대해 말하며 걱정부터 털어놨다. 2016년 설립, 정자은행 관련 연구를 진행해온 이곳은 그동안 적지 않게 미혼 여성의 '정자 문의' 전화를 받아왔지만, 현재 국내 시스템상 이들에 '해줄 것'이 없다는 답만 했기 때문이다.
최근 사유리씨의 일본 정자은행을 통한 비혼 출산 사례는 우리 사회에 ‘남편 없이 엄마될 권리’라는 신선한 논제를 던졌다. 동료 방송인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그의 선택을 축하하는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혼외출산율 1.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결혼 제도 밖에서 자녀가 태어나는 비율이 최하위인 한국이지만 이번 사례를 통해 가족 구성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가능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출산의 권리를 결혼한 부부가 아닌 비혼여성에도 줄 수 있다는 국내의 인식은 꾸준히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13세 이상 가구원 3만8,000명을 대상으로 한 사회조사 결과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문항에 동의한 비율은 30.7%였다. △2012년 22.4% △2016년 24.2% △2018년 30.3%로 점차 동의한다는 비율이 증가했다. 여성 동의율(28.8%)은 남성(32.6%)보다 낮지만, 지난 8년간 여성의 동의율은 8.6%포인트가 올라 남성(7.9%포인트)보다 증가폭이 컸다. 비록 사유리씨 사례와 같은 비배우자 정자 수증을 통한 출산뿐 아니라 사실혼 등을 포함한 개념이지만, 우리 사회가 소위 혼인제도로 결합된 남녀라는 ‘정상가족’만을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법과 제도는 가부장제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이러한 국민 인식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출산 이후’ 만들어지는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서는 제도적 뒷받침 논의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여성이 혼자 임신 및 출산할 권리’에 대해선 공백 상태이다.
우선 사유리씨처럼 미혼 여성이 남성과의 성관계 없이 정자만 제공받아 출산하기 위해서는 정자은행과 시험관 시술과 같은 보조생식술이 필요하지만, 제도와 법은 복잡하게 이를 가로막고 있다.
2005년 1월 제정된 생명윤리법에서는 난자나 정자를 기증하거나 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을 받을 때 모두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료인이 이를 어기면 2년이하 징역형이나 3,000만원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과정에서 연구원들의 난자를 채취하고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난자 기증재단까지 만들어졌던 황우석 박사 사태 이후 2005년 말 생명윤리법은 난자와 정자의 매매를 금지하고, 배아연구 규정도 까다롭게 강화했다.
그 결과 국내에선 비배우자 정자 수급이 어려워졌다. 비배우자 정자 제공을 기반으로 한 정자은행 사업이 국내에서 불가능한 이유다. 이는 1960년대에 이미 정자은행을 만들고 △국가 정자은행(영국, 중국 지방정부) △공공 정자은행(프랑스, 일본) △상업적 정자은행(덴마크, 미국)을 활발히 운영하는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의 상황과 대조적이다.
국내에선 미혼 여성의 인공 생식 시도는 법으로조차 정의되지 않은 상태다. 김명희 생명윤리정책연구원 연구부장은 “생명윤리법은 생명공학 배아연구와 관련된 법으로, 인공 생식과 관련된 법은 따로 제정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2007년 국회에 보건복지부가 ‘생식세포 등에 대한 법률안’을 냈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복지부는 “이후 생명윤리법 개정을 통해 생식 세포 법률안의 큰 골격을 담았다”고 밝혔지만, 미혼 여성의 인공 생식 시도에 대한 법은 여전히 없다.
여기에 대한산부인과 협회는 생명윤리법상 정자 기증·시술 시 ‘배우자 동의’ 조항을 현장에서 확대 적용한다. 대한산부인과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는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가 아무리 ‘미혼 여성의 정자 수증을 막는 법은 없다’고 해도 ‘비혼 출산’은 불가능한 것이다.
법 자체가 공백 상태다 보니 비혼 출산은 정부의 논의 대상이 된 적도 없다. 대부분의 정책이 ‘출산 후’ 가족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홀로 아이 낳을 권리’는 낯선 의제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출산한 여성은 한부모 가족지원법에 의해 정책 대상이 되지만, 여성 정책 논의에서 비혼 출산 논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결혼-출산-양육으로 이어지는 소위 ‘정상가족’ 프레임 밖 가족을 고민하는 ‘가족다양성분과’를 신설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대책위원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저출산고령화위 관계자는 “모든 출산에 대해 국가가 할 일이 있다면 고민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비혼 출산은 공론화가 진행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면 많은 논쟁점이 드러날 전망이다. 정자기증을 통한 비혼 여성 출산이 합법화 혹은 용이해지면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에서 보조생식술을 통해 태어난 레즈비언 커플의 자녀는 어떻게 볼 것'인가가 대표적이다.
비배우자의 정자 제공 반대편에는 대리모 문제도 웅크리고 있다. 국내에선 난임 부부가 제3의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을 하게 하는 대리모 자체가 불법이지만, 부부의 난자와 정자로 체외수정한 뒤 이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하는 유형의 대리모가 처벌대상인지 여부는 관련 규정이 없다.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자녀에 대한 친자관계 규정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990년대 타인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은 이혼 부부의 친자소송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원은 “남편이 인공수정에 동의했다면 타인의 정자로 태어난 자녀라도 친자식으로 봐야 한다”고 하면서도 “인공수정 등 보조생식 관한 변화가 급격한데 현행 법률상 윤리적,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며 추가입법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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