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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켜야 할 사적 공간

입력
2020.10.08 18:00
수정
2020.10.08 18:5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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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남편이면 여행 금지 마땅한가
개인의 자유 경시하는 문화 돌아볼 때
의혹 검증에도 보호받을 사생활 있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남편 이일병 교수의 미국여행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남편 이일병 교수의 미국여행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의 해외여행은 분명 볼썽사납다. 다만 장관 권한을 이용한 게 아니니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태와 다르다. 그런데도 ‘공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언론은 “장관님이 뭐라고 안 했나” “부담 안 되냐”고 물었다. 이 질문이 합당하냐가 나의 질문이다.

물론 파장은 컸다. 비판은 여야를 막론했고 국감까지 이어졌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코로나19 사태에 고관대작 가족은 여행에 요트까지 챙기며 ‘욜로’를 즐긴다”고 논평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특권과 반칙이 권력을 가진 자에게 허용된 것”이라며 강 장관의 결단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부적절했다”고 자세를 낮춘 것은 그렇다 쳐도, 광화문 집회 차단 차벽을 그렇게 문제 삼는 김 의원이 사생활의 자유에는 관심 없는 게 애석하다. 우리나라 보수가 아무리 반공 이념 중심이라지만 자유주의 기본권을 옹호하는 목소리 하나 없으니 말이다.

‘서로 어른이니 내 계획을 (아내가) 가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 생각 때문에 (내 삶을) 양보해야 하나.’ 이 교수의 답변은 근본적인 개인의 자유를 외친다. 또 공직자 가족에게 요구되는 의무가 어디까지인가를 묻는다. ‘나쁜 짓도 아니고 내 삶을 살겠다’는 그의 주장은 쉽게 부정할 수 없다. 우리 문화가 너무 쉽게 부정하는 게 문제다.

공인에 대한 검증에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추 장관 아들 서씨에 대한 문제 제기 중에서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서씨의 게임 기록을 폭로한 일이다. 조 의원은 서씨가 2차 병가가 끝날 무렵 롤 게임을 했고, 서씨로 추정되는 게임 아이디가 군복무 중이던 2017년 10개월동안 227시간 게임을 하고 최상위 10% 등급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가 의혹을 남겼지만, 최소한 게임은 상관이 없다. 다리를 다치면 게임을 못 해야 하는가? 휴가 나간 군인이 여가를 즐긴 것이 만천하에 공개될 검증 대상인가? 조 의원의 11억5,000만원 재산 신고 누락 의혹에 빗대, 만약 여당 의원이 조 의원이 드라마를 몇 시간 시청하고 쇼핑에 얼마 썼는지를 공개하며 “이러고도 바빠서 재산신고를 빼먹은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진다면 그때 나는 조 의원을 옹호하겠다. 그래도 지켜야 할 사적 공간이 있다.

21대 국회 임기 시작 날, 윤미향 민주당 의원이 의원회관 사무실 안에서 웃고 있는 것을 창문 너머 촬영한 사진은 어떤가.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의혹과 별개로, 사진에 담긴 “그러고도 웃냐”는 비아냥거림은 부당하다. 그가 유죄여도 24시간 중 어느 한 순간 웃을 자유가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누구도 중첩된 정체성 중 오직 공적인 얼굴만으로 24시간을 살 수 없다. 신문 1면에서 클로즈업 된 그 미소를 본 순간, 2007년 학벌을 속인 큐레이터 신정아씨의 합성된 나체 사진을 1면에 대서특필한 한 신문이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최서원(최순실)씨에게도 가혹했다. 딸 정유라씨의 부정 입학 의혹과 무관한 출산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고 최씨의 벗겨진 신발 브랜드까지 주목받았다.

K방역 성과는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 생명권이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바탕이 됐을 것이다. 이처럼 긍정적으로 발현되는 순간이 있지만 그 부정적 해악이 늘 우리 곁에 있다. 너무 쉽게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문화와 습속을 돌아볼 때다. 공인이라도 직무와 무관한 사생활에는 관심을 줄여도 좋겠다. 권력 감시가 본분인 언론은 어느 선에서 멈출지 더 고심해야 한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호하는 것에서부터 인격은 지켜질 수 있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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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뉴스스탠다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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