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갈수록 버거워지는 혼사... 결혼 장벽을 낮춰라

입력
2020.10.17 04:30
12면

연간 출생아 27만명... 반세기 만에 '4분의1 토막'
천문학적 비용 드는 '결혼 허들'도 저출산 원인 제공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 단위로 토요일 연재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0>청년의 결혼 딜레마 '외로운 혼자' vs '귀찮은 가족'

한국의 인구변화는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 세계 평균에 벗어난 ‘한국형 인구변화’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이를 증빙하듯 인구통계는 나왔다 하면 역대 최저치다. 최근엔 2020년 2분기 합계출산율이 0.84명이란 집계가 발표됐다. 연간 출산아 수는 27만명대가 유력하다. 1970~71년생이 각각 100만명대를 넘겼으니 반세기만에 3분의 1을 넘어 4분의 1을 향해 치닫는 수치다. 2020년은 '초저출산'의 새로운 원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주지하듯 원인은 많다. 고용불안부터 인식 변화까지 출산 환경을 뒤바꾼 변수는 수두룩하다. 다만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한국만의 특수한 변수가 하나 있다. 바로 ‘결혼장벽’이다. 힘들어진 결혼이 자연스레 출산을 가로막는다는 의미다.

한국은 특유의 결혼 문화와 성혼 조건으로 유명하다. '집안혼사'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당사자의 애정이나 의지보다 가족과 친지의 허락이 더 중시되고, 천문학적인 비용까지 뒤따른다. 한국의 초저출산은 '난공불락의 결혼 허들'에 상당수 원인이 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가족 범위 좀 더 넓게 봐야

한국에서 결혼은 일종의 '공민권'과 같다. 공고한 유교문화와 법률제도 탓에 동거가족은 극히 제한적인 권리와 의무만 적용된다. 법률혼만이 출산자격을 허용하며, 사실혼은 투명인간처럼 취급된다.

이런 까닭에 공인 커플의 자녀 출산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반대로 혼외자(婚外子)는 찾아보기 어렵다. 출산아 중 혼외자는 2%대 아래다. 서구사회는 다르다. 70%대에 달하는 칠레가 대표적이고, 2014년 통계이기는 하나 유럽 국가 중 상당수는 50%를 가뿐히 넘긴다.

정식결혼 없는 혼외출산이 정상이란 의미는 아니다. 가족범위를 넓게 보자는 얘기다. 프랑스에선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취임 당시 여자친구로 불리던 동거녀가 최초의 영부인이 된 사례도 있다. 사실혼(비혼동거)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상황은 국제적으로 보면 분명 소수에 가깝다.

결혼커플이 아니면 제한ㆍ차별적인 환경에서 청년들의 운신 폭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프랑스는 1999년 아예 포용적 가족인정을 위해 문서 1장만 제출하면 법률ㆍ사실혼을 차별하지 않는 시민연대계약(PACS)을 제도화했다. 결혼 허들을 낮춰 출산 차별을 제거한 셈이다.


결혼 장벽을 낮춰줘야

혼외자 비율이 높은 해외사례를 무조건 좇을 필요는 없다. 제도 변화가 새로운 문제도 낳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정합성이 낮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중요한 건 법률 기반의 결혼 제도를 재검토하는 것이다. 혼인 인정의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다.

통계도 이를 거든다. 배우자가 있는 '유배우자'를 분모로 둔 출산율이 가임여성(15~49세) 전체가 모수인 현행 출산율보다 높다는 통계가 있다. 유배우(합계특수)출산율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실제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유배우출산율은 2.23명이었다. 반면 (공식)출산율은 인구위기선(1.3명)을 밑돌고 있고, 작년엔 0.92명까지 떨어졌다.

비혼이 출산을 낮춘다는 논리는 여기서 파생한다. 고려사항이 많아 엄밀하진 않지만, 적어도 법적 결혼이 출산자격(?)을 부여하는 지금의 환경에선 공감이 가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기혼자가 비혼자보다 출산 허들이 낮다는 통념과도 맞다.

다만 오해는 금물이다. 출산장려주의는 아니다. 여성과 결혼에 출산책임을 전가할 까닭도 없다. 출산을 위한 결혼은 특히 그렇다. 단 저출산이 문제라면 지금보다 결혼장벽을 낮춰주는 건 고려해봄직하다.

'결혼 민영화'라는 대안도

‘넛지’이론으로 유명한 리차드 탈러(R. Thaler)는 이런 생각을 '결혼민영화'란 대안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경제학자답게 고비용ㆍ저혜택의 결혼 관련 대차대조표를 교정하자는 아이디어라 할 수 있는데, 국가관리의 결혼허가제가 현실과 맞지 않을뿐더러 성적행위와 자녀출산을 제한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논리다.

그는 결혼 관문을 넓히는 넛지(강압하지 않는 부드러운 개입)의 방안으로 민영화를 제안한다. 강압적인 제도 기준보다 부드러운 자율선택이 현명한 선택을 유도한다는 차원이다. 비유하면 결혼을 종교처럼 보자는 의도다. 커플 결합을 동거 협약으로 낮춰 국가가 아닌 민간단체가 대리, 관리하면 사적 영역답게 자율성과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결혼을 국가가 통제할 상황은 지났다. 현실과 부딪히는 제도는 수용되기 어렵다. 민영화가 아니라도 싱글인 청춘 상당수는 결혼 제도에 맞서 나름의 각자도생을 모색한다. 제도거부적인 경로이탈이다. 생각도 변했고, 상황도 힘들어진 탓이다.

이들에게 결혼은 이미 필수가 아니다. 결혼적령기란 말은 고어(古語)가 됐고, 등떠밀려 하던 결혼은 거의 없다. 안 하면 안 했지 과거 잣대에 맞춰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아직도 결혼을 통한 ‘1차가족→2차가족’의 분화가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난해 기준 1인 가구는 30%대에 달한다. 이중 20%는 70세 이상 독거노인이다. 나머지 상당수는 미혼과 비혼의 청장년인구일 수밖에 없다. 1인 가구는 2015년부터 가족유형 중 1위다. 용감한 '싱글실험' 확대는 불용의 결혼 제도 파기와 맥이 닿는다.

청년선택 응원하는 것이 먼저

안타깝지만 결혼민영화란 넛지가 생겨도 비혼 추세를 막기는 힘들 듯하다. 결혼이나 가족을 둘러싼 후속세대의 인식과 가치관은 그만큼 빨리 변하고 있다. 돈이 허들이면 민영화로 낮춰준다지만, 비혼이 사회문화적 트렌드면 백약이 무효라 할 수 있다.

청춘남녀는 선배 세대를 통해 결혼과 출산의 많은 경험과 정보를 축적했다. 그 검토 결과 벤치마킹보다 한계 전철을 안 밟겠다는 반면교사가 증가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가족기능을 벌충해 줄 수많은 보완ㆍ대체재 확대도 인식변화를 거든다. 어렵게 결혼해본들 만족이나 효용이 별로라면 차라리 홀로 살며 가볍게 즐기겠다는, 신인류 출현인 셈이다.

‘외로운 혼자 vs. 귀찮은 가족’의 승자가 전자라면 인구정책은 수정 검토가 불가피하다. 결혼 포기가 금전적인 한계를 넘어 가치 전환까지 반영된 결과라면 출산장려책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원인 분석이 오판인데 대응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인과성을 알면 정책 자체의 발본개혁이 시급하다.

힘들어진 출산장려를 통한 인구증가는 잠시 내려놓고, 청년 선택을 응원하는 게 먼저다. 이를 통해 인식재전환을 위한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 결혼의 정합성이 자연스레 확대, 공감되도록 주변환경을 꾸리는 정책이 요구된다.

‘외로운 혼자’를 이겨낼 대안은 ‘즐거운 가족’이다. 결혼이 위험에 가까운 부담스런 선택이 아니라 가성비ㆍ가심비까지 안겨주는 카드일 때 변화는 시작된다. 누구보다 똑똑해진 청년 선택을 바꾸자면 확고한 정책 의지와 실행능력이 전제된다. 무엇보다 청년 생활 전반에 걸친 장기간의 꾸준하고 묵직한 개혁작업이 간절하다.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결혼 포기는 정해진 미래가 보내온 날선 경고장 아닌가.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