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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8기' 김종철 정의당 새 대표, 낙선의 과거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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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새 '간판'이 된 김종철(50) 정의당 신임 대표는 '낙선'의 정치 역정을 걸어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김 대표는 서른 둘의 나이에 2002년 서울 용산구청장 후보(민주노동당)에 처음 도전해 낙선했습니다.
이어 서른 여섯이던 2006년 서울시장 후보(민주노동당)로 지방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했어요. 이후 2008년 18대 총선 서울 동작을(진보신당), 2012년 19대 총선 서울 동작을(진보신당), 2014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서울 동작을(노동당), 2016년 20대 총선 서울 동작을(노동당) 등 총선 및 재보궐 선거에서 탈락했습니다. 올해 21대 총선에서는 정의당 비례 대표에 도전해 득표율은 상위권에 있었지만, 청년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를 배려한 경선 제도에서 당선권 밖인 16번에 배정되면서 낙선했죠.
이렇게 연속 낙선의 쓰라림을 맛보면서도 그는 꾸준히 진보 외길을 걸어온 정치인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김 대표가 첫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건 2002년 지방선거 때가 아니랍니다. 그보다 앞서 선거에서 쓴 맛을 본 경험이 있는데요. 때는 1993년 말 37대 서울대총학생회장 선거입니다.
당시 민중·민주 계열(PD) 후보로 나섰던 김 대표는 학생 운동권의 통합을 표방한 '21세기 통일 한국을 향한 대학창조 진보학생연대' 후보인 강병원 후보에 밀려 낙선했죠.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투표자 1만2,252명 중 32%(3,908명)의 지지를 얻었어요. 김 대표는 837표 차이로 강 의원에게 졌죠. 참고로 이 선거에는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동성 전 새누리당 의원도 도전장을 던졌어요.
1992년 12월 치러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가 당선이 되고 문민 정부가 등장한 첫해 선거였습니다. 때문에 학생 운동권의 가야할 방향을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고 이를 반영하듯 서울대 학생회장 선거에 5개 팀이 출마를 했습니다.
당시 김 대표는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후보였던 박용진 민주당 의원과 연대하기도 했답니다. 두 사람은 학생운동 조직 '대장정' 설립을 이끌었는데요. 두 사람은 이후 1998년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에서 대중 정치를 시작하며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김 대표는 2006년 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후보에 뽑혀 지방선거에 나섰고, 박용진은 2004년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의 첫 대변인을 맡았습니다. 두 사람은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 뒤 만들어진 진보신당도 함께 참여했는데요. 하지만 2011년 독자적 진보정당 운동의 한계를 절감한 박 의원이 진보신당을 떠나면서 두 사람의 운명은 갈리기 시작했습니다.
1993년 총학생회장 선거 당시 토론회 사회를 맡았던 이모씨는 10일 자신의 사회 관계망서비스(SNS)에서 "김 대표가 70년생, 강 의원·박 의원이 71년생으로 50줄 나이"라며 "포스트 386, 90년대 초반 학생운동 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됐다"고 회고하기도 했죠.
그 동안 심상정 의원과 고 노회찬 의원 두 사람이 이끌다시피 해 온 진보정당 정의당의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요. 199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 당 대표로 이름을 올리게 된 김 대표는 과연 당의 새 모습을 어떻게 그려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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