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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일본에서 원숭이를 받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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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처럼 조선의 왕이나 왕비도 각자 취향이 있었고 거기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사들이 그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왕실 인물들의 취미와 관심거리, 이를 둘러싼 역사적 비화를 <한국일보> 에 격주로 토요일에 소개합니다. 한국일보>
원숭이, 코끼리, 공작, 낙타 등은 우리나라에 자생하지는 않지만 동물원에 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동물들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동물원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을 눈으로 직접 보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간혹 다른 나라에서 선물로 진귀한 외국의 동물들을 보내오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외국으로 가는 사신들이 연행길에 만났던 이국적인 동물들에 대한 글이 일부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원숭이는 일본에서 방물(方物)로 보냈던 동물로, 실록에 비교적 여러 번 등장한다. 원숭이에 대한 조선시대의 기록은 1394년(태조3) 일본국에서 이성계에게 원숭이를 바쳤다는 것이 처음이고 이후 어느 시점까지 지속적으로 원숭이를 방물로 보내 왔다.
선물로 받은 원숭이는 주로 사복시(司僕寺)에 두고 사육하였는데, 세종대에는 상림원(上林園)에서 기르기도 하였다. 상림원은 궁궐의 꽃과 나무를 관리하는 기관이었지만 때로는 외국에서 선물한 원숭이, 공작 등의 관리를 맡기도 했던 모양이다. 사복시는 조선시대에 말ㆍ소의 사육과 수급, 전국의 목장 신축과 증설ㆍ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했던 병조 소속의 관청이다. 선물받은 원숭이는 주로 사복시에서 길렀는데, 태종 때에는 일본에서 선물한 코끼리를 사복시에서 맡아 기르기도 하였다.
일본에서 원숭이를 선물로 바친 것은 조선 전기에만 주로 확인된다. 선물은 상대가 받았을 때 좋아할 만한 귀한 것이나 상대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볼 때, 조선 전기 국왕들의 원숭이에 대한 인식은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조선 전기의 왕실은 왜 원숭이 선물을 원했을까? 세종(世宗)은 제주목사가 잡아 길들인 원숭이 여섯 마리를 잘 길러 번식에 힘쓰라 명하였고, 문종(文宗) 역시 일본에서 원숭이를 지속적으로 선물하기를 바랐다. 1447년(세종29) 당시 세자였던 문종은 승정원에 일본에서 가져온 원숭이 암수 두 마리의 값을 치르라 이르면서 당시 일본어에 능통했던 윤인보(尹仁甫ㆍ?~?)를 시켜 왜인(倭人)에게 말할 때 슬그머니 국가에서 원숭이 구하는 뜻을 보이라 명하였다. 원숭이를 구하는 뜻을 문종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복제조(司僕提調) 김종서(金宗瑞)가 이르기를 ‘원숭이가 있는 곳에서는 말이 병들지 않는다’ 했고 윤인보도 ‘일본에서 원숭이를 기르는 것은 오직 이 때문으로, 말을 기르는 자에게 원숭이가 없다면 반드시 그림이라도 그려서 벽에 붙여 예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궁궐 안(內乘)에서는 원숭이가 있어서 말이 병들지 않지만, 궁궐 밖(外乘)에는 원숭이가 없어서 말이 자주 죽는 것이 그 증험이다.”
일본은 문종 즉위년에도 향, 목향, 후추 등 귀한 예물과 함께 원숭이(??) 2마리를 보내 왔다. 당시 말은 조선에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였고, 명나라에서도 선물받기를 원했기 때문에 원만한 외교관계 유지를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말 사육이 이처럼 당시 국정 운영의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말을 건강하게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던 원숭이를 원했던 것이다. 당시는 사람을 위한 의료기술도 그리 발달된 상황이 아니었기에 동물을 돌보는 수의사의 양성은 더욱 쉽지 않았고, 인원 또한 부족했을 것이다.
말을 키우는데 원숭이가 도움이 된다는 것은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북위(北魏)의 가사협(賈思?)이 6세기경 저술한 농업기술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언급되어 있다. 책에는 “항상 마구간에 원숭이를 매어 놓아, 말로 하여금 두려움과 사악함을 물리쳐 모든 병을 해소한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말이 두려워하는 존재란 바로 쥐이고, 쥐는 원숭이를 두려워하므로 말과 원숭이를 같이 두면 말은 쥐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뿐만 아니라 말의 털 속에 기생하는 해충을 원숭이가 잡아주므로 말은 병에 걸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의 여러 국왕 중에서도 성종(成宗)은 원숭이와 관련된 아주 각별한 일화를 남겼다. 평소 여러 가지 다양한 동물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지극했던 그였던지라 외국에서 선물한 원숭이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1477년(성종8) 11월 4일 석강(夕講)에서 손비장(孫比長ㆍ?~?)과 애완물을 기르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의하였다.
“어제 사복시(司僕寺)에서 흙집(土宇)을 지어 원숭이를 기르자고 청하였고, 또 옷을 주어서 입히자고 청하였는데, 신의 생각으로는 원숭이는 곧 상서롭지 못한 짐승이니, 사람의 옷을 가지고 상서롭지 못한 짐승에게 입힐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한 벌의 옷이라면 한 사람의 백성이 추위에 얼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신은 진실로 전하께서 애완물(愛玩物)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사(太史)가 사책(史策)에 쓴다면 후세(後世)에서 전하더러 애완물을 좋아하였다고 하지 않을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애완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에서 바친 것을 추위에 얼어 죽게 하는 것은 불가할 것이다. 사복시에서 청한 것은 옷이 아니고 사슴가죽(鹿皮)을 주어서 이에 입히고자 청하였을 뿐이다. 경이 잘못 들은 것이다” 하였다.
음력 11월 4일, 그야말로 한겨울이었던 이때 성종은 원숭이가 추위에 고생하다가 얼어 죽을까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손비장이 그런 마음을 지적하자 성종은 다소 궁핍한 구실로 답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이 어떤 특정한 대상에 빠져 국정에 소홀해지는 것을 매우 경계하였기 때문에 국왕과 신하들은 이를 두고 많은 논쟁을 벌였다. 본인이 원하는 취미생활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신하들의 간섭을 받았던 조선 국왕의 처지가 오늘날 우리의 눈에는 다소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성종의 ‘원숭이 옷’ 사건 이후로 조선왕실에서는 일본에서 보내 온 원숭이 받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연산군대에는 일본에서 보낸 원숭이를 두 차례나 되돌려 보냈고 그 이후로 선조대에 원숭이를 선물로 받은 기록이 마지막으로 확인될 뿐이어서 원숭이에 대한 인식이 조선 전기와는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원숭이는 길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원숭이 ‘후(?)’자와 제후 ‘후(侯)’자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원숭이는 높은 벼슬에 오르기를 바라는 뜻을 지닌다. 큰 원숭이가 작은 원숭이를 무등 태우고 있는 그림인 ‘배배봉후(輩輩封?)’ 역시 대대로 후손이 높은 벼슬에 봉해지기를 기원하는 길상의 상징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고려시대부터 학문을 하는 사람이 늘 가까이 두고 사용했던 문방구 중에 먹을 담는 작은 항아리나 연적 등은 원숭이의 모양을 한 것들이 있다.
조선시대 왕실의 혼례에 사용되었던 ‘백동자도’에도 동일한 바람이 담겨있다. 백동자도는 수많은 아이들이 괴석(怪石)과 나무 등으로 잘 꾸며진 정원에서 장군 놀이, 닭싸움, 연못 놀이, 나비 잡기, 관리행차 놀이, 원숭이 놀이, 매화 따기 등 여러 가지 놀이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많은 자손을 낳고 훌륭하게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데, 원숭이 놀이 장면은 입신출세를 상징한다.
원숭이는 때로 포도와 함께 표현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백자항아리에는 원숭이가 포도 줄기에 걸터앉아 포도송이를 따려는 듯 팔을 길게 뻗치고 있는 그림이 있다. 여기서도 촘촘히 박힌 포도알은 많은 자손을 상징하고 원숭이는 입신출세를 의미하는 길상적인 그림이다.
원숭이는 또한 국왕이 거처하는 궁궐을 수호하는 벽사(?邪)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중국 소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를 호위했던 손행자(손오공)는 대당사부(삼장법사), 저팔계, 사화상, 마화상 등과 함께 지붕 위의 잡상(雜像)으로 이어져 궁궐에 미치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 주요 전각의 지붕 위에는 지금도 원숭이 잡상, 손행자가 조선왕실의 궁궐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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