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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황금 찾아 온 이방인 머무는 곳...고시원보다 좁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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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약 10시간을 이동하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국제 공항에 다다른다. 사막의 모래를 상상했지만 어쩐지 모래는 보이지 않았고, 번쩍이는 건물들이 즐비하게 시야에 들어찼다. 이슬람의 전통복 칸두라(Kandura)를 입은 남자들이 삼엄함을 드러낸 것이 두바이 공항의 첫인상이었다. 중동 국가에 대한 환상과 이들 문화의 폐쇄성 등이 선입견으로 자리하고 있던 터라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일어났다. 입국 수속을 위해 줄을 서려는데 누군가가 지그재그로 놓인 줄을 중간에 치고 들어가며 질서가 엉망이 되었다. 내 앞사람까지 적어도 10명 이상이 '가서는 안 될' 줄로 들어갔고, 나 역시 무의식으로 그들을 따라 들어가려던 찰나 그 삼엄함을 뽐내던 남자들이 나를 '콕 찍어'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간 곳은 경찰서의 출장소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다. 이들은 내게 다짜고짜 여권을 달라며, “왜 원래 서야할 줄을 어기고 또 다른 줄을 만들었느냐”며 벌을 받아야 한다고 겁을 줬다. 나는 “내가 한 게 아니고 그저 앞사람을 따라가고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그들은 한사코 “두 눈으로 봤다”며 “당신 때문에 공항의 질서가 깨졌다”고 나를 몰아세웠다.
억울했다. 그런데 낯선 곳에서 화를 내 봐야 불리할 것 같았고, 더 큰 화를 당할까 걱정이 밀려왔다.
나는 침착하게 다섯살 수준의 영어 실력을 동원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보자고 말했다. 지구촌장이라 쓰인 명함도 내밀었다. 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호소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실제로는 10분 동안이었지만 마치 한 시간 넘게 실랑이를 한 것 처럼 진이 빠졌다. 다행히 다시 입국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무사히 수속을 마쳤지만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은 후유증은 꽤 컸다. 내가 혹시 무슨 잘못을 했는지 꼼꼼하게 살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쨌든 공항을 나와 매트로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했다.
매트로는 고가 위를 달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항부터 두바이 도심을 감상할 수 있었다. 매트로를 고가 위에 설치한 이유는 지하 터널을 뚫어 건설하는 것보다 예산을 줄일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세계 최초, 세계 최고를 꿈꾸는 두바이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라는 말도 있다.
며칠 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가는데 그 흔한 톨게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렸지만, 정지 장치가 없고, 빠져 나오는 게이트도 찾을 수 없었다. 이는 자동으로 통행료가 결제되는 스마트페이 시스템을 일찌감치 도입한 덕분이다.
위성항법장치(GPS) 기반의 자동 시스템이 고속도로의 모든 차량이 특정 지점을 통과할 때 자동으로 요금을 부과한다. 일반 도로에서는 속도 위반, 주차 위반 차량을 대상으로 과태료를 알아서 적용한다. 위반한 그 순간 차량 등록을 한 사람의 휴대폰으로 청구서를 보낸다. 한국처럼 종이로 된 청구서가 집으로 오지 않는다.
두바이가 이런 방식을 채택한 것은 스마트 시티라는 지향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인구가 적어 단속 할 노동력이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첨단화 된 기술을 도시 곳곳에 적용해 다른 불편 요소들을 없애고 들어가는 비용도 줄여보겠다는 뜻이다.
UAE의 인구는 현재 1,000만명 정도다. 이중 자국 인구는 10분의 1인 100만 명, 나머지 900만 명이 외국인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몰려 도시가 커지는 과정과 달리 도시를 만들기 위해 바깥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특히 도시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받는 임금보다 조금 더 받기 위해 찾아 왔다.
현지에서 '인·방·파·필'(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필리핀)로 불리는 이들은 두바이의 화려한 경제를 밑에서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사막의 최고 부자 도시라는 두바이의 위상치고는 매우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이들은 두바이의 주택 임대료 탓에 애초에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번 돈을 살뜰히 아껴, 고향에 남겨두고 온 가족에게 보내야 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서울의 여느 고시원 보다도 열악해 보이는 6인실, 10인실 이상의 쉐어룸에 머물 수밖에 없는 신세다.
UAE는 경제의 많은 부분을 이들 이주 노동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택시운전사, 호텔 식당 등의 서빙, 건물 경비, 여행 가이드 등 서비스 업종과 건설 등 산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비중은 90%를 넘는다고 한다.
솔직히 UAE에 있는 동안 화려한 도시의 뒤편에서 고단한 삶을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만났다. 숙소가 있었던 티콤 지역은 많은 아파트들이 사실상 이들 이주 노동자들의 숙소로 쓰이고 있었고, 그 중 한 곳에 침대 하나를 빌릴 수 있었다. 그 도시에서 가장 저렴한 방을 찾다가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가게 됐는데, 각 방마다 2층 침대 3대가 놓여 있었다.
내가 머문 방에는 파키스탄 출신 2명, 인도 출신 3명이 지내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샤히드(30)라고 밝힌 인도 친구는 내 침대의 2층에 살았다. 2년 전 두바이에 왔고, 주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데 새벽에 나가 하루 종일 일하다 저녁에 돌아와 인도의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는 낙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다른 침대를 쓰는 파키스탄에서 온 여성(23)은 호텔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이 아파트 관리인이었다. 달 방을 끊어놓고 사는 노동자들과 나처럼 며칠을 묵는 사람들을 관리하고 청소나 안내를 해주는 역할이다.
어려운 사정에 처한 나라의 청년들이 낯선 두바이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반면, UAE 정부는 자국 젊은이들에 대한 걱정이 많다고 한다. '황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라온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의무를 지우거나, 무엇에 도전해 보라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에 올라 정상에 도달한 사람들과 같다.
많은 것들이 우리 아래에 있음을 보았음에도
여전히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한 야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전 아부다비 통치자 인 고(故) 셰이크자이드 전 UAE 대통령의 어록이다.
UAE는 2016~2017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는 세계 16위에 올랐다. 이는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합친 지역에서 가장 높다. 안정적 정치 체제, 친기업적 시장 환경, 다양한 시장으로 진입이 유리한 위치와 잘 갖춰진 인프라 때문에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7개의 연합 왕국으로 구성된 UAE는 수도인 아부다비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만 달러, 두바이는 4만 달러로 최상위 선진국 수준의 경제 성과를 유지하고 있다.
UAE(United Arab Emirates)가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즈만, 움알콰인, 라스알카이마, 후자이라 등 7개 왕국의 연합체라는 사실을 현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수도인 아부다비의 왕이 연합체인 UAE의 대통령을 맡고, 두바이의 왕이 부통령과 총리를 겸직하고, 다른 5개 왕국에서 장관 자리를 나눠맡는 방식이다. 아부다비에서 나오는 오일 머니가 사실상 UAE를 일으킨 자본의 기반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 왕들은 아부다비왕의 리더십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편이다.
UAE에서 나오는 석유와 가스의 94%가 아부다비 산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를 두바이유라고 부른다. 오일을 내보내는 창구가 두바이 항만이기 때문이다.
석유 관련 회사에서 관리자로 일하며 물류 계통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영국 출신 제이든(Jayden)을 두바이 정부가 창업을 지원하는 HUB에서 만났다. 그는 “아부다비의 GDP에서 석유 관련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수치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10년 넘게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오가며 일했다는 그는 “UAE는 무엇보다 비석유 부문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석유 부문에 지나치게 의존했다가 국제 유가 급락 등 위기가 오면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를 발전 시키기 위해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튼튼히 하고, 외부 시장과 연결 고리를 확대하는 것도 미래의 생존을 위한 전략인 것이다.
두바이는 아부다비처럼 석유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부터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비즈니스와 관광, 교통, 부동산 등의 분야에서 경제 성장을 도모했다. 하늘 길과 바닷길을 열어 만들어 낸 '두바이 신화'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사방이 바다와 사막이었던 두바이는 개방적 시장 경제를 통해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두바이는 중동의 거점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쉽게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경쟁 무기로 삼은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중동과 북아프리카 진출의 허브, 물류 통관과 재수출의 허브란 타이틀을 얻었다.
이를 증명하듯, 현재 UAE에 자유 무역 지대는 35곳 있는데, 이중 25개가 두바이에 위치한다. 이 지대에는 외국인과 외국기업의 회사 소유권을 100% 인정하고, 법인세·관세 면제와 외국인 노동자 채용을 무제한 허용한다.
또 100% 회사 소유권이나 능력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최대 10년의 장기비자 제도는 자유무역지대 바깥에서도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제이든은 “나이 60세가 되기 전까지는 두바이에서 지내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창업을 비롯해 새로운 기회를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현재의 삶이 매우 만족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바이가 매력적인 이유는 또 있다. 이런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또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다녔던 전 세계 나라 중 유일하게 법인세와 소득세를 징수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세금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2015년까지는 부가 가치세 마저도 없었단다.
UAE는 실제로는 법인세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석유 및 가스 분야와 외국계 은행에 대해서만 법인세를 부과할 뿐 다른 분야의 기업과 개인에게는 세금을 걷지 않는다. 누구든지 사업을 하거나 노동을 할 때 세금이 없다는 것은 매우 강력하다. 여기에 과실 송금의 자유, 외환 규제로부터 자유, 자국민 고용 의무 면제, 로컬 스폰서 지정 면제 등 조치가 뒤따른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항만과 인접한 4개의 공항, 잘 닦인 도로, 2023년까지 23개의 전용철로 설치 등 주요 물류기지로의 편리한 접근성은 전 세계 도시들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인프라를 자랑한다.
두바이는 친기업적 시장 환경을 만들고, 주변국으로 편리하게 접근하게 하고, 정치 체제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두바이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이미지를 확실히 굳혔다.
비즈니스 친화 도시와 함께 오늘의 두바이를 만든 일등 공신으로 관광업을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두바이를 경유하는 이들을 포함한 방문객은 총 790만명이었다. 그러다 2017년 방문객은 1,580만명으로 2배로 늘었고, 2018년에는 1,600만명을 넘어섰다. 국적 별로는 인도가 200만명으로 가장 많고, 사우디(160만명), 영국(120만명)이 2,3위를 그리고 중국, 러시아, 독일 등이 50만~80만명을 기록하는 등 여러 나라에서 골고루 두바이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막에 가기 위해 탄 차량에서 만난 드라이버는 모헤딘(35)씨는 파키스탄에서 두바이로 온지 7년이 됐다. 그에 따르면, 두바이는 ‘EXPO 2020 DUBAI UAE’를 겨냥해 약 2,000만 명이 찾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 가득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를 위해 두바이 정부는 2020년 10월부터 2021년 4월까지 도시 전체를 행사장으로 활용해 세계 최고의 도시 엑스포를 만들 예정이었다.
참가 국가별 국가관과 방문객들이 묵을 호텔 등이 수많은 곳에서 건설되고 있었고, 방문객들이 타고 다닐 매트로 등 교통과 도로 체계도 확장 중이어서 도시 전체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물론 이는 지구촌 전체에 불어 닥친 신종 코로나비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제 때 열리지 못했다.
모헤딘은 UAE 정부가 2020년 두바이엑스포 뿐 아니라 2022년에 바로 옆 나라 카타르에서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까지 겨냥하고 있다는데, 자신들처럼 관광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겐 앞으로 몇 년은 엄청난 기회들이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UAE 정부는 연간 승객 3억명이 이용할 수 있는 공항 개발과 확장 프로젝트에도 적지 않은 돈을 쏟아 붓고 있었고, 이러한 흐름으로 2000년대 초중반에 불었던 두바이의 건설 붐이 다시 일었다.
물론 도시 전체를 뒤집는 이 엄청난 작업에 필요한 인력은 가난한 나라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바로 그들의 구슬땀에 의해 UAE는 또 다시 화려함을 더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재밌는 나라다. 자국 사람보다 9배 많은 해외 사람들을 끌어들여 도시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 이들이 돈을 내게하고 그렇게 받은 돈에서 수익을 낸다.
그리고 100만 명의 자국인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세계 최고의 안락한 삶을 누리게 한다.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유학 비용과 생활비까지 지원해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다. 물론 황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은 굳이 힘들여 일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기성 세대는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현지에서 들은 얘기지만, 수용소에 죄수들이 증가하면 재정 지출이 늘기 때문에 국가 비용 절감을 위해 나라 밖으로 추방을 한다고. 특히 국가 경제의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아시아인 출신 이주 노동자들을 2등 국민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영국에서 온 제이든과 인도에서 온 샤히드 모두 두바이는 기회의 땅이라고 믿지만, 이들의 출신 국적에 따라 그 기회의 끝에 다다르는 곳은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두바이를 경험하면서 이토록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중동 나라는 보지 못했을 만큼 높이 평가할 부분도 많지만, 출신 국적에 따라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인류는 활발하게 섞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여러 계층으로 나뉘어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가 참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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