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단은 누구의 것인가

입력
2020.10.16 04:30
26면
구독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자진 사퇴한 키움 손혁 감독. 연합뉴스

자진 사퇴한 키움 손혁 감독. 연합뉴스


예전 프로야구 A구단의 단장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시로 누군가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기에 내용을 물었더니 구단주에게 실시간 경기 진행 상황을 보고한다고 했다. 대기업의 오너였던 구단주는 야구광으로 유명했지만 눈앞에서 보니 소문 이상이었다. B선수는 왜 교체됐는지, C선수는 왜 기용되지 않았는지 시시콜콜한 내용을 단장에게 묻는 것이었다.

굉장히 위험한 관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여 단장을 통해 감독의 귀에라도 흘러 들어가면 엄청난 압박이 될 테니 말이다. 이 구단주의 관심은 다행히 거기까지였지만 다른 구단엔 더 심한 일도 비일비재하다. 모기업에서 평생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야구단으로 발령 받은 임원들은 조금만 지나면 야구인이라도 된 양 착각한다. 감독이나 코치를 불러 미주알 고주알 훈수를 둔다. 심지어 사장이 코치에게 선수의 타격폼을 운운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

키움 구단이 가을 야구를 앞둔 감독을 자르는 초유의 전횡으로 시끄럽다. 손혁 감독이 지난 8일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내려 놓았는데 구단은 '성적 부진으로 인한 사퇴'라고 발표했다. 키움은 당시에 3위를 달리고 있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한 우승후보 팀이 성적 부진으로 그만뒀다는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키움 구단도, 손혁 감독도 코미디 같은 사퇴 발표 이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의혹의 시선은 복잡한 키움 구단 지배 구조의 정점에 서 있는 허민 의장에게 쏠린다. 게임 사업으로 성공한 청년 재벌 출신 허 의장의 야구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운영하면서 큰 돈을 투자했다. 그러더니 직접 야구선수가 되어 보겠다며 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서까지 냈던 이다. 순수했던 열정이 비뚤어진 욕망으로 변질된 건 권력을 쥐면서다. 이장석 전 대표가 2018년 경영 비리로 구속되면서 키움은 자구책으로 허민 당시 원더홀딩스 대표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영입했다. 꿈에 그리던 프로야구단을 꿰찬 허 의장은 얼마 안가 선수들을 불러 '야구 놀이'를 하며 선수단의 영역을 사유화하는 기행을 일삼았다.

구단을 개인 놀이터쯤으로 착각한 허 의장은 지난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장정석 감독을 내치더니 이번엔 손 감독을 타깃 삼았다. 그러더니 후임으로 프로선수 경험이 없고, 파트별 코치 이력도 없는 만 35세의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늘 그랬듯 '마이웨이'를 시사했다. 소위 '유명하지 않고 다루기 편한' 사람을 쓰는 일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게임 캐릭터를 다루듯 죽였다 살렸다 하는 허 의장에게서 사람에 대한 예우나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

여전히 키움 구단 지분의 67.5%를 쥐고 있는 건 이 전 대표다. 허 의장이 이 정도 전권을 휘두를 땐 이 전 대표와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흘러 나온다.

이번 일처럼 야구인들이 대노했던 적은 없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손혁 감독을 해임한 사람이 직접 감독을 하라"고 핏대를 세웠다. 야구단의 주인은 구단주다. 그러나 야구단은 일반 기업과 다르다. 현장과 프런트 고유의 영역이 엄연히 구분돼 있고, 팬이 없으면 존재 이유가 없는 특수 조직이다. 키움은 지금 5위까지 떨어졌다. 선수들을 힘 빠지게 하고 팬을 등돌리게 만든 비상식적 운영의 말로가 궁금하다.

[기자사진] 성환희

[기자사진] 성환희


성환희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