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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랑 이야기

입력
2020.11.14 04:30
17면

<12>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모던 러브'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모던 러브’는 뉴욕타임스에 16년째 연재되고 있는 관계에 대한 에세이 ‘모던 러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모던 러브’는 뉴욕타임스에 16년째 연재되고 있는 관계에 대한 에세이 ‘모던 러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에세이를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학창 시절 수필이라고 배운 에세이의 사전적 정의는 ‘무형식의 산문’으로, 누구나, 거의 모든 소재를 가지고, 어떤 형식으로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문학의 한 갈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에세이는 쓰기도 읽기도 쉬운 글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그 이유로 에세이는 쓰기 어렵다.

에세이 작가는 인터넷 서점의 독자평에 ‘그냥 일기’라거나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댓글이 달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도 내가 쓰는 이야기가 나를 넘어 타인에게 가 닿아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의 이야기가 읽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도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독자가 반드시 그것을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세이로 분류되는 단행본 두 권을 출간한 작가로서, 그럼에도 에세이는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의미가 있어서 쓰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책이 많이 팔리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에세이의 본질적인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한 일, 내가 느낀 감정, 나의 삶의 어떤 부분을 나의 언어로 기록하고 남기는 일이 먼저이고 그것이 읽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는 그다음이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 될지, 미리 알 수는 없다.

아마 뉴욕타임스에 16년째 연재되고 있는 관계에 대한 에세이 ‘모던 러브’를 쓴 수많은 개인도 비슷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갔을 것이다. 1인칭의 시점으로 ‘사랑’이라는 커다란 단어 안에서의 내가 겪은 일을, 감정을 고백하는 것으로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모던 러브’는 평범한 개인이 자신의 언어로 고백하는 나의 이야기가 모였을 때 비로소 의미가 만들어진 경우다. 현대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랑이 모이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오리지널 시리즈 ‘모던 러브’는 이 에세이 중 일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나는 이 에세이를 낭독하는 동명의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종종 할리우드 배우들의 목소리로도 들을 수 있는 에세이들은 길지 않은 분량에, 여러 가지 모양의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패한 연애, 아주 짧았던 추억이 되어버린 관계나 경험, 사랑과 미움, 배신과 믿음을 느낀 삶의 순간들이 거기 있다. 최근에는 팬데믹으로 고립되고, 거리를 두며 살아가게 된 사람들이 겪은 경험과 마음들을 나눈 에세이를 모아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모던 러브’의 인물들은 미국 대도시를 배경으로 안전한 중산층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들은 불안과 우울, 트라우마와 같은 문제를 겪는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모던 러브’의 인물들은 미국 대도시를 배경으로 안전한 중산층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들은 불안과 우울, 트라우마와 같은 문제를 겪는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드라마 역시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크게 변형하지 않고, 에세이로서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간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외피를 쓰고 있고, 어느 정도는 공식을 따라가는 이야기도 있지만, 눈에 띄게 특별한 사건이나 소재를 다루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이 픽션을 볼 때 개연성을 기대하고 결론에 이르러 딱 들어맞는 이야기의 완성을 기대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의 삶은 그렇지 않다. 현실의 삶은 기승전결이 완벽하지도 않고, 구성이 훌륭하지도 않다. 울퉁불퉁한 구석이 많고, 도저히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는다.

그런 현실에 사는 복잡하고 부족한 면이 많은 인간이야말로 평범한 인간이며, 이들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누구든 겪을 법한 일들을 겪는 모습을 큰 과장 없이 따뜻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앤 해서웨이, 데브 파텔, 티나 페이, 소피아 부텔라와 같은 배우들의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생활 연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건 덤이다.

‘모던 러브’의 인물들이 미국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안전한 중산층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일 텐데,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불안과 우울, 트라우마와 같은 문제인 것은 특히 흥미롭다.

꼭 봐야 할 단 하나의 에피소드를 꼽는다면 첫 손가락에 꼽힐 3화는 조울증을 다루고 있다.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렉시는 뛰어난 변호사지만 사춘기 때부터 조울증을 앓고있다. 조증 상태일 때의 활력으로 만들어놓은 반짝이는 세계에 살면서도,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는 자신을 침대에서 일으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조증이 찾아왔을 때의 상태를 영화 ‘라라랜드’를 연상케하는 뮤지컬로 보여주는 산뜻한 연출에서 기대되는 바와 달리, 결말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렉시는 바라는 연애도 시작하지 못하고, 실직을 겪으며, 병은 낫지 않는다. 이 한 회차 동안 렉시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는, 딱 그만큼만 변한다. 계기가 되는 큰 사건이 있어서 고백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말한 뒤에, 달라진다. 말하기 전에는 병에 따라 세상이 변했는데, 말한 뒤에는 내가 변한다. 이 드라마가 에세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모던 러브'는 실패한 연애, 아주 짧았던 추억이 되어버린 관계나 경험, 사랑과 미움, 배신과 믿음을 느낀 삶의 순간들을 그린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모던 러브'는 실패한 연애, 아주 짧았던 추억이 되어버린 관계나 경험, 사랑과 미움, 배신과 믿음을 느낀 삶의 순간들을 그린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두 번째 데이트에서 사고가 생기면서 사실상 타인인 서로에게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모습을 보여주면서 생겨나는 일과 감정을 그린 5화도 추천한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은 뒤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타인이기 때문에, 쌓아온 역사가 없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있다.

그러고 보면 에세이를 읽고, ‘모던 러브’와 같은 드라마를 보는 것은 이 에피소드에서 두 사람이 겪는 일과 비슷한 듯도 하다. 꺼내놓을 수 있는 만큼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흉터를 보여주었을 때, 연결되고 공감되고 이해되는 부분을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다 고른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 높낮이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견딘다면 그 또한 이 드라마의 매력이 된다. 첫 시즌의 마지막 화인 8화는 노년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노인 달리기 시합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감정과 일상의 보폭을 맞춰 가며 관계를 맺고 서로의 삶의 궤적을 맞추지만, 결국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남은 사람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말은 우리에게 그리 큰 헌신이 아니었다”라고 말하면서도, 노년의 사랑 또한 젊은 사람들의 그것만큼이나 풋풋하고 소중할 수 있다며 떠난 이를 추모한다. 소중한 사람이 떠난 세계에서도 남은 사람이 바람을 마주하며 걷고, 비를 맞으며 달리며 다시 살아있음을 느낄 때, 그 도시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지난 이야기 속 인물들의 과거와 미래가 다시 스쳐 간다.


현실에 사는 평범한 이들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누구든 겪을 법한 일들을 겪는 모습을 큰 과장 없이 따뜻하게 보여주는 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현실에 사는 평범한 이들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누구든 겪을 법한 일들을 겪는 모습을 큰 과장 없이 따뜻하게 보여주는 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이 이들 삶의 전부가 아닌 일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고 들은 부분 이전에도 삶이 있었고, 이후에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한 번 이별을 겪었지만, 다시 만나기 시작한 커플은 또다시 헤어질 수 있고, 서로를 알기도 전에 연약한 모습을 들켜 버린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조차 못 할 수 있다.

이혼의 위기를 극복한 부부는 비가 오는데도 계속 테니스를 치기로 하지만, 애써서 이어가고 있는 결혼 생활이라는 게임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부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은 삶의 순간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찾아올지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서 전부를 살지 못하며, 매일 이라는 일부가 모여야만 내 삶의 이야기의 엔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픽션과 현실의 차이이고, 그게 바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의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다음 단행본이 될 에세이의 초고를 마무리했다. 쓰는 동안 누군가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곤 했는데, 답을 찾지는 못했다. 나는 끝내 내 이야기의 온전한 독자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다. 하지만 ‘모던 러브’를 통해 생각해보면, 이 이유를 지금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읽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나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생각하고 고민하고 질문하는 개인의 이야기가 더 많아진다면, 더 많이 쓰이고 또 읽힌다면, 우리가 닿는 부분 역시 넓어지리라는 사실 뿐이다. ‘모던 러브’가 온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그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할 것이고 말이다.

윤이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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