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란'의 운명

입력
2020.09.23 17:25
수정
2020.09.23 18: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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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화 '뮬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뮬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와호장룡’(2000)은 중국 무협의 세계화를 이끈 영화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과 대만, 홍콩, 미국이 합작한 영화로 제작비 1,700만달러를 들여 전 세계 극장에서 2억달러가량의 매출을 기록했다. 베이징과 신장 위구르 등 중국의 다양한 풍광을 배경으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며 동서양 관객의 갈채를 동시에 이끌어냈다. ‘와호장룡’은 중국 문화의 상업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2010년대 들어 중국 영화는 할리우드의 큰손이 됐다. 매년 100% 넘게 성장하는 자국 영화 시장에서 축적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할리우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중국 완다그룹은 2012년 북미 2위 극장 체인 AMC를 인수하더니, 2016년에는 유명 영화사 레전더리픽처스를 손에 넣었다. 중국 배우의 미국 영화 출연이 느는 등 인적 교류가 활발해졌다. 할리우드 스타 맷 데이먼이 송나라 시절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액션을 펼치는 정체불명 영화 ‘그레이트 월’(2016)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뮬란’은 미국과 중국의 자본과 인력이 섞이면서 제작이 가능하게 된 영화다. 동명 디즈니 애니메이션(1998)을 바탕으로 한 실사영화 ‘뮬란’은 산업적 의미가 남다르다. 중국 등 아시아계로만 출연진이 꾸려진 첫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다. ‘와호장룡’으로 스타덤에 오른 중국 배우 장쯔이를 주인공으로 2010년 첫 기획됐다가 중국계 미국 배우 류이페이로 바꿔 2016년에야 제작에 들어갔다. 양대 강국이 간혹 신경전을 펼치기는 해도 지금처럼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지 않던 시절이었다.

□지난 17일 국내 개봉한 ‘뮬란’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류이페이가 지난해 홍콩 반중국 시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내비친 것에 대한 비판이 여전한 데다 인권 문제가 대두됐던 신장 위구르에서 촬영하고 월트 디즈니가 감사를 표시한 사실이 도마에 올랐다. 같은 지역에서 촬영한 ‘와호장룡’과는 사뭇 다른 대접이다. 홍콩 문제 등에 대한 불씨를 되살릴까 봐 중국도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버락 오바마 시절 제작에 착수해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개봉한 영화의 운명 아닐까.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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