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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 이런 일 없도록" 호소에도…연인 앗아간 렌터카에 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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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두 남녀 중 한 명은 목숨을 잃었고, 한 명은 크게 다쳤다. 아울러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참담한 결과가 초래됐다. 유족들과 홀로 남게 된 남자친구의 정신적 고통이 어떠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29일 대전지법은 외제차를 몰다가 사고를 낸 전모(17)군에게 장기 5년, 단기 4년을 선고했다. 전군은 지난해 2월 10일 오후 2시쯤 대전 중구 대종로에서 무리하게 차선 변경을 시도하다가 인도를 걸어가던 박모(28ㆍ여)씨와 조모(29)씨를 쳤다. 이 사고로 박씨는 사망했고, 조씨는 크게 다쳤다. 전군이 몰던 차는 제한속도인 시속 50㎞를 훨씬 초과한 96㎞로 달리며 앞차를 추월하려다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침범했다. 그리고 맞은편 인도를 걸어가던 피해자들을 덮쳤다. 피해자 입장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박씨는 사고 당시 경남 창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남자친구와 중간지점인 대전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선고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분노와 당부의 글이 올라왔다. 박씨의 유족이라고 밝힌 청원자는 “사랑하는 딸이 불법 렌터카 대여를 통한 운전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 너무 억울하고 비통하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유족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1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렌터카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소중한 생명이 '도로 위의 흉기'에 의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달라는 유족의 당부를 엄중히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다. 박씨를 ‘천사 같은 선생님’으로 기억한다는 한 학부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10대가 렌터카를 빌릴 수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도, 아무도 책임을 안 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대책이 안 나오니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30일 오전 광주지법 404호에서도 10대 렌터카 운전자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푸른색 수형복을 입은 김모(17)군은 지난 10월 1일 전남 화순군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안예진(21ㆍ여)씨를 치고 달아났다. 김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및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운전) 혐의로, 옆에 타고 있던 또래 정모군은 도주치사 방조 및 무면허 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사가 “고등학생입니까”라고 묻자, 김군은 “네”라고 답했다. 김군과 함께 기소된 정군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고 차량인 흰색 K5는 정군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30대 남성의 카셰어링(차량 공유) 계정을 빌려 구한 것이었다. 정군은 김군이 면허가 없는 것을 알고도 운전을 시켰으며, 사고 후 김군에게 “피해자가 기절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자리를 피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정군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변호인의 말에 방청석에선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구속영장 발부하고요. 지명수배 의뢰하겠습니다.” 판사가 말했다.
검사가 김군의 범죄사실을 읊은 뒤, 판사가 죄를 인정하느냐고 묻자, 김군은 머뭇거림 없이 “네”라고 말했다. 당당한 그의 태도에 방청석이 또 한번 술렁였다. 판사가 김군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김군의 가족은 방청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정작 황당한 사고로 딸을 잃은 유족은 비장한 표정으로 눈물을 삼켰지만, 가해자 가족은 소리 내 우는 이상한 광경이었다.
재판이 끝나자 예진씨의 부친 안모(53)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도 (가해자 측으로부터) 연락 한 통이 없었어요. 자기 자식 소중한 건 아는 사람이 자식을 잃은 우리한텐 사과 한마디 없다는 게 너무 괘씸해요.”
스물한 살이면 걸어 온 길보다 갈 길이 훨씬 많은 나이다. 휴대폰이 켜질 때마다 안씨가 화면 속에서 웃고 있는 딸 사진을 보고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겠다며 몸의 움직임을 치열하게 연구했던 예진씨의 삶은 사고 다음날 멈췄다. 이날 법정에는 고교시절 예진씨와 댄스학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 신빈(21)씨도 나왔다. “예진이는 '팝핀'과 '어번'을 섞어서 추는 춤을 연구해 왔고, 새벽까지 연습할 만큼 열정적이었어요.”
춤을 제대로 배우려고 상경했던 예진씨는 추석을 맞아 부모님이 머무는 전남 화순군으로 내려왔다. 그는 추석 당일인 10월 1일 저녁 사촌들을 만났고, 귀가 도중 사고를 당했다. “자고 있는데 형한테 전화가 왔어요. 예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괜찮냐’고 물었더니, ‘좀 잘못된 거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 때 알게 된 거죠.” 예진씨의 막내삼촌 안기열(42)씨가 택시를 타고 황급히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을 땐 이미 예진씨가 떠난 후였다. “응급실에 들어가니 형수가 울고 있고, 형도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어요. 침대를 보니 예진이는 천으로 덮여 있었어요.”
사고만 없었으면 여느 때처럼 평온했을 명절이었다. 안기열씨는 행복하고 단란했던 가정이 한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사고 후에 아무런 조치 없이 도주했다가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이에요. 소년범이라고 약하게 처벌할 게 아니라, 죄의 경중을 따져 엄한 처벌을 내려야 해요. 한 번이면 실수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가해자들은 이전에도 사고를 냈어요. 애들이지만 애들이 아닌 거죠.” 조카를 잃은 안씨는 분을 이기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딸이 안치된 납골당을 찾는 예진씨의 어머니는 기자에게 “헛된 죽음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누차 당부했다. “딸의 죽음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다시 돌아오면 하고 싶은 거 모두 하게 해 줄 테니 얼른 오라고 기도했어요. 춤을 늦게 배워서 이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달 23일 찾은 사고현장은 참혹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주가 넘었지만 사고 지점을 표시해 놓은 횡단보도 위 노란색 스프레이 자국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예진씨가 무면허 렌터카 차량에 치여 추락한 지점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인근에 전통시장이 있어 낮 시간에는 사람과 차로 붐볐다. 사고차량은 10월 1일 밤 11시40분쯤 횡단보도를 건너던 예진씨를 치고 달아났다. 편도 2차선 도로의 바닥에는 제한속도가 30㎞라고 선명히 써 있었고, 횡단 보도 앞에는 과속방지턱이 2개나 설치돼 있었지만, 사고 차량은 100㎞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다가 사고를 냈다. 가해자들은 20㎞ 떨어진 곳까지 도주했다가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고, 현장에 있던 경찰관에게 자수했다. 화순경찰서 관계자는 "기소된 2명 이외에 동승자 3명도 무면허 운전 방조 혐의로 입건해 지난달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 인근 직장에서 일한다는 윤모(39)씨는 “예전에도 같은 길에서 위협적으로 운전하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며 “10대들이 차를 빌릴 수 있는 루트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진씨의 이모부 김종배(39)씨는 “차를 빌려줄 때 본인 확인을 철저히 하고, 운전 중에도 본인이 맞는지 확인해야 비극이 멈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족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면허발급 대상이 아니라서 운전대를 잡을 수 없는 만 18세 미만이 낸 교통사고는 매년 5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하루 한 건 이상 무면허 차량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10대 무면허 사고는 2015년 724건에서 2016년 513건으로 주춤하는가 싶더니 2018년 618건, 지난해 689건 등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까지 5년간 사망자는 91명에 달했고, 4,862명이 다쳤다. 특히 10대 무면허 사고 중에서도 렌터카를 이용한 사고가 연간 100건에 가까워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국일보가 최근 5년 사이 언론에 보도된 사건 위주로 10대 무면허 운전 사고 21건을 분석했더니, 빌린 차량을 몰다가 사고를 낸 사례(12건)가 절반 이상이었다. 분실된 운전면허증을 렌터카업체에 제시해 차를 빌리거나, 타인 명의를 도용해 카셰어링 서비스로 차를 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0대들은 차를 빌릴 때 본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 허점을 노렸으며, 정상적으로 대여된 렌터카가 여러 사람을 거쳐 10대들에게 불법으로 다시 전달된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10대 렌터카 사고로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해자 엄벌도 중요하지만, ‘탈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10대가 차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진숙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은 “청소년들은 성인의 행동을 모방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으스대고 싶어 한다. 여기에 자신만큼은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란 근거 없는 믿음까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과거에 자전거를 훔치던 게 오토바이를 거쳐 지금은 차로 바뀌었다.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차량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차량 운전의 편리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사고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좀 더 갖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기주 도로교통공단 광주전남지부 안전교육부 교수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3,400여명이 죽었는데도, 자동차 운전을 장난감 다루듯 너무 쉽게 생각하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10대 무면허 사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하다. 운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진씨의 유족들도 도로에서 허망하게 죽어 가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사고차량은 애초에 도로에 나올 수 없는 차량이었고, 나오지 않았다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진씨의 삼촌 안기열씨가 친척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난달 5일 국민청원 글을 쓰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쓴 글에는 25만1,996명이 동의해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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