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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 경험은 보배…해외로 눈 돌리면 평생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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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 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55세에 입학해 4년 만에 박사 학위를 땄다. 통계 분석이 어려워 애를 먹었다. 이후 대학 교수로 있다가 66세에 미얀마로 떠났다. 미얀마에 2년간 해외 자문단으로 활동했다. 귀국하고 나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도움 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몽골이었다. 몽골 금융위원회(FRC)에서 1년간 해외 자문을 마치고 지난해 귀국했다. 고희(古稀)를 넘은 나이지만 그의 도전은 멈출 줄 모른다. 지금은 은퇴한 60ㆍ70대를 대상으로 금융시장 투자서를 준비하고 있다.
대우증권 런던 현지법인 사장까지 지낸 ‘대우맨’ 구자삼(71) 전 교수의 이야기다. 지난달 28일 만난 그는 “우리나라에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은 아니다"며 "1970~90년대 한국 경제 급성장기 쌓은 경험은 개발도상국에 보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옛 대우그룹의 '세계경영' 기치처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이다. 은퇴 이후를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소풍”이라고 표현한 그에게 어떤 소풍이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내가 돈벌이와 상관없이 다른 이에게 보탬이 될 수 있어요. 그게 크든 작든 진짜 보람입니다.”
황해도에서 태어난 구 전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5년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에 입사했다.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는 “돈 많이 버는 걸 취업 목표로 삼는 건 당시만 해도 부끄러운 일이었다”면서도 “집이 워낙 가난해 주식 등 자본시장에 대해 잘 알면 큰돈을 만질 수 있겠다 싶어 증권사에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1986년부터 7년간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사장으로 있다가 귀국해 국제본부장 등을 지냈다. 2000년부터 2년간 아이투자신탁운용(현 HDC자산운용) 대표도 역임했다. 그러나 2001년 대표를 그만 두면서 52세의 나이에 덜컥 은퇴자가 돼 버렸다. 구 전 교수는 이때를 “인생에서 가장 허망하고 찬 바람 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대표라는 직함을 달고 있을 때는 모두가 나를 알아줬는데 은퇴하고 나니 찾아주는 곳도, 불러주는 이도 없더라고요.”
인생 2막은 작은 성취감에서 시작됐다. 숭실대 대학원생과 최고경영자과정생을 대상으로 강의했는데 주식, 펀드, 해외투자 등 풍부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강연이 꽤 인기를 끌었다. 구 전 교수는 “은퇴 이후 나의 경험과 지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돼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작은 성취는 욕심을 불렀다. “이왕 하는 거 부족한 이론 부문을 매워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숭실대 중소기업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때 나이가 55세. 구 전 교수는 “나이 들어 무슨 박사학위냐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이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고 말했다. 2008년 59세에 학위를 받은 ‘늦깎이’ 박사는 수원과학대 국제경영학과에서 66세까지 강단에 섰다.
교수 생활을 마감한 그 해, 구 전 교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선발하는 ‘월드프렌즈 중장기 자문단’에 지원했다. 대학 동문 모임에서 지인이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계기였다. “금융계에 오래 있었고 교수도 해봤으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민 없이 곧바로 지원했죠.” 해외 중장기 자문단은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행정ㆍ의료ㆍ교육ㆍ농업 등 여러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퇴직자 또는 퇴직예정자를 선발, 파견하는 프로그램이다.
구 전 교수는 2015년부터 2년간 미얀마 제2의 도시인 반달레이에 위치한 사가잉협동조합대 경영학과ㆍ경제학과에서 교수들을 대상으로 최근 경영학 흐름에 대해 강의했다. “사회주의 색채가 남아 있어 경영ㆍ경제학과 교수조차 시장경제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어요. 해외와 협력도 적어 다른 나라 교수들과 교류하고 싶다는 열망이 대단했죠.”
‘해외 석학의 초빙 강연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그는 평소 알던 미국ㆍ영국 소재 대학 교수 20여명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그중 한 명의 소개로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박사를 마친 마이애미대 교수를 초청했다. 그와 함께 ‘글로벌 시대 미얀마 정책 방향과 환경’이란 주제로 진행한 공동강의는 대학 총장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이곳에선 내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싶었죠." 예상치 못한 보람이었다.
그 큰 보람은 구 전 교수를 이번엔 몽골로 이끌었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중장기 자문단에 지원, 2018년부터 1년간 몽골 금융위원회 증권국에서 증권시장 활성화와 관련한 조언 업무를 담당했다. 이곳에 파견 나온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 내로라하는 기관의 전문가들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새로운 강점을 찾았다”고 했다. 그것은 ‘오래된 경험’이었다. “몽골에서 필요한 자문은 선진국의 1980~90년대 자본시장 육성 방법인데, WBㆍADB 등의 젊은 전문가들은 2010년대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구 전 교수는 한국의 1980~90년대 자본시장 육성 정책에 대해 공부한 뒤 본인의 경험을 녹여 증권국 전문가들에게 설명했다. 파워포인트 100장씩 발표 자료를 만들어 한 달에 2회 정도 세미나도 진행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몽골의 유력 일간지와 ‘몽골 증권시장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인터뷰도 했다. 그는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시장경제, 투자문화 변화, 자본시장 육성 등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현장의 경험은 이제 개발단계에 들어선 개발도상국에겐 귀중한 조언이 될 수 있다”며 “더 넓은 세계에서 기회를 찾는다면 ‘평생 현역’으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구 전 교수는 현재 같이 책을 쓸 필자를 찾고 있다. ‘100세 시대 60~70대를 위한 자산운용의 정석’(가칭)이란 제목의 저서다. 유튜브에서 엉터리 주식방송이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특히 최근 주식시장 훈풍을 타고 자본금을 잃으면 안 되는 은퇴자조차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게 우려스러워 책 쓸 결심을 했단다. 그는 “주식시장 분위기가 좋으면 돈을 벌겠지만 이렇게 올린 수익은 결국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헛된 자신감에 취해 투자금을 늘리다가 노후를 대비해야 할 종자돈마저 한 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어서다.
어디가 끝일지 모르는 ‘인생 n모작’ 중인 구 전 교수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은퇴 이후는 누구에게나 무서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새로움’을 다르게 바라봐야 승률이 올라간다고 강조했다.
“그간 해본 적 없는 일에 뛰어드는 건 한 살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공률을 높이려면 자신이 일평생 해온 업무 범위 내에서 새로운 일을 찾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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