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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양조장 위해…아들은 교직, 손자는 대기업 박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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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근남면에 자리한 울진술도가. 1932년 문을 연 뒤 소주가 대중화되고 맥주에 이어 사케, 고량주, 보드카 등 세계 각국의 술 '홍수' 속에서도 한결같은 맛으로, 한 세기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조장이다.
울진술도가는 처음 양조장을 시작한 고 홍종률씨에 이어 맏아들 순도씨, 다시 셋째 아들 순영씨를 거쳐 손자 시표씨까지 3대에 걸쳐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인구 5만에 불과한 소읍에서 한 병 1,300원짜리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번듯한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울진술도가의 시작은 1932년 울진군 매화면 오산리에 문을 연 '오산양조장'이다. 홍종률씨는 친지의 투자를 받아 그의 고향에 양조장을 차렸다.
창업주인 종률씨는 6ㆍ25전쟁 때 잠시 피난을 떠난 일 말고는 줄곧 양조장을 지켰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5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도와 양조장서 일하던 맏아들 순도씨가 새 주인이 됐다. 그는 양조장 간판을 '매화양조장'으로 바꿔 달았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뜬 종률씨의 셋째 아들인 순영씨가 또 하나의 양조장을 열었다. 그는 지금의 울진술도가가 있는 근남면 노음리 '근남양조장'을 인수해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순영씨는 35세의 젊은 나이에 안정된 교직 생활을 접고 가진 돈을 몽땅 털어 집 근처 근남양조장을 샀다.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탄탄한 직장을 왜 관두느냐"며 말렸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영향이 컸다.
순영씨는 "6.25 전쟁으로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인데도 양조장 덕분에 형제들이 대학에 갈 정도로 살림이 넉넉했다"며 "워낙 어릴 때부터 양조장일을 거들며 기술을 익힌 터라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집안에 양조장이 두 개가 됐지만,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읍ㆍ면 단위로 양조장이 있었고, 암암리에 담합해 각자 연고지에서 막걸리를 팔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맏아들인 순도씨도 건강이 좋지 않았다. 결국 동생에게 매화양조장을 넘겼다. 순영씨는 아버지의 양조장을 자연스럽게 물려 받게 됐다.
아버지 양조장을 맡게 된 순영씨는 새로운 목표 하나를 세웠다. 울진 지역의 모든 양조장을 모두 갖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막걸리를 만들기만 해도 어느정도 팔려나가던 시절이라, 양조장을 내놓는 주인은 없었다. 돈이 있어도 양조장을 살 수 없었다.
대신 순영씨는 이웃 양조장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며 일을 도왔다. 교직 생활 때부터 몸에 밴 성실함이 무기였다. 그 집 직원들보다도 허드렛일을 더해주는 날도 많았다. 이렇게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급전이 필요한 주인들은 '성실한 순영씨'를 믿고 지분을 내놓거나 양조장을 넘겼다. 하나둘씩 양조장을 인수한 그는 1990년 울진지역 양조장 14개를 사들였다. 간판도 ‘북부합동양조장’으로 바꿔 달았다. 경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울진의 양조장을 모두 합쳤다는 뜻이다.
양조장 몸집을 키운 순영씨는 맛 좋은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다.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가 해마다 두 차례씩 여는 양조기술교육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가 하면, ‘맛 좋다’고 소문난 전국의 양조장이라는 양조장은 다 찾아 다녔다.
동시에 그는 좋은 기술자를 찾는 데에도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순영씨는 "막걸리 잘 만드는 기술자 한 명을 모시기 위해 한밤에 2시간도 더 걸리는 비포장길을 50번 넘게 달려가 애원한 적도 있다"며 "'삼고초려' 뒷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울진술도가의 막걸리는 양조장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맛도 깊다. 시중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막걸리와 다르다. 우선 알코올 도수가 7도다. 대게 6도를 넘지 않는 여느 막걸리보다 많게는 2도 정도 차이가 난다. 이는 도수가 높은 증류주처럼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장시간 숙성하기 때문이다. 이곳 막걸리는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이 15일이다. 전국의 탁주 양조장 중 숙성 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다.
'달콤한 술'로 통칭되는 막걸리지만 그렇게 달지 않은 것도 울진술도가 막걸리 특징. 감미료를 아주 적게 넣기 때문이다. 다른 막걸리보다 덜 달아 뒷맛이 깔끔하다. 도수는 높은 편이나 은은하게 올라오는 취기도 이 막걸리의 매력이다.
막걸리는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술이다. 길어야 보름이다. 오죽하면 ‘오늘 밤에 빚어 다음 날 새벽 닭이 울기 전 익는다’는 말이 있을까. 고두밥을 지어 누룩과 섞어 두기만 하면 돼 만들기도 쉽고, 재료도 쌀과 누룩, 물이 전부다.
울진술도가는 세월과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맛 좋은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여러 재료를 바꿔가며 썼다. 하지만 물만큼은 그대로다. 68년 전 근남양조장을 지을 때 뚫은 관정 지하수를 아직도 쓴다. 지난 2014년 자동화 시설로 새로 지은 연면적 660㎡ 규모의 3층짜리 제2공장을 완공한 뒤에도 관을 연결해 이전 양조장의 물을 끌어다 쓰고 있다.
울진술도가가 지하수를 고집하는 까닭은 양조장 바로 옆을 지나는 왕피천에 있다. 이 곳 지하수의 원천은 울진의 젖줄이자 1급수인 왕피천이다. 울진읍을 가로지르는 왕피천은 1급수에만 사는 버들치를 비롯해 은어, 연어가 소상하는 회귀성 어족의 산란 터다. 또 금강송으로 유명한 울진지역 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 산양의 생명수이기도 하다.
순영씨는 “68년이 지나도 지하수가 마르지 않는 것도 신기한 일”이라며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모를까 다른 건 다 바꿔도 절대 물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양조장에 이어 울진 지역 술도가를 모두 품은 순영씨도 세월만큼은 붙잡을 수 없었다. 2011년 심장질환으로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은 그는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에 세 명의 자녀 중 막내인 시표씨에게 양조장을 넘겼다.
유학을 다녀와 대기업 해외영업부서에서 일하던 그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사표를 냈다. 시표씨는 "할아버지와 따로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가 결국에는 가업을 잇게 된 것처럼 양조장을 맡는 일이 운명이라 생각했다"며 "무역 업무 경험을 살려 막걸리를 수출해보자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홍시표 대표는 아버지가 닦아 놓은 막걸리 제조 기술에 현대화를 접목, 울진술도가의 역사를 쓰고 있다.
그는 대표에 오르고 나서 양조장을 홍보하는 인터넷 사이트부터 열었다. 울진 북부합동양조장이라는 이름을 울진술도가로 고친 것 또한 홍시표씨의 작품이다.
홍 대표는 기존 양조장 바로 옆에 자동화 설비를 도입, 보다 위생적이고 편리한 현대식 양조장을 지었다. 재료를 옮기는 과정부터 적당한 발효 온도를 유지하는 것과 마무리 포장까지 사람 손이 필요 없도록 했다. 건물 외관도 독일의 유명 양조장을 본떠 붉은 벽돌로 완성했다.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 준 순영씨는 175㎡ 면적의 옛 양조장을 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막걸리를 만들지 않지만, 울진술도가의 88년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역사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순영씨는 매일 새벽 출근해 당장 술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쓸고 닦기를 반복한다. 지금도 물이 솟는 관정을 비롯해 발효 때 쓰이는 스테인리스 통, 사무를 보던 작은 방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홍 대표는 옛 양조장을 카페나 박물관으로 고쳐 울진술도가 홍보에 이용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 88년의 시간 못지않게 향후 100년 동안 양조장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지금은 울진지역에만 막걸리를 팔고 있지만 인터넷 판매도 준비 중이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보다 많은 애주가들에게 사랑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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