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쇠락 마을을 스타트업 성지로... 도시재생 '판'을 바꿔라

입력
2020.10.10 04:30
스웨덴 말뫼 핵심 조선소 폐업 후 '가장 젊은 도시'로
국내 도시재생, 관광ㆍ보전 등 집착... 반짝 활성화 그쳐
재개발ㆍ신축 배척 대신 적절한 '조화' 필요

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10>진정한 도시재생의 길

전국이 도시를 재생한다고 엄청난 돈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과 방법론 측면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하다. 지역별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 병이라도 환자 체질에 따라 처방과 수술방법이 다르듯이 재생도 각 도시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해야하는 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도시정책이 상당히 중앙집권적인 탓에 재생전략의 다양화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불량촌을 일거에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획일적인 재개발사업에서 우리가 너무 큰 부작용을 보았기 때문일까. 어느덧 재생은 옳고 재개발은 나쁜 것처럼 인식되어 도시활성화의 적절한 방법과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10여년 도시재생에 공을 들였던 지역이 많음에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재생의 속성 상 장기적인 투자와 점진적인 효과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은 걱정스럽다. 현재의 도시재생전략의 한계를 살펴보고 더 나은 대안은 없는지 고민해보자.

도시재생 본질은 도시경쟁력 강화

우선 도시재생의 핵심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어떤 도시가 기반산업이 쇠퇴하여 인구가 감소하고 상권이 축소되며 주거지도 노후화되었다고 하자. 노후주거지 재생이나 골목상권 재활성화 정도로 이 도시의 진정한 재생을 도모할 수 있을까? 도시재생은 특정 구역이나 건축물의 재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도시 전체가 활성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보다 광역적인 개념이다. 특정지역이나 가로(街路)의 활성화 수준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기능과 구조를 개선시켜서 새로운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비로소 도시가 재생된다고 말할 수 있다.

도시재생 성공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스웨덴 말뫼(Malmo)를 살펴보자. 1980년대 후반 한국 등 신흥 조선강국의 등장으로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말뫼경제의 핵심이던 코쿰스(Kockums)조선소가 문을 닫았다. 3만명이 떠나고 도시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 말뫼가 선택한 주요전략은 대학의 신설과 신산업 육성, 친환경 도시개발이었다.

1998년 청년층 유입과 첨단산업인력 양성을 위해 스타트업에 특화된 말뫼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외레순다리(Oresund Bridge)를 건설하여 바다 건너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과 연결시키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주거단지를 조성하여 코펜하겐 직장인들에게 매력적인 도시가 되었다.

20여년 만에 스웨덴에서 가장 젊은 도시가 되었고, 6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겨 스타트업의 성지가 된 것은 본질에 충실한 전략 덕분이었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박물관을 만들고 상업가로를 정비해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해양관광도시를 만드는 1차원적인 전략 대신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이 미래형 일자리를 가지고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체질개선을 지향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옛 것을 살릴 것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코쿰스조선소 건물 중 꼭 필요한 것은 리모델링을 통해 창업인큐베이터 공간으로 재활용했지만, 도크나 창고 대부분은 철거하고 그 위에 친환경 생태주거단지를 새로 건설하였다. 동서를 막론하고 비용이 많이 들고 낡은 건물을 좋아하는 청년들은 드물다. 세련되고 친환경적이며 주거비도 적게 드는 트랜디한 최신 주거단지에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도시로 젊은이들을 불러모으고 싶다면 그런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1974년 스웨덴 남서쪽에 있는 말뫼 시에 있는 코쿰스 조선소의 모습. 코쿰스는 20세기 세계 조선산업을 주무르던 굴지의 기업이었나, 1980년대 후반에 문을 닫는다. 출처: City of Malmo


조선사가 문을 닫은 자리를 대학과 스타트업이 자리한 혁신의 성지로 탈바꿈시킨 말뫼시의 전경. 가운데 우뚝 선 높은 빌딩은 혁신의 상징으로 불리는 ‘터닝 토르소’다. 출처: emaeducation2019.se


문화, 관광, 보전에 대한 집착 버려야

우리나라에서 ‘도시재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문화, 관광, 보전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재생사업구역인 ‘창신숭인’의 경우 재생의 목표는 ‘주거환경재생, 봉제재생, 관광자원화’이다. 폐업한 조선소부지에 진행하고 있는 '통영 봉평지구도시재생사업'의 공식 명칭은 '문화ㆍ관광ㆍ해양산업 HUB조성을 통해 재도약하는 글로벌 통영 르네상스' 이고, 군산의 '월명동 도시재생선도사업'의 주요 내용은 '근대건축물 보전ㆍ정비사업, 블록단위 주거재생 시범사업, 음식명가발굴사업, 창조기업플라자 조성 등'이다.

비교적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군산 구도심의 역사문화중심의 재생은 관광객 증가와 상권활성화의 성과를 이루었지만, 말뫼의 도시재생전략과 비교해보면 지엽적이라 할 수 있다. 경주와 같은 일부 도시를 제외하면 관광산업은 도시경쟁력 측면에서 기반산업으로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봉제산업 쇠퇴로 인해 낙후의 길로 들어선 창신숭인지역을 새로운 산업이 아닌 '봉제산업'을 기반으로 재생하겠다는 전략이 과연 합리적일까. 해양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의 쇠퇴로 폐업한 부지에 다시 해양산업 허브를 조성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도 6년 동안 250억원 정도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불씨를 살릴 수 있을까. 문화와 관광은 재생사업 유형을 막론하고 등장하는 키워드인데 사람들이 구경을 올 정도로 잠재력이 있다면 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을까 의아하다. 일시적인 레트로 열풍이나 빈티지 선호에 기대어 잠시 활성화를 기대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도시를 재생시키는 본질적인 처방일까.

보전에 대한 집착은 문화 관광과 연결될 때 한층 강해진다. 을지면옥이나 옥바라지골목과 같은 스토리가 담긴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크다. 하지만 그것의 보전가치가 그곳에서 살고 일하며 바쁜 일상을 살아가야 할 시민들의 보금자리보다 더 중요한가. 어느 곳이든 오래된 골목과 건물에는 세월의 무게만큼 많은 추억과 역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앞으로도 계속 보전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 위치가 도시 경쟁력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가치를 판단하는 무게중심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전북 군산시가 2008년 '근대산업유산문화예술벨트화사업’을 추진하기 이전 장미동 일대 모습.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제공


전북 군산시가 추진하는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 조감도. 군사시청 제공


도시의 체질개선에 집중하자

도시재생전략이 도시 전체의 경쟁력향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지정된 특정 구역의 활성화 사업에 머문다면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마중물 사업이 완료되었거나 곧 끝나는 여러 사업지구도 대부분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생적인 주민의 요구에 의해 재생사업이 진행된 경우보다 활동가나 외부 전문가가 주도하며 공공의 재원에 의해 유지되어 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전략은 잠재력이 높은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도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어떤 특정 구역의 가로를 정비하고 역사자원을 리모델링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전통산업의 쇠퇴로 활력이 떨어진 도시에는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 등 4차 산업과 관련된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지방대학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수도권 주요대학은 스스로 4차산업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고 있다. 이대로 두면 지방대학의 우수교수와 신산업교육기반이 수도권으로 빨려들 수도 있다. 문화자원화나 주거지환경개선에 성공하더라도 산업기반은 더 악화될 수 있고 지방소멸도 더 빨라질 수 있다.

도심 노후주거지 중 기존의 재생사업으로 활성화시키기 어려운 경우라면 정비사업을 통해 친환경 신규주택단지로 탈바꿈시킬 필요가 있다. 창신숭인에서 공공재개발에 관심을 갖는다는 보도가 왜 나오는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계획가들이나 활동가들과는 달리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번듯한 새집과 깨끗한 거리(street)일 수 있다. 외곽의 신도시에는 고층 아파트단지를 건설하여 주택수요에 대응하면서 도심 저층주거지는 계속 재생을 고집하며 주택부족을 심화시키는 것은 주택정책 측면에서도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건물과 거리에는 수많은 삶과 추억이 묻어있다. 그만큼 아련하고 소중한 공간이다. 그 공간을 공유했던 공동체의 기억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사회적 자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서민의 주거권을 보호하고 도시의 장래를 도모할 수 없다. 꼭 필요한 곳은 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되 미래를 위해 개발이 불가피한 곳은 적극적인 방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재생전략에서 재개발이나 신축을 터부시하기 보다는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도시 전체가 재생이 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처방이 아닐까.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