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착취의 언어

입력
2020.10.29 15:30

ⓒ게티이미지뱅크


다음 학기에 내가 너부터 잘라줄게. 부원장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혀 꼬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순간 멈칫했지만 정신이 번쩍 들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원장이 준 폭탄주에 너무 취해 있었다. 한국어 교육원 강사들의 불만을 청취하겠다고 만든 자리였다. 강요된 폭탄주가 계속 돌았고, 어느 순간 나는 정신을 놓고 원장에게 이 월급으로 당신은 살 수 있냐며 따지고 있었다. 불만을 말하라기에 불만을 말했다. 한국어 수업 한 시간 준비하는데 평균 서너 시간이 소요됩니다. 아십니까? 교사 자비로 교자재를 사서 수업을 준비하는 게 맞습니까? 원장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져 갔다. 부원장이 다시 말했다. 너는 내가 반드시 잘라준다. 원장은 제지하지 않았다. 역시 2인자는 1인자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한다.

이튿날 새벽. 머리를 싸맸다. 이제 어디로 가지? 다른 학교에는 한국어 강사 자리가 있을까? 그러다 대학원 시절의 한 모임이 생각났다. 처음 만난 대학원생 중에서 한국어 교육 기관에서 잔뼈가 굵은 이가 모임에 앉아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이 일 할 수 있겠어? 이 일해서 받는 돈이 얼마인지는 알아? 결혼이나 할 수 있으려나 몰라? 현실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듯한 그의 말이 씁쓸하고 언짢았지만 웃어 넘겼다. 세상은 좋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좋아질 거니까. 월드컵도 열리잖아. 오 필승 코리아.

세상에. 세상이 좋아진다니. 잘못된 믿음이었어. 밀려드는 숙취와 걱정 속에서 뇌까렸다. 출근 후 부원장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렸다. 부원장은 자신도 많이 취해 기억이 안 난다며 멋쩍은 웃음으로 내 사과를 받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나는 대학이란 설국 열차의 꼬리 칸 탑승자였다. 아들이 대학에서 일한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가 물었다. 그러니까 너는 교수냐? 아니요. 그럼 시간 강사냐? 그것도 아니래요. 그럼 뭐냐? 글쎄요. 나는 ‘강사’라는 말 앞에 복잡한 수식이 붙은 내 직함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본래의 직함 앞에 뭔가 복잡하게 붙어 있다는 것은 그 직함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대학에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 그냥 선생님. 한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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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하세요? 한국어 선생님입니다. 아 영어 잘 하시겠어요. 아니요 못 해요. 저도 나중에 한국어 가르치고 싶어요. 아 그러세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국어 가르칠 수 있잖아요. 아 그렇군요. 한국어 교원 자격증 따서 자원 봉사 할래요. 아 네 저는 직업인데요.

사람들이 말하는 그 쉬운 직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교사가 된 첫 학기에 어떤 학생은 교실을 뛰쳐나가고, 어떤 학생은 항의했다.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회의회의 회의. 토론토론토론. 준비준비준비. 친절친절친절. 아이디어를 짜고, 교안을 쓰고, 작두로 종이를 썰고, 코팅기로 카드를 만들고, 교실에서 친절한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삶. 가족이 병원에 실려 가도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과 대화하는 삶.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무엇보다도 감정노동 사이를 왕복하는 시간들. 그렇게 적응했고 주당 평균 20시간, 많게는 30시간씩 강의를 했다. 시간당 급여는 적었지만 대신 많은 시간을 일하면 먹고는 살 수 있었다. 동료들은 몸이 망가지거나 마음이 망가져갔다.

세상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꼬리 칸을 벗어나고 싶었다. 학위를 취득했고 교수 자리를 놓고 하는 의자 뺏기 놀이에 끼어들었다. 그러다 운 좋게 남들보다 먼저 의자에 앉게 되었다.

그 의자에 앉아서 나는 한국어 교육에 대해 가르친다. 인간이 두 번째 언어를 어떻게 습득하는지 가르치고, 온갖 언어교수법에 대해서 가르치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와 제2언어로서의 한국어가 어떻게 다른지 가르친다. 한국어가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둥, 국위선양이라는 둥 하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이미지가 제국주의적 은유로 가득 차 있다고 가르친다. 이미 다문화 다언어 국가로 진입한 한국에서 한국어 교육은 사회 통합의 문제이며, 새롭게 한국 사회로 진입한 외국 출신의 시민들에게 반드시 제공되어야 하는 사회적 인프라라고 가르친다. 시민들을 위해 도로를 건설하는 것처럼, 한국어 교육은 그들에게 한국 사회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열변을 토한 후면, 꼭 몇몇 학생들이 한국어 교사가 되겠다면서 나를 찾아온다. 그러면 나는 학생들을 극구 말린다. 처우가 너무 안 좋아. 교육기관에서는 한국어 교사를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봐. 14시간 이상 강의를 주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야 해서 강의도 많이 안 주지. 3만원 될까 말까 하는 시급에 강의 수도 적으니 월 100만원꼴밖에 못 벌어. 좋은 한국어 교사가 만들어지려면 긴 시간이 걸리는데,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버티다 결국 다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를 경험 없는 새 교사들이 채워. 그들도 경험이 좀 쌓일 때 쯤 지쳐서 나가고, 또 같은 일이 일어나. 악순환이지. 한국어 교육의 질? 그런 것에 대해 대학은 관심 없어. 더 많은 유학생들을 들여오고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데 관심이 있지.

정부에서 하는 한국어 교육 사업도 마찬가지야. 거긴 더 열악해서 시간당 2만 8,000원을 줘. 한국어 교육을 아르바이트와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증거야.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그래도 뭔가 하고 있다고 생색만 내는 거지. 한국어 교육과 관련된 정부 부서는 교육부, 문광부, 외교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다섯 군데나 있어서 한국어 교육을 둘러싸고 서로 영역 싸움을 해. 하지만 교사 처우에 대한 관심은 없지. 엄연히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 교육부에서는 고등교육법을 들먹이며 한국어 교사는 법적 교원으로 인정하지 않아.

이 법 저 법이 그어놓은 선이 있는데, 한국어 교원은 그 어느 선 안에도 들어갈 수 없어. 한국어 교사들은 성 안으로 절대 들어가지 못하는 카프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한국 사회를 유랑하는 유랑민들이야. 그들은 분명 존재하는데, 존재한지도 너무나 오래 되었는데, 법은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거야. 그렇게 한국어 교사는 경계 밖의 존재가 됐고, 한국어를 가르치지만 목소리가 없는 존재가 됐어. 말하자면 한국어 교육 업계는 착취 공장이야. 그러니까, 한국어 교사, 하지 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손쉽게 딸 수 있다고 떠벌리는 한국어교원 자격증 장사꾼들은 믿지도 말고.

한국어 교사가 되는 것을 말리는 한국어 교육학 교수. 그렇게 학생을 돌려보내면 나는 자괴감에 빠져 울고 싶어진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착취 공장 체제의 중간 관리자다. 나는 누구인가? 착취에 복무하면서도 한 줌의 알량한 양심이나마 있는 척하는 위선자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 동료들의 착취당한 노동에 달라붙어 기생하는 존재다.

누군가는 한국어가 아름다운 언어라고 한다. 어떤 언어가 아름답다고 할 때 기실 그 뜻은 그 언어가 자신에게 제일 익숙하다는 의미에 불과할 뿐이어서 나는 그런 말에 냉소적이다. 그래도 가끔 홀리듯 한국어의 아름다움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다 그 한국어로 노동하는 한국어 교사들을 떠올린다. 제 삶을 갈아 넣는 한국어 교사들의 부당한 노동 위에 기생하는 나와, 한국의 대학과, 한국 사회를 떠올린다. 그 노동을 생각하며 홀로 묻는다. 저 언어는 과연 아름다운가.

백승주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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