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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양성과 항일독립운동 발자취 곳곳에'...공주 근대문화유산탐방길

입력
2020.11.20 01:00
21면

공주 구도심 근대문화유산탐방길
중동성당서 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까지
유관순열사와 인연 영명중고·중앙공원도
인근 하숙마을에선 과거 하숙문화 추억도


공주 근대문화유산탐방길 출발점인 중동성당. 붉은 벽돌의 고딕식 건물로 국고개 높은 언덕에 자리한 장소성을 살리기 위해 종탑의 전면을 강조해 지었다.

공주 근대문화유산탐방길 출발점인 중동성당. 붉은 벽돌의 고딕식 건물로 국고개 높은 언덕에 자리한 장소성을 살리기 위해 종탑의 전면을 강조해 지었다.


충남 공주는 일반적으로 옛 백제의 수도인 역사문화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무령왕릉을 비롯한 송산리 고분군과 공산성, 무령왕릉 출토유물이 전시된 국립공주박물관 등을 찾아 찬란했던 백제문화를 접한다. 그러나 공주는 과거 역사유적과 함께 행정도시, 교육도시로 문화의 향기를 머금고 있는 고장이다.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옮겨가기까지 도청소재지였고 개화기부터 다양한 학교가 설립되어 충남과 대전지역 교육을 선도해 왔다. 공주사범대(현 공주대)와 공주교육대학이 있어 외지에서 유학을 와서 하숙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금강 남쪽에 자리잡은 공주 구도심거리는 근ㆍ현대 공주시민들의 삶을 간직한 추억이 솟아나는 곳들이 많다. 길마다 많은 얘깃거리를 담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근대문화유산탐방길 조성사업을 주관한 임재일 ‘사회문화연구소 오늘’ 소장은 “공주는 아직도 수줍은 색시처럼 자신의 가능성을 전부 보여주지 못한 채 가려져 있는 도시”라고 진단했다.

공주 구도심을 가로지르는 근대문화유산탐방길은 공주시민들이 근ㆍ현대 격동기를 지나며 인재를 양성하고 일제에 항거해 온 흔적들을 보여준다. 탐방로에 자리한 종교시설과 학교들은 근대교육의 산실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주도한 애국자들을 길러냈다.

근대문화유산 탐방길 출발은 공주 최초의 천주교성당인 중동성당이다. 무령로에서 언덕배기 성당길로 들어서면 길 오른편에 지도와 함께 커다란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중동성당의 건축과정과 의미를 담은 타일 벽화이다. 가파른 언덕길 좌우에는 성당의 역사를 숫자로 표시한 핸드레일이 세워져 있다. 17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부터 1898년 공주본당 설립, 1937년 중동성당 준공, 1997년 중동성당 100주년을 알려준다. 공주 중동성당 100년사를 유리에 특수프린팅한 사진도 볼 수 있다.

언덕 높은 곳에 자리잡은 공주 중동성당은 1921년 5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종철 신부가 1937년 완공한 고딕식 성당으로 외형은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성당지붕 뒤편 중앙부분에는 십자가상이 아니라 배의 키를 본뜬 모형을, 지붕측면의 중앙부에는 닻을 본뜬 모형을 설치했다.

성당 계단을 내려가 도로를 건너면 다시 가파른 계단이 나타난다. 충남역사박물관으로 오르는 길이다. 충남도 역사박물관은 무령왕릉 발굴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를 했던 국립공주박물관이 웅진동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2006년 9월28일 문을 열었다. 고고발굴유물 중심의 전시가 아닌 상대적으로 현대에 가까운 조선시대로부터 근ㆍ현대에 이르는 충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현재 고서와 고문서, 목판, 민속자료, 근현대자료 등 3만6,900여점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충남역사박물관 주차장 옆에 조성된 효심공원.

충남역사박물관 주차장 옆에 조성된 효심공원.


중동성당과 충남도 역사박물관 사이 도로가 국고개 거리다. 이름은 고려시대 이복이라는 효자가 부잣집에서 일을 하고 어머니 봉양을 위해 국 한그릇을 얻어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엎질렀다는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이런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곳에 공주시는 효심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에는 이복의 이야기를 표현한 조각작품과 함께 삼국시대 공주지역 효자인 향덕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현대인들에게 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유관순의 자취어린 영명학교와 제일교회

충남역사박물관 뒤쪽 언덕위에는 3·1만세운동 하면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와 인연을 간직한 영명중고교와 3·1중앙공원이 있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는 병천 아우내 만세운동과 이화학당, 서대문형무소 등을 기억하는데 어린시절 공주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영명중고등학교 100주년 기념탑 앞 유관순(오른쪽) 열사 흉상.

영명중고등학교 100주년 기념탑 앞 유관순(오른쪽) 열사 흉상.


영명중고등학교 교문 옆에 자리한 3·1중앙공원은 앵산(櫻山)공원으로 불렸다고 한다. 한자 앵(櫻)은 벚꽃을 의미하는데 지역인사들은 충남역사박물관과 이곳에 벚나무가 많이 있어 그리 불렸던 것으로 추측한다. 공원 한가운데는 유관순 열사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동산 뒷면에는 유 열사의 생애와 유 열사를 교육으로 인도한 선교사 앨리스 샤프(한국명 사애리시)의 생애가 기록돼 있다.

공주근대문화탐방길의 종착지인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과도 인연이 있는 사애리시는 천안에 살던 열한살 소녀 유관순을 공주로 데려와 1914년부터 2년간 영명여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1916년 이화학당에 추천해 서울유학길을 열어 주었다.

선교사 사애리시는 1904년 영명중고교의 전신인 명선학당(영명여학교)을 설립하고 여성교육을 실시했다. 공주영명학교는 사애리시 부부의 후임으로 파견된 선교사 윌리엄(한국명 우리암)이 1906년 설립했다. 이때 명선학당은 영명여학교로 개칭하고 1932년 남녀공학으로 개편됐다. 영명중고교 내에 세워진 100주년 기념탑에 유 열사의 흉상이 세워진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영명중고교 100주년 기념탑 앞 커다란 나무에 자리한 공주역사전망대에는 아크릴판에 옛 공주시가지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현재의 산 지형과 일치시켜 보면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영명중고교에서 기독교박물관으로 가는 길 벽면에는 공주읍 만세운동의 기록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공주읍 만세운동은 영명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주축이 돼 고종황제 국장이 거행된지 한달째이자 공주 장날인 4월1일 열렸다. 타일로 된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 벽면에는 우리말로 풀어 쓴 독립선언서가 적혀있다.


공주읍 만세운동 타일 벽화

공주읍 만세운동 타일 벽화


주택가 골목을 걸어 제민천을 건너면 현대식 교회건물 뒤에 높은 첨탑이 보인다. 옛 제일교회 건물로 지금은 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공주제일교회는 공주지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최초의 감리교회다. 1930년에 건립된 이 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상당부분 파손됐다가 교인들의 힘으로 재건됐다. 교회건축사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2011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 건물 벽면에 사애리시 선교사와 당시 학생들의 사진이 보인다.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 건물 벽면에 사애리시 선교사와 당시 학생들의 사진이 보인다.


제일교회는 공주지역 기독교 활동의 중심지이며 3·1만세운동 주도, 공주지역 청년들과 함께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신간회운동에 참여했고, 각종 강연회와 약학회 등을 통해 신문화 보급에 앞장섰다. 근대기 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 등 공주지역 사회복지와 교육을 주도했다.


사애리시 선교사와 당시 여학생들 사진. 고증을 더 거쳐야 하지만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세째줄 오른쪽세번째 인물이 유관순 열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사애리시 선교사와 당시 여학생들 사진. 고증을 더 거쳐야 하지만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세째줄 오른쪽세번째 인물이 유관순 열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언덕길을 오르내리느라 뻐근한 다리지만 기독교박물관에서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하숙마을과 풀꽃문학관까지 살펴볼 수 있다. 하숙마을은 교육도시인 공주지역에 유학을 온 학생들의 1960~70년대 하숙문화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풀꽃문학관은 시 ‘풀꽃’의 저자인 나태주 시인협회장이 1930년대 지어진 일본식 가옥에 2014년 개관한 것으로, 나 시인의 저서와 시화작품, 공주지역 문인들의 저서와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글 사진 허택회 기자
th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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