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여성정책을 진보라 할 수 있을까

입력
2020.10.27 18:00
26면

한국 여성정책 진보정치와 함께 성장
현 정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못미쳐
진보정치 계보 잇는 당당한 정부되길


보건복지부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규탄하는 기본소득당과 모두의 페미니즘 기자회견. 연합뉴스

보건복지부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규탄하는 기본소득당과 모두의 페미니즘 기자회견. 연합뉴스


여성정책이 특정 정당과 친화성이 있다는 이론은 없다. 특정 정치이념과 더 가깝다는 주장도 근거가 분명하진 않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 기본적 시민권인 투표권조차 뒤늦게 얻게 된 집단으로서 여성은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덕분에 여성의 지위는 한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여성운동은 정치적 실천이며, 여성정책은 그런 여성운동이 피워낸 꽃이다.

사회를 변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바꿔 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소위 ‘진보’ 정치는 여성운동 세력에서 환영받아 왔다. 많은 여성들이 진보정당의 구성원이 되었고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해 싸웠다. 덕분에 진보정치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여성들은 그런 성과를 함께 나눴다. 한국의 정치는 이런 진보정치와 여성운동 사이의 연대와 협력이 거둔 결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일제 강점기 근우회와 1980년대 평우회를 거쳐 민주화운동의 주요 세력으로 함께 싸웠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열매를 함께 거뒀다. 여성운동의 의제는 여성정책이 되고 여성과 남성의 삶을 개선해 가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의 여성정책이 가장 빛났던 시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대통령직속여성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 여성부가 되고 여성가족부로 성장했고,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정폭력특별법과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었다. 가장 강력했던 가부장적 관행과 제도에 균열을 내고 해체시킨 실천들이다. 여성총리가 탄생하고 대통령과 총리, 여성가족부 장관이 힘을 합해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배정했다.


2001년 여성지도자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격려하는 김대중 대통령 내외.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1년 여성지도자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격려하는 김대중 대통령 내외. 한국일보 자료사진


안타깝게도 이런 개혁의 드라마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보수정부가 들어서고 여성정책의 많은 것들이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성정책 거버넌스는 사라지고 여성은 정책의 주체에서 대상으로 축소되었다. 만들어진 법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오래된 악법이 부활했다. 성매매방지법이 사문화되고 사문화됐던 낙태죄 처벌규정이 되살아났다.

문재인 정부는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진보정치의 회복으로 보였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섰던 여성들은 문재인 정부 아래 낡은 악법을 청산하고 새로운 성평등의 시대를 열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2017년 5월 품었던 그 꿈들이 3년 반이 지난 지금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를 묻기는 민망하다. 오히려 헌법불일치 판정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줄 알았던 낙태죄 처벌 규정이 버젓이 되살아나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수정이란 이름으로 법제화되고 있다.

그리고 왜, 어떻게 해서 이런 전복적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 한다. 일부 언론이 특정 종교계 지도자가 청와대를 방문한 후 결론이 달라졌다고 보도했지만,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소식이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국가이고, 다양한 종교계 인사들조차 합의된 의견을 내지 않고 있으며, 종교계 안에서도 신도들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여성계는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고, 정부는 낙태죄 조항을 붙잡고 있다.

한국의 정치사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을 잇는 진보정치의 계보에 현 정부가 이름을 올리고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정책의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갖는 진보적 성취는 무엇인가? 수십 년이 지난 먼 훗날 우리의 후배들은 문재인 정부의 여성정책을 진보정치의 성과로 볼까 아니면 후퇴로 볼까? 지금으로서는 비관적인 쪽이다. 역사 앞에 당당한 정부가 되길 바란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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