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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버스'를 아시나요...국가가 낙태 지원까지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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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문제가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정부가 지난달 7일 현행 낙태죄를 유지하면서 임신 14주까지만 처벌을 면해주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입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의 낙태죄 조항에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것인데, 이를 두고 사실상 낙태죄를 부활시키는 시대착오적인 법안이라는 비판이 여성단체 중심으로 일고 있어요.
그런데 아시나요? 사실 과거에는 오히려 정부가 인공 임신중절(낙태)을 허용했고, 그 비용을 지원해주기까지 했었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낙태가 처음 금지됐던 1953년부터 지금까지 67년 동안 계속되는 낙태죄 논란을 돌아봤습니다.
1953년 형법이 처음 범죄로 규정하면서 여성의 낙태는 전면 금지됐습니다. 낙태를 한 번이라도 한 여성은 누구나 감옥에 가도록 한 것인데요. 성폭행에 의한 임신 등 어떤 상황에서도 낙태를 할 수 없었죠. 당시에도 찬반 논쟁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급감한 우리나라가 독립국으로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구가 4,000만명 이상 있어야 한다는 출산장려론이 힘을 얻었어요.
또 아빠인 남성에 대한 책임은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낙태죄는 첫 단추부터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영역으로 확정하면서 출발한 셈이죠. 현행 형법 269조에도 '낙태를 한 부녀와 의사를 처벌한다'고 명시돼 있을 뿐, 남성에 대한 처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면서 상황은 또 달라집니다. 빈곤 문제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게 되면서 70~80년대 낙태를 독려하게 된 건데요. 국가에 의한 낙태 시술도 빈번했습니다. 정부는 임신 초기 낙태를 무료로 해주는 '월경조정술 사업'에 비용을 지원했어요. 농촌을 중심으로 영구피임 시술과 낙태 수술을 진행한 '낙태 버스'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이 확산하던 1973년에는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됩니다. 성 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혈족 간 임신, 유전적 질환이 있는 경우 임신 28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이었어요. 낙태죄는 유지하되 그 규제는 완화해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겁니다. 이 법은 큰 틀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채 인구 감소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까지 계속 적용돼 왔죠.
이후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사회 전반에 낙태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어요. 1995년에는 법에서 정해놓은 사유 외에 낙태를 했을 때는 낙태를 받은 여성은 물론, 수술을 한 의사까지 처벌을 받도록 형법이 개정됩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여성이 약물 등의 방법으로 낙태를 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형법 제269조) 또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합니다.(형법 제270조)
저출산 문제가 불거지던 2009년에는 낙태 가능 기간이 28주에서 24주로 4주 줄었습니다. 낙태가 허용되는 질환 중 의료 기술의 발달로 치료가 가능한 7가지 질환에 대해서도 낙태 허용을 폐지됐습니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처벌 조항이 헌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에서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벌보다 가볍게 제재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했죠. 착상 이후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고 낙태죄가 사라지면 생명 경시 풍토가 만연해질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죠.
하지만 7년이 지난 2019년 헌재는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2012년 결정을 뒤집고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단순하게 우선한 것으로 사실상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사실상 낙태죄 폐지라는 분석이 나왔죠. 그리고 올해 헌재의 판결에 따라 정부가 임신 1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는 형법 및 모자보건법 입법 예고안이 나온 겁니다. 이를 두고 여성단체에서 구시대적 낙태죄를 다시 되살려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일부에서도 정부가 내놓은 예고안에 반대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어요.
국회여성가족위원회 권인숙 의원은 12일 낙태 처벌 규정과 제한적 허용 규정을 모두 삭제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죠. 권 의원은 2017년 기준 전체 낙태 수술 추정 규모는 4만 9,764건으로, 이중 합법적 수술은 4,113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어요. 낙태 수술의 약 90%가 불법으로 이뤄지고 있어 이미 있으나마나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또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같은당 박주민 의원은 낙태죄 관련 조항을 전면 삭제한 형법 개정안과 임신중단 허용기준을 ‘24주 이내’로 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어요.
지난해 헌재의 결정으로 낙태죄 논쟁이 끝나나 했더니, 다시금 공방이 뜨거워지고 있는 건데요. 우리나라 인구 정책이 바뀔 때마다 낙태죄도 축소와 확대를 반복해왔잖아요. 낙태죄가 인구 정책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만은 막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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