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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잡으려고 회사를 산다, 어크 하이어

입력
2020.10.31 07: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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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의 인터넷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고용 형태를 가리켜 '어크 하이어(acq-hire)'라고 표현했다. 영어의 기업 인수를 뜻하는 acquisition과 고용이라는 뜻의 hire를 합친 말이다.

어크 하이어는 인재를 얻기 위해 아예 회사를 사버리는 방법이다. 우리말로 하면 인수 고용쯤에 해당한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우수 인재들이 기존 기업에 취직하지 않고 스타트업 창업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기존 기업들이 인재를 구하기 힘들자 등장한 방법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로이터 연합뉴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로이터 연합뉴스

대표적인 경우가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2009년 SNS 업체 '프렌드피드'를 인수한 뒤 창업자 브랫 테일러를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임명했다. 저커버그는 프렌드피드보다 테일러가 탐났던 것이다. 페이스북에 인수된 인스타그램도 같은 사례다. 저커버그는 인스타그램 창업자 캐빈 시스트롬을 수 차례 데려오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자 2012년 변변한 사업모델도 없던 '인스타그램'을 무려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구글도 2014년 영국의 AI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4억달러에 인수해 공동 창업자 3명을 영입했다. 이들이 바로 구글의 대표적 AI '알파고'를 개발한 주인공들이다.

출발점이 다르지만 네이버의 2006년 '첫눈' 인수도 결과적으로 어크 하이어가 됐다. 원래 네이버는 강력한 자연어 검색엔진을 개발한 첫눈이라는 경쟁자를 없애기 위해 인수했다. 인수 후 개발인력들을 모두 일본으로 보냈는데 이들이 지금 네이버의 효자서비스 ‘라인’을 만든 일등공신이 됐다.

굳이 사람을 데려오려고 수천억원씩 들여 회사를 사는 것이 과연 이득일까 싶기도 하지만, 어크 하이어는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우수 인재를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인재들은 서로 손발을 맞춰 일을 했던 만큼 협업이 잘되고 조직에 적응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다. 그만큼 이들이 갖고 있는 기술과 사업을 인수한 회사가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 그래서 야후의 전 최고경영자(CEO) 마리사 메이어는 어크 하이어를 제대로 된 실력자를 뽑을 수 있는 최고의 채용 수단으로 꼽았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크 하이어는 인수 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 많은 돈을 들여 인수한 기업의 인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비싼 대가만 치르고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IT기업들은 구인난을 겪고 있다. 대기업의 인재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오히려 안정적 환경을 선호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편이다. 반면 대학을 졸업한 젊은 인재들은 힘든 취업보다 스타트업 창업에 관심이 더 많다. 그러니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다른 회사에서 우수 인재를 데려오거나 새로 뽑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 스타트업들은 스타트업들끼리 합치고, 대기업은 괜찮은 스타트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다만 일부 대기업들은 외국 스타트업 위주로 관심을 가져 국내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 어크 하이어는 늘어날 수 있다. 그만큼 채용 시장의 형태도 달라질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사회 초년생들도 무조건 대기업을 선호하기보다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어크 하이어를 노려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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