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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노려 감사자료 444건 폐기하고 발뺌한 산업부

입력
2020.10.20 17:00
수정
2020.10.20 19:2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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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회의 후 관련 폴더 122개 통째로 삭제
감사원 "경징계 이상 징계 처분하라"

20일 국회에 제출된 감사원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 점검에 관한 감사결과보고서.연합뉴스

20일 국회에 제출된 감사원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 점검에 관한 감사결과보고서.연합뉴스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책 회의’를 연 뒤 곧바로 '청와대(BH) 보고 문건' 등 민감한 자료를 조직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공개된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산업부는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한 사실을 인지한 2019년 11월 ‘대책 회의’를 열었다. 당시 감사원이 산업부에 요구한 자료는 ‘월성1호기와 관련된 최근 3년간 내부 보고 자료’ ‘BH 협의 및 보고 자료’ 등이었다. 월성1호기 조기 폐쇄 업무를 총괄했던 산업부 간부 A씨는 회의에서 직원 B씨 등에게 '사무실 컴퓨터 뿐 아니라, 이메일ㆍ휴대폰 등 모든 매체에 저장된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자료 인멸은 '은밀히' 이뤄졌다. 감사원이 자료 제출을 거듭 요구하자, B씨는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 심야에 사무실로 들어가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월성1호기 관련 자료 폴더 122개를 삭제했다.

삭제 작업은 2시간에 걸쳐 치밀하게 이뤄졌다. 삭제 파일이 복구될 경우를 대비해 B씨는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을 수정ㆍ저장한 뒤 삭제하기 시작했다. 삭제할 자료가 방대하다는 걸 알고는 아예 폴더 자체를 삭제하는 방법을 썼다. 감사원은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122개의 폴더를 복구했다. 그러나 폴더에 담겨 있던 문건 444개 중 120개는 복구되지 않았다. B씨가 삭제한 파일 중엔 ‘장관님 지시 사항 조치계획(안)’ ‘에너지전환 보완대책 추진현황 및 향후 추진일정(BH송부)’ 등 문서가 포함돼 있었다.

고의로 자료를 누락시키거나 삭제했음에도, 산업부는 감사원의 거듭되는 자료제출 요구에 거짓 대응으로 일관했다.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등은 한수원이 추진하는 사안이라 주로 구두로 보고가 이뤄졌다’ ‘요청 자료를 최대한 성실히 제공하려고 노력했으나, 다소 미치지 못해 양해 바란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감사원은 월성1호기 관련 자료를 무단 삭제하도록 지시하고, 지시를 이행함으로써 감사를 방해한 A씨와 B씨에 대해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경징계 이상의 징계 처분할 것을 산업부에 요구했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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