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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임대 4.0'으로 저소득층 주거지 낙인 지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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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11> 공공임대와 소셜믹스,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
전세대란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안정망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직은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절대 물량도 부족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가진 중산층에게는 접근이 불가능해서다. 설령 입주자격이 주어진다 해도 식구가 많으면 너무 좁아 살기가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대도시 집중현상이 강화되고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주택가격과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주거불안은 사회통합을 어렵게 하는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있을까. 공공임대 정책 측면에서 고민해보자.
우리나라 공공임대 재고는 2018년 약 157만호로 전체 주택 수 2,082만호(신주택보급율통계)의 7.5% 수준이다. 전체 주택 수를 거처 기준이 아닌 소유권 단위로 하면 1,763만채(주택총조사)로 재고율이 8.9%로 높아지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0위 정도로 비율이 적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다. 우선 우리나라 전체 주택재고가 부족해 공공임대재고율이 세계 10위라 해도 절대량이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공공임대재고비율이 높은 북유럽국가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천인당 주택수’는 100채 정도 부족하다. 또한 우리나라 공공임대재고 통계에는 5년 임대나 10년 임대처럼 일정기간 임대 후 분양하는 27만호도 포함된다. 안정적인 주거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공공임대만 따지면 실제 비율은 더 낮다고 봐야 한다.
주거면적 측면까지 고려하면 현실적인 재고 부족은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 공공임대 재고는 주로 60㎡미만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정부의 재정지원과 관계가 깊은데 60㎡을 초과하면 정부로부터 지원이 대폭 축소되므로 공공사업자는 대부분 59㎡를 넘지 않도록 계획을 한다. 또한 정부의 공공임대 목표 물량은 호수만 고려할 뿐, 면적에 대한 것은 고려하지 않으므로 사업자로서는 소형공공임대를 공급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다.
결과적으로 중소형 중심의 공급으로 인해 공공임대 과밀주거현상이 일반 임대주택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17년 주거실태조사를 분석해보면 장기공공임대주택의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비율이 15.5%로 민간임대 1.8%의 9배에 달한다. 국민임대 입주대상인 소득 4분위 이하만 보면 18.7%로 더 높아진다.
요약하면,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은 호수 측면에서나 면적수준에서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평가할 수 있다. OECD평균 재고율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전반적인 재고 부족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체감할 수 있다. 많은 저소득층이 반지하나 옥탑방,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공공임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직도 ‘저소득층’이다. 물론 그 동안 입주대상자의 소득수준을 상향시키고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 사회적으로 보다 긍정적인 계층까지 확대해왔지만 말이다. 소위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을 방지하고자 공공에서도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공공임대와 일반분양을 한 단지 안에 넣어 자연스런 교류가 일어나도록 계획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임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강하고 새로운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오는 것을 동네 주민들은 싫어한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복지 선진국이라는 북유럽국가들은 집 없는 국민 대부분이 혜택을 볼 수 있는 ‘대중모형’ 사회주택정책으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 노력해왔다. 네덜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사회주택(social rental homes) 비율이 32%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자가율이 60%이니 민간임대비율은 8% 정도다. 그러니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 공공임대에 거주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타지로 진학하거나 직장을 잡았을 때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공공임대에 거주할 수 있고 그것은 사회적 낙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아주 일반적인 상황이니까. 덴마크 경우도 공공임대비율이 21%로 매우 높으며 입주우선권은 소득이나 대기순서 등을 고려하지만 입주자격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덴마크의 경우에도 공공임대에 대해 저소득층 주거지라는 딱지를 붙이기 어렵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위치나 외관, 품질, 면적으로 봐서는 공공임대인지 민간임대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규모 단지형으로 공급하거나 건물동별로 구분하여서 공공임대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물론 블록형 아파트가 주요 유형인 유럽이라서 우리와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나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우리처럼 대놓고 ‘나는 공공임대’라고 마크를 붙이는 경우는 없다. 브랜드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 때문일까? 공공임대 사업자들도 다양한 브랜드를 만들어서 본인들이 공급하는 주택이 얼마나 좋은지 모든 국민과 주민에게 알리고자 한다. 좋은 뜻을 담고 있지만, 결국 ‘래미안, 자이, 푸르지오’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할 뿐이다.
공공임대 면적도 소셜믹스를 방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한 단지 안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분양주택은 85㎡내외의 중대형인 반면, 공공임대는 40~60㎡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같은 단지에 살고 있으니 아이들도 같은 학교에 다닐 것이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갈 수도 있다. 과연 공공임대 사는 아이가 분양주택사는 친구들을 스스럼없이 집에 초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한 단지 안에 섞어 놓더라도 이렇게 면적 차이가 나면 소셜믹스는 달성하기 어렵다.
1989년 경제호황으로 주택가격과 전세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세입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엄청난 고통을 겪을 때, 최저소득층을 위한 영구임대를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의 시작을 알리는 영구임대는 오늘날까지도 극빈층을 위한 마지막 주거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IMF외환위기를 맞아 서민 주거불안이 심화되면서 두 번째 버전인 국민임대가 1999년 탄생하였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국민임대는 우리나라 공공임대 재고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가장 일반적인 임대유형으로 자리잡았다. 2013년부터 추진한 행복주택은 세번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바, 가장 중요한 차별점은 기존의 소득 4분위를 넘어 일부 5~6분위도 입주자격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30여년간 이어져온 우리나라 공공임대정책의 큰 흐름은 입주대상의 확대와 품질향상으로 요약되는데, 이제는 소셜믹스도 고려한 4.0버전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4분위 이하 저소득층이나 청년, 신혼부부, 노인 등 특정 계층만을 위한 공공임대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공공임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공공임대의 부정적 인식도 완화되고 민간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주거불안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공공임대 4.0시대’는 재고만 늘린다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유럽처럼 재고가 20% 수준에 이른다 해도 여전히 너무 좁은 주택에 저소득층만 입주시킨다면 사회적 낙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지금처럼 공공사업자의 브랜드를 붙여서 스스로 공공임대임을 각인시켜서도 안 된다. 공공임대와 일반주택을 혼합한다면 동별로가 아니라 호별로 혼합하여 주소를 가지고는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201호는 민간주택, 203호는 공공임대일 수 있다. 주지하듯이 민간주택시장은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물론 무턱대고 입주자격을 ‘누구나’로 확대하거나 면적을 ‘중대형’으로 할 수는 없다. 지역의 형편에 맞게 저소득층의 주거상황에 맞게 그 비율을 조절해가면서 점차적으로 사회적 낙인을 없애는 섬세한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좋은 위치에 저렴하고 질 좋으면서 넓은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면 누구나 신청할 것이니 어떤 기준으로 입주자를 선정할 것인가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와 같이 특정 계층만을 타깃으로 하는 공공임대는 사회적 낙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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