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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피로감' 드러난 북한 뉴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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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가 공동으로 뜨거운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알아본다.
북한 관련 초대형 이슈가 잇따라 터졌다. 지난달 24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북한군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하며 군사적 긴장을 높였던 지난 10일 ‘북한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이 그것이다. 몇 년 전 같으면 그중 하나만 벌어져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남ㆍ북 평화체계 정착에 치명타를 입힐 만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국내 여론의 파문은 예상보다 크지 않다. 서해 공무원 피격의 정부 사후 조치에 대한 유족의 항의와 유엔 등 국제 사회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이명박 정부가 중단한 금강산 관광이 아직 멈춰있다. 2016년 2월 북한이 ICBM 개발을 위한 우주발사체인 ‘광명성 4호’를 발사한 직후 박근혜 정부가 대응책으로 선택한 개성공단 가동 중단 역시 좀처럼 원상복구 되지 않았다. 이런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올해 두 사건의 경우 정부의 대응은 물론 우리 국민들의 생각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ISDS)가 공동으로 이런 차이의 원인이 무엇인지, 관련 뉴스와 그 댓글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살펴봤다. ISDS는 주요 포털 네이버ㆍ다음ㆍ네이트의 뉴스 서비스에 올라온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관련 뉴스 댓글(2020년 6월 16~22일) 총 25만4,523건과 ‘공무원 피격’ 관련 뉴스 댓글( 2020년 9월 24~30일) 총 29만1,188건, ’북한군 열병식’ 관련 뉴스 댓글(2020년 10월 10~16일) 총 7만7,113건을 데이터로 사용했다.
‘공무원 피격’과 ‘북한 열병식’을 보도한 기사에 달린 포털 댓글을 분석하면 빈도수가 높은 공통 키워드가 18개 등장한다. 그 중 ‘북한’이 공통 1위인 점은 북한 관련 뉴스라는 점에서 당연해 보인다. 이를 포함해 관련 단어가 남한과 북한, 어느 곳과 연관된 단어인가를 살펴봤다. 북한 연관어는 ‘북한’ ‘김정은’ ‘니들’ 등 3개에 불과했다. 반면 남한 연관어는 ‘국민’ ‘대통령’ ‘문재인’ 등 10개로 훨씬 많았고, 중립적 연관어는 ‘사람’ ‘중국’ ‘미국’ ‘나라’ ‘정권’ 등 5개였다. 북한발 뉴스임에도 국민의 관심은 우리 정부의 책임이나 국민 안전, 미국ㆍ중국 등 주변국의 움직임에 더 쏠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보다는 우리 정부의 대응과 그 문제점, 한반도 정세에 영향력을 미칠 중국ㆍ미국의 움직임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와 이질적인 사회여서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심리적 거리감’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과거 북한 관련 뉴스 댓글에 단골로 등장하던 ‘빨갱이’가 공무원 피격 뉴스 댓글에서는 빈도수 57위에 그쳤고, 북한 열병식에서는 32위였다. 남ㆍ북이 같은 민족이란 인식이나 통일에 대한 생각이 담긴 단어의 출현 빈도도 하위권이었다. 공무원 피격 뉴스 댓글에서 ‘종전선언’ 14위, ‘통일’ 91위, ‘한반도’ 144위, ‘남북’ 174위에 그쳤고, ‘민족’은 50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북한 열병식 댓글에서는 ‘종전선언’ 12위, ‘통일’ 19위, ‘한반도‘ 36위, ‘남북’ 105위, ‘민족’ 148위였다.
이런 현상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나 2016년 광명성 4호 발사 당시 국내 언론 보도 태도와 비교하면 적지 않은 변화이다. 당시 두 사건 발생 이후 한 달간 보도된 기사의 키워드를 분석하면 북한에 관한 관심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금강산 피격의 경우 ‘금강산’ ‘남북 관계’가 1ㆍ3위를 차지한 것을 필두로 빈도수 상위 28개 키워드 중 9개가 북한 관련 단어였으며, 북한의 인권상황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광명성 4호 발사 때에는 ‘대북제재’ ‘개성공단’이 4ㆍ5위를 차지했으며, 상위 25개 키워드 중 ‘핵무기’ ‘비핵화’ 등 11개가 북한 관련 단어였다.
조사를 진행한 배영 ISDS 부소장(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은 “과거 북한 관련 뉴스 댓글에서 종종 드러나던 분노 등 감정적 단어가 많이 사라졌음이 눈에 띈다”며 “국민들 사이에서 북한 문제가 과거 이념적, 감성적 차원에서 현실적, 이성적, 국제관계적 맥락 속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ㆍ북 관계 개선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냉담과 무관심으로 변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현 정부 출범 이후 북한 관련 기사의 생산 추이를 살펴봤다. 북한 뉴스는 출범 초기 급상승해 2017년 9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월 2만건을 넘은 뒤 감소했다. 이후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2만5,000건을 넘어서 정점을 찍었으나, 남북 관계 진전이 더뎌지며 빠르게 관심이 줄어들어 5,000건 이하로 감소했다. 올해의 경우 6월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사건 당시 반짝 상승했지만 1만5,000건에도 미치지 못했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일관성 있게 진행되지 못하고,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거나 돌발적 사건으로 냉ㆍ온탕을 오가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국민의 피로가 누적돼 냉담과 무관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는 정부의 한반도 평화체계 구축 집념과 국민들의 무관심이 만든 균형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어 민심의 변화에 따라 쉽게 무너질 수 있다. 특히 북한 정권의 호전성과 인권 경시 태도는 이런 균형을 파괴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시한폭탄’이다.
올해 발생한 북한 관련 3대 뉴스는 단연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공무원 피격, 북한군 열병식이다. 이 세 이슈를 보도한 뉴스에 달린 댓글의 비율을 계산해 이슈별 국민들의 관심도를 간접 측정했다. 댓글 개수는 해당 뉴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도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지만, 이슈별 기사 개수가 다르기 때문에 개수만으로는 각 이슈의 관심도를 비교하기 어렵다. 이를 고려해 특정 기간 생산된 북한 관련 기사의 개수와 댓글 개수의 상대적 비율을 통해 관심의 정도를 측정했다.
고성능 미사일을 과시한 열병식은 남한 전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안보 사안이며, 연락사무소 폭파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 등의 밥줄이 달린 경제 이슈이다. 반면 공무원 피격은 참혹한 비극이지만, 독자에게 직접 위협이 되는 사안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독자들이 가장 댓글을 많이 단 이슈는 공무원 피격이었고, 연락사무소에 이어 열병식은 최하위였다.
배 부소장은 “폭파장면이나 열병식에 출현한 무기들이 시각적으로 위협적이었지만 당장의 위험이라 여겨지지 않았던 반면, 해수부 공무원 피격의 사례는 시신의 훼손 등 보도 내용에 대한 충격과 함께 정부의 모호한 태도를 접하며 분노가 가중된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 관련 뉴스 댓글 분석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인권에 대한 남한과 북한의 감수성 격차가 향후 남북관계 진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임을 보여준다.
(*뉴스 기사 건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 서비스를 이용하여 추출했고, 뉴스댓글 관련 데이터는 닐슨코리안클릭의 버즈워드를 활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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