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공포의 중남미 정글 투어

입력
2020.11.14 10:00

<150>짜릿하거나 끔찍하거나…예측 불허 중남미

코로나19와 공생하는 시대, SNS에 지난 여행을 편집해 올리며 떠나고 싶은 마음을 대체한다. 케케묵은 여행 사진을 끄집어내 과거를 현재로 끌어온다. 남이 보면 재미있고 당사자는 괴로웠던 여행의 추억을 소환한다. 살 떨리던 기억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웃을 수 있다. 중남미로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꼭 참고하시길 바란다.

이 평화로움은 곧장 두려움으로 바뀐다. 상상해 보라. 수영복 차림으로 암벽 투성이인 깜깜한 동굴을 탐험하는 장면을. 공포 영화의 예고편처럼 그날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강미승


결국 사달이 났다…안전장치 '제로' 과테말라의 동굴 탐험

세상의 끝으로 가는 줄 알았다. 세묵참페이(Semuc Champey)는 과테말라 중부에 위치한 자연보호구역이다. 북부 호반도시 플로레스에서 버스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넌 후, 다시 화물 트럭에 몸을 싣고 유체이탈을 경험한 뒤에나 당도하는 곳이다. 그렇게 ‘개고생’하며 거기까지 간 이유는 저 한 장의 사진(바로 아래) 때문이었다. 실제 감동은 폭포와 새,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더욱 입체적이다.

계단식으로 떨어지는 에메랄드 폭포와 물웅덩이. 이 보석 같은 천연 수영장 근처엔 검은 비밀이 있었으니... ⓒ강미승

동굴 투어 후 전염병이 옮는 건 아닐지 의심스러운 강물을 따라 튜브를 타고 내려온다. ⓒ강미승


경황이 없어 동굴 사진은 한 컷도 찍지 못하고 병원 사진만 남았다. 변변한 병원조차 없어 동네 주민까지 동원해 탕탕의 어긋난 뼈를 맞췄다. ⓒ강미승

풍광이야 나무랄 데 없었지만 멋모르고 예약한 동굴 탐험에 뒤탈이 나고 말았다. 호스텔이 주관하는 투어 일정은 놀랍도록 촘촘하게 짜여 있었다. 오전엔 세묵참페이 부근 트레킹, 오후엔 동굴 탐험과 튜브 타기가 계획돼 있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암벽을 헤쳐 동굴에 닿았다.

동굴 속은 대충 봐도 80%가 강물로 채워져 있었다. 땅바닥에 발 붙이고 편히 숨쉴 공간이 20% 정도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조명은 없었다. 한 손에 양초를 들고 다른 손으로 헤엄쳐야 한다. 무시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촛농을 피하랴 헤엄치랴 정신이 없는 가운데, 어쨌든 동굴 끝자락에 닿았다. 폭포가 쏟아지는 50m 암벽에 동아줄 하나가 매달려 있다. 가이드는 달랑 줄 하나에 의지해 올라가라고 재촉했다. 암벽은 기름칠을 한 미끄럼틀 수준이다. 안전시설은 일체 없다. 겨우 꼭대기에 올라보니 먼저 도착한 여행자들이 비좁은 공간에 난민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결국 불상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한 젊은 한국인 여행자는 암벽에서 미끄러져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울먹였다. 다음날 탕탕은 인근 소도시 보건소에서 다리뼈를 맞추고 열흘 넘게 요양해야 했다. 참 묘한 게 여행이다.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기억마저 추억이 되었으니.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코스타리카 집라인 투어

‘자, 이제 짜릿하게 즐겨볼까?’ 실제 투어는 짜릿함을 넘어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강미승

코스타리카는 중남미에서도 여행자의 지갑을 홀쭉하게 만드는 데 재주가 능한 나라다. 일부 지역은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해야 접근이 허락된다. 열대우림 정글 탐험, 몬테베르데의 캐노피 투어를 택했다. 시간 대비 가격, 그리고 투어의 짜릿함을 계산한 결과였다. 중남미에서 가장 긴 1,590m 집라인을 슈퍼맨처럼 날고, 45m 상공에서 타잔이 될 수도 있었다.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의 괴성이 정글에 울려 퍼진다. 안전도구가 몸에 익숙해지도록 준비운동을 마친 뒤 집라인에 섰다. ‘철커덕’ 긴 쇠줄에 몸이 묶였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말이 뛰노는 평화로운 초원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늘을 가르는 속도를 즐길 여유도 없었다. 죽음을 앞둔 것처럼 소리만 질렀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었다. 45m 높이에서 뚝 떨어지는 타잔 코스는 선택이니 다행이다 여겼다.

정말 호기심 때문에, 구경만 하려고, 아슬아슬한 다리 끝으로 다가갔다. 순간 안전요원이 다짜고짜 가슴팍에 ‘딸깍!’ 안전고리를 채운다. 이게 아니라고, 이러면 심장마비 걸릴 거라고 경고했지만, 안전요원은 흔한 반응이라는 듯 내 몸을 밀었다. 비명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꺼이꺼이’ 속울음만 삼켰다. 공중에서 텀블링을 두 번 하고 나서야 ‘비겁한 타잔’을 비웃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았다. 입이 덜덜 떨렸다. 눈물도 조금 나왔다.

두 팔로 가슴을 안고 발을 모아 출발! ‘언젠가는 끝난다’는 마음가짐, 사실상 자포자기였다. ⓒ강미승


바람이 고공 상승하는 철제 다리. 몰랐다. 이 다리를 건너는 게 곧 번지 점프에 도전한다는 결심이라는 걸. ⓒ강미승


뭔가 당했다는 울분도 있었나 보다. 다른 사람의 공포를 즐기는 와중에도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강미승


공평한 주고받기…니카라과의 정글 모기의 추억

로스구아투소스(Los Guatuzos)는 437㎢에 달하는 니카라과의 열대우림 지대다. 코스타리카와 국경을 맞댄 지역이자 심혈을 기울이는 보호구역이기에 총을 든 군인이 입장객을 엄격히 체크한다. 자격증 있는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도 필수다.

모기떼를 단백질로 충분히 섭취하며 웃고 있는 영국인. 긴 소매 옷을 입으라는 가이드의 권고를 무시한 걸 바로 후회했다. ⓒ강미승

작은 배로 갈아 타고 좁은 수로를 따라 정글의 깊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쨍쨍한 햇빛도 완벽히 차단된다. 무섭지 않았다. 새 뒷다리를 닭다리처럼 문 악어가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낮은 나뭇가지에서 꾸벅꾸벅 조는 새는 자신의 세상이라는 듯 인간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모기다. 그렇잖아도 개인적으로 남들보다 모기에 많이 물리는 체질이다. 여기에선 뜻밖에 공평했다.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평소 모기에 잘 물리지 않던 사람도 ‘누구나 반드시’ 물린다.

모기가 공포였을 뿐, 악어는 귀여웠다. 날 해치지 않으니까. ⓒ강미승


모기의 전투적인 습격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끝임없이 움직이는 것. 그 와중에 낯선 정글의 동물과 만난다. ⓒ강미승


광각 렌즈가 아니면 절대 찍을 수 없이 키 큰 참나무와의 인증샷. 투어 막바지에는 모두들 평화주의자가 된다. 모기야, 최소한 오늘 행복했지? ⓒ강미승

넝쿨이 만든 천연 그네를 타며 소리를 지르자 입과 코로 모기 군단이 침투했다. 참나무 꼭대기를 보려고 목덜미를 젖히자 민감한 귀 언저리를 공략했다. 손가락 사이까지 물렸다. 움직이기도 불편한 진흙탕에서 모기의 습격은 앞뒤 좌우로 줄기차게 이어졌다. 당시는 괴로웠지만 돌이켜보면 정당한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였다. 정글 모기에 수혈 당하는 사이, 인간들은 자연의 신비를 훔쳐보았으니 말이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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