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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감소·고령화 직면한 '빗장도시' 서울... 천국과 지옥 갈림길

입력
2020.11.07 04:30
수정
2020.11.07 15:56
12면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 단위로 토요일 연재합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종합무역센터에서 바라본 서울의 전경. 서울시 제공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종합무역센터에서 바라본 서울의 전경. 서울시 제공

<11>서울의 미래,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도시의 빗장은 출퇴근 때 열린다. 오전 9시 이전과 오후 6시 이후 얼마간의 시간에만 출입이 허용된다. 입·출구 앞에 서성이다 빗장이 풀리면 일개미처럼 무표정하게 그들만의 목적지로 향한다. 빗장은 밤이면 완벽히 닫힌다. 주간통행증으로 도시에서의 밤을 온전히 보낼 수는 없다. 외부인에겐 잔류가 허용되지 않는다. 대신 그 밤은 부자로 불리는 거주민의 몫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며 권력과 계급을 칭송한다.

그들끼리의 ‘이너서클’은 장막을 한층 공고히 세워낼 게임원칙을 결정하고 실행한다. 숫자는 웬만하면 줄인다. 희소해야 가치가 높아지는 법 아닌가. 자본이라 불리는 입장거주료가 모자라면 가차없이 추방된다. 대낮 일자리만이 빗장 통과의 수단일 뿐, 한번 쫓겨나면 성벽을 넘어설 사다리는 없다. 거대한 콘크리트 회색벽은 매년 높아지고 단단해진다. 세간에선 이를 ‘빗장도시(Gated city)’라 부른다. 그리고 이 도시는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로 더 유명하다.

2020년 집값 논쟁의 중심에 선 서울의 내밀한 속살이다. 어디선가 본듯한 영화 장면처럼 느껴지나 안타깝게도 영화 속 이야기는 아니다. 빗장도시는 인구 문제의 축소판이다. 정반대의 과소농촌이 만든 한계공간과 달리 일극 집중에 따른 도시 차원의 또 다른 갈등문제를 내포한다. 욕구는 많은데 해소는 부족한 과수요에 따른 갈등 증폭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통제의 빗장은 외부 접근과 교류를 엄격히 차단해 스스로의 희소성을 가격에 반영한다. 못 버티면 못 살아내는 빗장도시 특유의 생존방식이다. 그럼에도 서울을 떠날 수는 없다. 바늘구멍보다 좁아도 서울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 교육과 취업은 물론 유희수단과 자산증식마저 빗장 안에서 가능하니 말이다. 그러니 쫓아낼수록 다가서려는 수많은 아이러니가 빗장도시에선 통한다. 앞으로는 어떨까. 빗장도시는 지속가능할까. 서울이 계속해 건재할지 짚어볼 순간이다.

자원집적 클러스터가 떠받친 서울 경제학

서울이란 공간은 수많은 재료가 뒤섞여 탄생한 대표적인 집적지다. 많은 걸 가졌고 또 더 가질 태세다. 인구도 돈도 기회도 서울만큼 위력적인 곳은 없다. 뭐든 끌어당기니 ‘서울 블랙홀’로 불어도 이상할 게 없다.

물론 ‘서울 공화국’ 현상을 무조건 탓할 순 없다. 자원 집적에 따른 효과도 적지 않다. 금융이 여의도에, 벤처가 테헤란로에 집중되는 것처럼 말이다. 생태계가 모이면 플랫폼은 강화되는 법이다. 15~24세 청년인구가 지방에서 서울로 향하는 것도 그런 이치다. 서울이 제공하는 교육과 취업의 연계고리가 비교 우위에 있어서다. 좋은 일자리와 직결되는 스펙·평판을 서울이 독과점한 결과다.

심지어 이젠 고령인구도 서울살이를 꿈꾼다. 나이가 들수록 ‘위험자산→안전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꾸듯 고령인구의 사회 이동은 제한된다는 게 라이프사이클 이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통하진 않는다. 2000년대 이후 서울 전입을 택한 지방 고령자는 증가세다. 인구센서스(2015년)를 보면 서울 인구(전입-전출)는 8만7,831명이 줄었으나, 70세 이상은 되레 27만5,974명이 전입했다. 서울의 더 나은 의료·간병을 기대한 선택이다.

이로 인해 서울은 몸집이 불어나고 있다. 땅덩이는 그대로지만 생활권이 수도권 확대 중이다. 광역교통에 이어 광역주거로 서울의 베드타운화를 실현하며 역내의 생산·소비·투자의 다양한 분업구조를 떠받친다. 돈은 서울에서 벌지만, 잠은 수도권이 맡는다. 신도시 중 직주일치형이 거의 없는 건 상징적이다. 서울발 산업·고용 등 파생효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높아질까 vs 무너질까’ 고빗사위의 빗장도시

서울이 쌓아 올린 성벽은 견고하고 육중하다. 전세계 수도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유명기업 본사의 70~80%는 물론, 신규취업 60~70%도 서울에서 이뤄진다. 공공기관(117개), 대학(48개), 요양기관(2만2,683개), 문화시설(111개)이 서울에 밀집했다(2019년). ‘스세권’으로 불리며 부동산값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스타벅스는 서울(507개)이 전국(1,354개)의 38%를 가졌다. 국토의 0.6%뿐인 서울이 엄청난 지역내총샌상(GRDP·423조원, 22%)를 갖는 배경이다(2018년).

서울아파트는 시가총액이 2014년 626조원에서 2019년 10월 기준 1,233조원으로 뛰었다. 수도권까지 포함하면 집중도는 더 높아진다. GRDP의 52%(990조원)를 책임져 수도권 인구비중(52%)과 정확히 일치한다. 2명 중 1명이 사는 12%의 땅덩이가 만들어낸 성과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빗장도시 서울은 중대한 도전 앞에 섰다. 반발과 균열이 엿보인다. 인구감소가 상징적이다. ‘천만 인구’는 일찌감치 깨졌다. 아직은 외압적인 추방이지만, 자발적인 탈출로 이어지면 전출 행렬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빗장 인구의 보유자원을 받아줄 후속적인 손바뀜이 끊길 때가 그렇다. ‘더 많이 빨리 크게’의 향상심이 줄어든 젊은 세대는 곧 결심을 내릴 태세다. 서울형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은 충분히 이들을 옥죈다. 바통연결이 없는 한 기성·기득세력의 독야청청은 기대할 수 없다.

서울의 고령화와 한계화는 불가피하다. 2021년부터 베이비부머가 연평균 70만~80만명이 고령인구로 들어서는 반면, 생산가능인구 진입 청년(15세~)은 30만~40만명대로 떨어진다. 이것만 봐도 빗장도시의 자원재조정은 자연스럽다. 빗장을 열든 성벽을 낮추든 수도 서울의 지속가능성은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서울의 미래는 '디스토피아'

빗장도시 서울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꽤 닮았다. 성벽 안팎의 금권(金權) 여부로 소수의 빗장인구와 다수의 추방인구로 엇갈린다. 빗장 안쪽의 폭탄 돌리기는 계속되기 어렵다.

소설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약 ‘소마’처럼, 월급과 일자리 탓에 시간은 벌 수 있어도 조건부일 수밖에 없다. 소마는 동경이 아닌 경계대상이란 걸 젊은 세대는 더 넓어지고 높아지는 빗장을 보며 깨닫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반발과 포기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미 ‘취업→연애→결혼→출산→자가(自家)’의 인생 과제를 삐딱하게(?) 보는 트렌드가 안착됐다. 기괴한 빗장도시의 독특한 폭주기행에 동의하지 않는 달라진 청년등장이라 할 수 있다.

더 이상의 상황 방치는 곤란하다. 지금이 미래 서울을 둘러싼 ‘디스토피아 vs 유토피아’의 갈림길이다. 중세유럽의 인클로저 운동처럼 더 많은 양을 갖겠다고 사람을 내모는 우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토마스 모어의 일갈을 빗장도시는 귀담아들을 때다. 양을 키워도 먹고 입어줄 이들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무엇이든 손쉽게 오가야 건강한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 빗장은 뽑고 청년이 웃는 공간에서 유토피아는 실현된다. 빼앗고 내모는데 웃어줄 후속세대는 없다.

이대로면 서울의 앞날은 디스토피아다. 빗장 안에선 이전투구가, 빗장 밖에선 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일 따름이다. 대타협적인 빗장 파기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탈경(脫京)사회가 심화되면 빗장도시는 종국엔 성글고 황량해질 수밖에 없다.

추방인구가 스스로 서울 빗장을 열어 젖히기란 어렵다. 빗장내부의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가 먼저다. 방치의 끝은 조용하되 치명적인 복수의 부메랑을 부를 뿐이다. 빗장을 넘나드는 출퇴근의 피곤축적과 추방청년의 희망포기는 비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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