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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식의 획일적 공정으론 불공정문제 해결 못한다"

입력
2020.09.28 15:00
수정
2021.11.11 18:12
8면

<2>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이상돈 전 국회의원이 22일 본사 접견실에서 '공정'과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해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공정이 현정권 들어 이슈화하는 것에 대해 "과거 공정에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인사들이 집권세력이 됐지만 딱히 나을 것이 없다는 실망감이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왕나경 인턴기자

이상돈 전 국회의원이 22일 본사 접견실에서 '공정'과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해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공정이 현정권 들어 이슈화하는 것에 대해 "과거 공정에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인사들이 집권세력이 됐지만 딱히 나을 것이 없다는 실망감이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왕나경 인턴기자

한국일보 특별기획 ’공정을 말하다‘ 두 번째로 이상돈(69) 중앙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법대 교수시절부터 현실 정치에 깊숙이 간여했다. 2007년 이회창 대선캠프에 몸담았고, 2011년 옛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참여해 박근혜정부 출범의 숨은 공로자가 됐지만 결국 결별했다. 안철수대표의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진출했으나, 역시 헤어지고 말았다. 많은 정치적 굴곡에도 불구, '보수를 비판하는 보수',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시작으로, 전ㆍ현직 법무부 장관들의 부모찬스 논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고속도로 요금 징수원 직접 고용, 공공의대 설립과 의사 파업 등 이슈마다 공정문제가 핵심쟁점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각자 내세우는 공정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 같다. 공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공정을 단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 논란을 키웠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의 경우 고용노동부와 법원은 '노동자성' 기준을 적용해왔고 정부도 이 기준에 의거해 비정규직 문제에 접근했더라면 오늘날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기계적인 공정 기준을 적용했다. 그래서 편법으로 나온 게 자회사 고용이다. 민간기업이 하던 일을 자회사라는 공기업이 가져가는 꼴이다. 물론 공기업이기에 근로자 권익이 전보다는 보호될 수는 있겠지만 민간기업의 유연성은 없어지게 된다. 특히 고속도로 요금 징수원 문제는 아주 나쁜 사례다. 향후 전자식별로 인한 징수체계로 개편되면 징수원 자체가 불필요해지는데 이런 문제에 과연 공정이란 이름의 획일적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겠는가. 의도만 좋으면 결과도 좋은 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더 나쁠 수도 있다."

-공정이 과거보다 특히 현 정권 들어 유독 이슈화되는 것 같다.

"공정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은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멈추었을 뿐 아니라 정보통신, 인공지능 등 기술 발전으로 고용기회가 감소하면서 안정적 일자리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우리 노동법은 정규직 정년 보장, 평생 고용에 근거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정년연장법을 통과시켰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은 명예퇴직이 상례화한 시대다. 정년 보장 정규직은 민간에서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겠지만 문제는 공공분야다. 공공분야가 방만해서 국가가 위기에 처한다면 무슨 공정성이 의미가 있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성과를 중시하다 보니 경쟁과 퍼포먼스가 강조됐고 이 과정에서 소외 계층과 비정규직 문제가 두드러졌다. 당시 야권에 있던 진보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청문회 등에서 공정, 평등, 정의라는 엄격한 잣대로 정부 인사의 면면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막상 정권을 잡고 이들은 같은 잣대로 판단했더니 딱히 나은 게 없고 결국 국민들의 실망감만 더 커진 것이다. 결국 '당신들이 늘 강조했던 공정 평등 정의가 이것이냐'는 역공에 사면초가가 된 모양새다."


-86세대의 공정 논란은 어떤가.

"군부독재에 항거한 86세대는 20년 이상 말로써, 또는 글로써 자신들의 공정성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식 문제 등을 두고 내로남불을 보여주고 있다.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됐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다."

22일 오후 한국일보 본사 접견실에서 이상돈 전 국회의원이 인터뷰하고 있다. 왕나경 인턴기자.

22일 오후 한국일보 본사 접견실에서 이상돈 전 국회의원이 인터뷰하고 있다. 왕나경 인턴기자.


-법학자 출신으로서, 또 보수 정치인의 시각에서 공정을 정의하자면.

"공정은 기회의 공정이지, 결과의 공정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환경이 공평하지는 않다. 다만 정부가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기회의 공정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경우에 따라 공정을 위한 장치가 또 다른 불공정 문제를 야기한 사례도 있다. 미국에서 1960년대 흑인 소수인종들이 역사적으로 차별받았다는 이유로 우대정책을 제공했고, 흑인들의 의대, 법대 진학율이 높아졌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정당한 실력이 아닌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선발된 인물이라며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았고, 오히려 취업 불이익을 당하기까지 했다. 1970년대 들어 이 법이 오히려 백인을 역차별한다며 위헌판결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를 주도한 인물이 다름 아닌 예일대 출신 흑인 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였다. 본인 스스로 흑인우대정책으로 인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공정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지금 우리 정부는 공정을 너무 단순화하고,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 같다."

-최근 의사 파업과 의대생 국시 재응시 문제에서 공정성이 쟁점이다. 의사 시각에선 의전원이나 공공의대 등과 같은 경로로 의사가 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우리나라는 완전한 신뢰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 시험을 치르지 않고 들어오는 제도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 의전원도 로스쿨도 그래서 계속 문제가 생기는 거다. 조국 전 장관 딸의 의전원 입학을 둘러싼 혜택 논란도 이런 맥락이다. 결국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우리 현실에 적합한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시험 제도가 복잡해지면 주관이 개입되기 쉽다. 고려 시대 음서제도처럼 기득권 세력의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생기며, 신뢰 부족으로 연결된다. 특히 민간기업과 달리 공공분야에서 객관성을 잃어버리면 엄청난 불공정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조국 전 장관과 추미애 장관의 자녀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일각에서는 공정문제를, 또 한쪽에서는 정치공세라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힘있는 부모가 아니었더라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큰 문제로 비화해야 할 만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 정치공방으로 파이를 키운 측면이 있고 처음 사안과는 관계없는 온갖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지 모르겠다. 결국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민생을 논해야 할 국회는 이 문제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의료혜택도 논란이 된다. 예컨대 가진 이가 훨씬 좋은 환경서 치료받고, 치명률도 낮아지고 있는 현실을 공정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공정한 측면은 있다. 전염병이나 자연재해와는 관계없이 부자가 장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국가가 서민들을 위해 최소한도의 케어는 해줘야 한다. 미국의 경우 공공병원이 노령층과 빈곤층을 케어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건강보험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대단한 거다. 이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도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없었더라면 현재 의료시스템이 붕괴된 중남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공동체나 사회정의 차원에서 우리사회에 공정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합의되어야 하는가.

“예전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있을 때 일이다. 고용안정기금을 나눠주는 일을 담당할 비정규직 수백명을 뽑았는데 그 관리비용만 수백억원이 나왔다. 그래서 차라리 고용기금에서 1조원이라도 취업교육에 쓰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지금 매년 쏟아지는 그 많은 대학생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훈련이 돼 있을까? 미스매치가 현실이다. 채용문제라는 게 사실 지금 대학구조가 잘못된 결과다. 문과대학 나오면 갈 데가 없으니 다들 고시공부를 한다. 그러니 국가에서 먼 이후를 봐서 기술 재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겠나. 그 금액이면 IT, 인공지능 공부시킬 수 있겠더라. 그래서 고용기금으로 한국폴리텍이라는 2년제 교육과정이 있는데 그곳에 1조원 정도 지원해서 취직 안 되는 사람을 1년이라도 공부시키는 게 낫지 않겠냐고 제안한 거다. 그런데 아무런 답이 없었다. 결국 기간이 끝나고 난 뒤에야 관계자가 내게 와서 하는 말이 “의원님 말씀이 맞다, 1조 아니라 3조원을 써도 맞다. 그런데 그건 결과가 5년 후에 나온다”고 했다. 그건 정권 끝나고 난 뒤니까, 당장 결과나 나올 정책이 급하니까 안한다고 것이다. 바로 이게 문제다.“

◆인터뷰 순서
1.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2.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3.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전 한화증권 사장
4. 장혜영 정의당 의원
5.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6.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7.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한창만 부국장
정리= 송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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