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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택배'에 지불하겠다

입력
2020.10.29 18:00
수정
2020.10.29 19:2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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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만으로 과로사 해결할 수 있나
택배비 인상해 노동에 제값 줘야
공정 택배를 구매할 소비자 많다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故) 김원종씨의 아버지가 17일 오후 서울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영정 사진을 들고 서 있다. 뉴스1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故) 김원종씨의 아버지가 17일 오후 서울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영정 사진을 들고 서 있다. 뉴스1

내 돈 주고 내가 사는 것에 이렇게 불편함을 느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소비를 끊는 것이 답이 될 수 없다. 나의 쇼핑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로 이어진다는 이 죄책감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빠르고 값싼 택배서비스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안 그래도 온라인 쇼핑으로 성장세가 가팔랐지만, 비대면 시대엔 택배·배달기사가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노동력이 됐다. 실제로 우리나라 총 택배물량은 지난해 27억9,000만개에서 올해는 상반기에만 16억800만개로 급증했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의 상반기 택배사업 매출은 1조5,077억원, 영업이익은 83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7%, 258% 늘었다. 2·3위인 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도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대가가 노동자들의 죽음이어야 한다면 분명 정상이 아니다.

산업이 성장하면 임금이 오르고 일자리가 늘어야지 왜 노동시간만 죽어라 늘어나는지 참 이상한 노릇이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따지다 ‘택배기사가 물량을 줄이면 되지 돈 더 벌려고 욕심을 내냐’ ‘숨진 기사의 카톡을 보면 악덕 택배사가 문제가 아니라 일을 나누는 대리점과 동료들 문제’라는 주장에 마주쳤다. 복잡한 현실을 새삼 깨달았다. 택배기사의 법적 신분은 자영업자(특수고용노동자)이고, 계약상대가 택배사 아닌 대리점인 것은 맞다. 하지만 택배기사는 택배사에 종속돼 일하고 급증한 물량을 조절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택배기사의 순소득(택배수수료 수입에서 차량 유지비 등 비용을 뺀 금액)은 CJ대한통운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월 433만원, 전국택배연대노조의 2016년 조사는 월 329만원이다. 많이 일하면 많이 벌지만, 주 71시간 노동한 대가에 월 500만원인들 넉넉할까.

CJ대한통운은 잇단 과로사에 대해 사과하고 택배기사들이 대가 없이 일했던 분류·하차 작업(일명 ‘까대기’)에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으나 법정 공방을 벌이며 시정하지 않던 일이다. 국회는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안을 발의, 택배기사 보호 규제를 마련한다. 업체의 자성과 법적 규제는 분명 필요하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택배사들이 늘어난 비용 부담을 노동자에 전가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결국은 택배비를 올려야 한다.

택배사에 비난이 쏠리는 이 시점에 나는 ‘공정 택배’의 기치를 든 택배사가 등장하기를 바란다. 윤리적 소비에 기대 상생을 실천하며 미래의 시장을 거머쥘 기업의 출현을 촉구한다. 택배기사의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한정하고, 적정 물량 할당·무게 제한·태풍 호우 등 안전 기준 마련 등 택배기사의 건강 관리에 투자하며, 수수료 단가를 높여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공정 택배사에 나는 더 많은 택배비를 지불할 의향이 있다.

지금의 택배시장은 업체 간 가격경쟁이 극심하다. 택배 단가는 2000년 평균 3,500원에서 2019년 2,269원으로 떨어졌고, 지난해 CJ대한통운은 단가 인상을 추진하다 물량 감소를 경험했다. 이런 현실에서 ‘택배비 인상’은 자살 선언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노동자를 쥐어짜는 방식으로, 이슈가 커지면 잠시 모면할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나 같은 소비자들을 믿고 상생의 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은 해 볼 만한 경영전략이 아닐까. 택배기사와의 공정 거래는 분류 작업 혁신을 넘어 택배산업의 새로운 미래가 될 수 있다. 성장하는 시장에서 질 좋은 일자리가 나와야 마땅하다.

윤리적 소비에 자극받을 소비자가 적지 않다고 본다. 국민 55.7%가 택배비 인상이 필요하다고 답한 조사(리얼미터)도 나온 참이다. 택배비는 ‘2만원 이상 무료’가 아니라 ‘반드시 지불해야 할 노동의 대가’여야 한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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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뉴스스탠다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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