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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분노 산 검사 집단반발…'검란'이 뭐기에

입력
2020.11.03 17:22
수정
2020.11.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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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파괴 인사·중수부 폐지 방침에 '사발통문' 등장
수사권 조정 시도에 반발…검찰총장 물러나기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제주시 이도일동 제주스마일센터에서 열린 개소식 행사장에 앉아있다. 그 뒤로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으로 알려진 박찬호(왼쪽) 제주지검장이 자리했다. 제주=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제주시 이도일동 제주스마일센터에서 열린 개소식 행사장에 앉아있다. 그 뒤로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으로 알려진 박찬호(왼쪽) 제주지검장이 자리했다. 제주=뉴시스

"검란을 통해 지키려는 게 뭐냐"(이재명 경기지사)

"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에만 검란 운운…"(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검란(檢亂)이 대체 뭐기에 너도 나도 검란 타령일까요? 국어사전에는 계란 등 알의 상태를 검사하는 검란(檢卵) 밖에 나오질 않는다고요? 요즘 말하는 검란은 그 검란이 아닙니다. 검사들의 난을 말하는 건데요. 주로 검사들이 무언가에 대해 집단으로 반발하는 모습을 검란이라고 불러요.

대체 어떤 경우를 검란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사실 명확한 기준은 없어요. 이 때문에 같은 반발을 두고도 판단이 달라지기도 해요. 예를 들어, 평검사들이 회의만 열어도 어디서는 검란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검란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한 일선 검사들의 반발도 마찬가지에요. 이미 검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검란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도 있어요. 일부에선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을 중심으로 검사들의 반발이 이어지는 상황을 두고 '댓글 검란', '디지털 검란'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해석하기 나름인 셈이죠.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대통령의 분노

2003년 3월 9일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검사들과의 대화. 청와대사진기자단

2003년 3월 9일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검사들과의 대화. 청와대사진기자단

DJ 정부 시절에도 검란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사용된 적 있지만,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있었던 검사들의 집단 반발을 첫 검란으로 꼽는 시각이 지배적이에요.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파장이 꽤 컸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정부 출범 직후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보다 사법고시 12년 후배이자 판사 출신의 강금실 전 장관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어요. 그와 동시에 서열을 파괴한 검찰 인사를 통해 검찰 개혁을 시도했는데, 검사들의 반발이 어마어마했죠.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들까지 나서서 파격 인사를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검찰청·기수별로 사발통문(연판장)을 돌리며 조직적으로 반발했어요.

이 때 등장한 것이 그 유명한 '검사와의 대화'에요. 노 전 대통령이 개입해 전국 평검사 50명과 생방송으로 공개 토론을 진행했는데, 한 검사가 청탁 전화 의혹까지 제기하자 노 전 대통령은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받아쳤어요. 또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불신감도 드러냈는데, 이 일이 결정적 계기가 된 걸까요. 김 전 총장은 바로 다음날 불만을 표시하며 사퇴했습니다.

수사권 축소·조정에 집단반발

2011년 6월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대회의실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평검사 회의에 참석한 일부 검사들이 회의에 앞서 미리 의견을 나누고 있다. 류효진 기자

2011년 6월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대회의실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평검사 회의에 참석한 일부 검사들이 회의에 앞서 미리 의견을 나누고 있다. 류효진 기자

검란으로 분류되는 검찰의 반발 중에는 유독 수사권과 관련된 사안이 많았어요. 검찰의 수사권을 축소하거나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권 통제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반발한 건데요. 2005년 4월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형소법) 개정에 반발해 전국 각지에서 평검사 회의가 열리기도 했어요.

사개추위는 당시 조서 중심 재판에서 벗어나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피고인 신문제도 폐지, △피고인이 부인하는 조서의 증거능력 폐지, △녹음·녹화물의 증거 능력 부정 등을 골자로 하는 형소법 개정 초안을 마련했어요.

그러자 검찰은 자칫 범죄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당할 수 있고 성폭력 등 진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사건은 수사가 크게 위축될 거란 입장을 내세웠죠. 결국 사개추위가 검찰의 입장을 일부 수용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됐어요.

2011년 6월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놓고 전국 각지에서 평검사 회의가 열렸어요. 경찰의 독자적 수사개시권을 인정하는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검찰은 수사권 통제가 사라지면 경찰의 무분별한 수사로 국민의 권익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도 있다며 크게 반발했어요.

수사권 조정 협상을 주도한 대검 기조부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검찰 고위 간부들의 사의 표명이 이어졌고, 김준규 당시 총장은 임기 만료를 불과 49일 앞두고 사퇴했어요.

검찰 내부 문제로 집단행동하기도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표를 내고 출근하지 않은 2013년 9월 1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표를 내고 출근하지 않은 2013년 9월 1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검사들이 꼭 수사권 조정과 같은 외부문제로만 집단반발하는 건 아니에요. 검찰조직 내부에서 불거진 문제 때문에 평검사 회의를 여는 등 단체 행동을 하기도 하죠. 2012년 한상대 당시 총장이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를 추진했을 때가 대표적이에요. 한 총장은 검찰개혁의 하나로 중수부 폐지를 두고 검사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었는데요. 일선 검사들은 평검사 회의를 열고 연판장을 돌려 항의의 뜻을 밝혔고, 검찰 간부들은 총장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하기도 했어요. 결국 한 총장은 검찰을 떠났고요.

이듬해인 2013년에는 그 반대의 상황이 펄쳐졌습니다. 총장의 사퇴를 반대하기 위해 평검사 회의가 열린 거에요. 혼외자 의혹으로 사퇴를 표명한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때문이었는데요. 채 전 총장은 법무부 장관이 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감찰 지시를 내리면서 사의를 표명했어요.

그러나 서부지검 소속 평검사들은 회의체를 열고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총장이 임기 도중 사퇴하는 것은 조직의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을 고려할 때 재고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어요.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에 대한 불만은 덤이었고요.

검사들의 집단 반발은 때론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입장 표명에 그친 적도 있어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압박에서 시작한 이번 집단 반발은 아직 현재 진행형인데요. 과연 '댓글 검란'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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