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군 없이 의병만 싸우는 코로나 전쟁

입력
2020.10.07 18:00
26면

시민 희생으로 1단계 K방역 성공시켰지만?
2단계 대책에는 한계 드러낸 보건 당국?
‘백신 민족주의’ 불구, 백신 확보 이뤄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코로나19 백신으로 러시아가 개발했다고 주장한 스푸트니크 백신. 주요 국가마다 코로나19의 근원적 방역대책으로 백신 개발 및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코로나19 백신으로 러시아가 개발했다고 주장한 스푸트니크 백신. 주요 국가마다 코로나19의 근원적 방역대책으로 백신 개발 및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정치공학적으로만 따진다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코로나19’ ‘K방역’은 ‘촛불’ ‘박근혜’와 위상이 같다. 촛불시위와 박 전 대통령의 실정에 따른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정권 초반 국정을 주도했고, 올 들어서는 코로나19와 K방역에 힘입어 4월 총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줄곧 시간이 있을 때마다 K방역을 자랑한다. 지난 4월 20일에는 “K방역에 이어 K경제까지 위기극복의 세계적 표준이 되겠다. 방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창의적 사고와 특단의 대책으로 국민의 고통을 줄이고 위기 극복의 시간을 단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 5일에도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선방’하고 있다. K방역의 성과가 경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메시지에 열광적 지지자들은 여전히 'K방역이 세계 최고’라고 믿겠지만, 국제사회의 코로나19 방역 전선에서 K방역은 더 이상 주목받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1단계 방역은 성공했지만, 정말로 중요한 2단계 방역에선 한국에 미래가 안보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단계는 확산 방지대책이고, 2단계는 근원적으로 바이러스에 맞설 수 있는 치료제나 백신의 개발이다.

1단계 대책에서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모범국이었다. 지구 전역에서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지만, 애당초 대중 봉쇄를 선언했던 대만을 빼고는 세계에서 감염자가 가장 낮은 수준이다. 우리가 1단계 모범이 됐던 건 시민들 때문이다. 대통령과 방역당국이 경제와 방역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재확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시민들은 기본권 침해를 감수하고 거의 완벽히 협조했다. 불편해도 마스크를 썼고, 각종 의혹과 실정 때문에 속이 터져도 꾹 참고 시위ㆍ집회를 자제했다. 사생활이 완전 노출되는 QR코드도 감수했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국제행사 때마다 K방역을 자랑할 수 있었던 건 외국보다 똑똑한 시민을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 협조 대신 보건당국의 역량이 필요한 2단계 방역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1단계 K방역이 세계적 찬사를 들을 때는 국산 백신이 곧 나올 것 같았지만, 3상 시험 등 최종 개발단계에 접어든 지구촌의 8개 백신 후보 중 한국은 없다. 도이체방크 조사에 따르면 중국(공동개발 포함)이 4개 물질로 가장 앞서고, 미국은 2개 물질, 영국과 호주ㆍ독일 국적의 제약회사가 1개 물질을 개발 중이다.

더욱 심각한 건 수입을 해서라도 국민에게 접종할 백신 확보 경쟁에서 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영국, 미국 정부는 복수의 다국적 회사와 교차 계약을 맺어 국민 1인당 5번 이상 접종할 수 있는 백신물량을 확보했다. 국민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도 이미 지난 7월 1억2,000만명 분량의 백신물질 공급계약을 화이자와 맺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지난달에야 3,000만명분의 백신 확보에 나서려 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올 가을 이후 세계 금융시장의 관심은 어느 나라가 2차 방역의 승자가 되는지에 쏠리고 있다. 비교적 각국에 공평 분배되는 아스트라제네카(영국) 백신이 가장 먼저 나오면 세계 경제가 고루 회복하겠지만, 공급 계약이 미국에 편향된 화이자 혹은 모더나가 이긴다면 미국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게 WSJ 분석이다. 이 신문은 특정 국가가 초기 백신을 독점하는 ‘백신 민족주의’가 일어나선 안된다고 경고했지만, 불행히도 그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한국의 접종 시기는 개발도상국과 비슷하게 늦춰질 수도 있다.

상황을 종합하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의병은 대첩을 거뒀지만 관군은 손을 놓은 형국이다. '나라 지킨 건 왕도 대통령도 아닌 국민'이라는 어느 가수의 지적이 코로나19 방역에도 예외는 아니게 됐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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