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이별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입력
2020.09.29 01:0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일 강원 춘천시 의암호에서' 지난달 집중호수로 파손된 인공수초섬 일부를 중도 배터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의암댐이 방류 중인 가운데 이 수초섬 고정작업이 이뤄져 경찰과 춘천시 공무원, 환경선 탑승자 등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1일 강원 춘천시 의암호에서' 지난달 집중호수로 파손된 인공수초섬 일부를 중도 배터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의암댐이 방류 중인 가운데 이 수초섬 고정작업이 이뤄져 경찰과 춘천시 공무원, 환경선 탑승자 등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안전지침이 정비됐으면 좋겠어요. 환경선 탑승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요."

춘천 의암호 선박전복 사고로 실종된 A(56)씨의 가족은 최근 취재진에 이런 바람을 전했다. 애써 눈물을 참던 그는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을 지킬 수 있다면 아빠도 기뻐할 것"이란 말과 함께 수색중단을 요청했다. 한없이 따뜻했던 아빠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다시는 허무한 이별이 없으면 한다는 진심을 전한 것이다.

지난달 5일 발생한 이 사고는 '원칙'은 물론 '상식'마저 실종된 관재(官災)였다. 의암댐 수문이 초당 1만톤의 물을 뿜어내고 있으면 수상 작업을 하지 않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의암호 수초섬 고정작업이 시작됐고, 베테랑 경찰과 갓난 아이의 아빠, 환경선 기간제 근로자들이 희생됐다. 춘천시의 매뉴얼에 '댐 방류 중 수상작업을 해선 안 된다'는 초보적인 원칙만 담겼어도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이별이 더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구나 사고 몇 달 전 운영주체와 책임이 제각각 쪼개진 탓에 댐 방류 시 선박 운항 중단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허술한 지침은 그대로였다. 안전불감증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앞서 7월 23일 폭우로 불어난 물에 3명이 숨진 부산 지하차도 침수사고는 또 어떤가. 경찰은 배수펌프가 당시 제 기능을 못했고, 차량통행을 막았어야 할 전광판도 망가진 채 방치돼 사고로 이어졌다고, 결국 인재였다고 결론을 냈다.

사고 수습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부산시와 구청 등은 사고 원인을 시간당 80㎜가 넘는 '양동이 폭우'를 쏟아낸 하늘 탓으로만 돌린 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통해 "시스템이 무너진 사고였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여름 관재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섬진강과 용담댐 하류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수해는 낡은 매뉴얼이 부른 사고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 지방의회 의원은 "1961년 설계 시점에 만들어진 매뉴얼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홍수조절에 대한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로 '물폭탄'의 빈도는 잦아지고 위력은 세지고 있는데도 치수 규정이 60년 가까이 정비되지 않았다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이들 사고는 공통점은 재난 컨트롤타워와 대응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큰일을 치른 뒤에야 부랴부랴 대책을 찾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대응이 되풀이된 결과다. 그 동안 숱한 재난과 사고를 겪고도 말로만 안전을 외친 대가는 이처럼 컸다. K-방역 성과에 취해 우쭐대기엔 너무나 뼈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최근 국회엔 제2의 의암댐 참사와 섬진강 하류 침수를 막자는 개정안이 어김 없이 발의됐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주말 현장을 찾아 섬진강댐 방류 문제에 대한 공정한 조사와 책임규명을 약속했다.

이제라도 이런 약속이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은 사고로 소중한 사람과 작별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국민들은 사람이 먼저고, '클래스가 다르다'는 문재인 정부의 후속대책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박은성 지역사회부 차장대우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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